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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임
질문자임23.01.08

장영실이 경점지기를 만들었다는걸 어떻게??

장영실이 세종 6년에 경점지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세종실록을 보면 “궐내의 경점을 알리는 기구는 중국 기구의 체제를 상고하여 구리로 주조해서 바치도록 명하였다.”라고 나와있고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문헌 기록은 없는데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아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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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조에 대하여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국조역상고(國朝曆像考)>에 실려 있으며, 보루각(報漏閣)의 자격루와 흠경각(欽敬閣)의 자격루가 기록되어 있다.


    세종 때 만든 자격루는 모두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536년(중종 31)에 만든 것이 있다. 청동으로 된 1개의 큰 물항아리(지름 46.5, 높이 71cm)와 2개의 작은 물항아리(지름 46.5, 높이 40.5cm)가 있으며, 앞에는 2개의 청동제 물받이통(지름 37, 속지름 33, 높이 196)은 원통형이며 그 사이를 청동 대롱으로 물이 흐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작동원리는 물항아리 3개로 위에 1개, 아래 2개로 2단으로 놓아 흘러내리는 물의 압력과 양을 조절하여 일정하게 물받이통에 물이 흘러 들어 와서 물이 고이게 되면 그 속에 물에 뜨도록 만든 거북이가 떠오르면서 거북이 등에 세운 자막대도 올라가서, 청동구슬을 건드려서 굴러 떨어진다.


    떨어진 구슬이 청동판 한쪽을 치면 다른 한쪽이 들리면서 시간을 맡은 인형의 팔을 건드려 앞에 걸어 놓은 종을 쳐서 자동으로 시간을 알리게 된다. 계산에 의하면 흘러내리는 물의 양은 1시간에 약 15리터 가량이고 지렛대 장치의 수가 약 150~200개, 청동구슬이 70여개가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자격루를 만드는 동기를 보면, 세종때 궁궐에서 쓰고 있던 물시계인 경점지기(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누어 5경으로 했는데, 각 경을 알려 주는 물시계 : 그러므로 예전에는 긴 겨울의 밤의 각 경과 짧은 여름밤의 각 경의 시간 길이가 달랐다)는 정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켜보아 시각을 알리는 관리가 만약 착오가 있으면 중벌로 다스리는 폐해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여 시각에 따라 스스로 알릴 수 있는 자동시계를 만든 것이다.


    자격루는 불어나는 물높이를 재서 하루 12시간과 밤시간인 오경(五更)을 재서 물시계와 측정된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 주는 시보장치로 되어 있다.


    시보장치는 십이지와 5경 25점을 시각과 청각으로 알리는 장치인데, 매시간과 경점을 알리는 매우 복잡한 인형기구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능을 갖추어진 자격루는 오늘날 일컬어지는 전형적인 자동화 시스템으로 시간측정과 시보를 자동으로 성취한 제어공학과 정밀기술의 극치이다


  • 안녕하세요. 이장수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1424년 세종15년

    세종실록 에는 세종대왕이 최초 조선의 과학자인 장영실에게 중국의 것을 참고하여 청동으로 경점의 기를 부어서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공로로 장영실은 정5품의 행사직으로 승진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1.08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처음으로 만든 자동시보장치가 된 물시계이다.


    세종 때 만든 자격루는 모두 없어지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1536년(중종 31)에 만든 것이 있다. 청동으로 된 1개의 큰 물항아리(지름 46.5, 높이 71cm)와 2개의 작은 물항아리(지름 46.5, 높이 40.5cm)가 있으며, 앞에는 2개의 청동제 물받이통(지름 37, 속지름 33, 높이 196)은 원통형이며 그 사이를 청동 대롱으로 물이 흐를 수 있게 되어 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6년 1424년에 경점지기를 만들었다고 세종실록에 기록 되어 있고 장영실은 그해에 정5품 행사직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그것으로도 장영실이 만든 것은 입증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