조선시대 유배는 죄인을 고향과 권력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보내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추방형입니다. 유배지에 도착하면 관아에서 머물 집을 정해주거나 현지 집주인에게 유배인의 숙식과 감시를 맡겼습니다. 집주인은 세제 혜택을 받았지만 억지로 배정하고, 유배자를 관리해야 했습니다.
유배자는 해당 고을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생활도 엄격하게 통제받았습니다. 또한 매달 초하루와 보름 관아에 출두해 점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는 수령이 직접 점검하여 도망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유배자의 생계는 고을이 책임지기 때문에 달가운 존재는 아닙니다. 고을 지원이 미비하면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습니다. 면회, 편지는 위리안치의 경우에는 면회와 편지 등이 모두 금지되었지만 일반 유배인들은 실질적으로 묵인되었습니다. 유배자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것으로 활동 제한이 컸습니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이들은 학문과 저술 활동에 집중하는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