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체 세계대전 막바지 독일은 연합국에 휴전협상을 요구하면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안했던 평화원칙 14개조항을 받아 들이겠다고 선언, 1919년 6월 28일 파리에 있는 베르사유궁전에서 제 1차 세계대전 후의 국제적인 관계를 확정하기 위해 31개의 연합국과 독일이 맺었던 강화조약으로, 이 베르사유조약의 내용이 독일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항들이다 보니 독일은 강하게 항의하게 됩니다.
베르사유조약 결과 전범조항과 막대한 금액의 배상금을 요구, 그 중 독일의 해외식민지를 잃고 알자스 로렌을 프랑스에 반환, 유럽 영토 일부를 삭감당하게 됩니다.
군에 대한 제약이 발생하고 지속적인 제한과 감시를 받는데 이런 조약 내용에 독일인들은 상당한 적개심을 가지게 됩니다.
조약이 비준화되고 몇년 후 몇몇 조약의 내용이 개정, 예정보다 빨리 보장조항이 철회되며, 베르사유조약의 무자비한 보복과 미온적인 조약의 실행이 독일의 군국주의가 등장하게 된 조건을 마련합니다.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인들로 하여금 증오심을 키웠고 히틀러의 집권과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제 2차 세계대전배경으로는 1차 세계대전 이후에 해결되지 않은 국가간의 신강이 세계 대공황 및 몇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터지게 되면서 발생, 실질적인 제 2차 세계대전 원인으로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일본의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삼으며, 감정적인 패배를 겪고 있던 독일인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로, 당시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말에 만족감을 느꼈고, 뮌헨폭동으로 인해 히틀러의 지지자가 늘며, 1933년 그는 총리에 임명되니다.
프랑스의 터무니 없는 요구로 인해 독일은 전쟁에서 지지 않았다 믿게 되며, 히틀러가 독일을 구할수있다 생각, 독일 , 이탈리아, 일본 3국 조약을 근간으로 한 추축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 중국 등 중심이 된 연합국 끼리의 대립으로 전쟁이 발발하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