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역사

진지한석화구이
진지한석화구이

조선시대 엽전의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라 다른나라의 동전을 보면 대부분이 동그란 원 모양입니다. 아직까지 네모 세모와 같은 다른 모양들은 본적이 없는데요. 조선시대의 돈인 엽전은 왜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었던걸까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전문가 답변 평가답변의 별점을 선택하여 평가를 해주세요.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들고 다니기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지갑이 따로 없어서 엽전을 들고 다니기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엽전 구멍에 실을 꿰어 옆구리에 차고 다닐 수 있게 한 것이랍니다.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 결과 조선시대의 돈인 엽전은 왜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엽전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엽전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목걸이처럼 걸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엽전의 가운데 구멍을 통해 엽전을 세는 것도 쉬웠습니다.

    이 밖에도, 엽전의 가운데 구멍을 통해 엽전을 운반하거나, 엽전을 세공하는 것도 쉬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조선시대의 엽전은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멍은 엽전을 사용하는 데 매우 편리했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전 한복에는 주머니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가지고 다니기가 불편 했지요. 그래서 엽전에 구멍이 나있어서 이를 실로 묶어서 허리 춤에 차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를 전대 라고 하지요. 결국 보관의 용이함과 편리함 때문 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지갑이 따로 없어서 엽전을 가지고 다니기 불편했기 때문에 엽전을 실로 꿰어 간편하게 가지고 다니기 위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