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라는 묘호의 핵심 이유가 4군6진 개척이었다는 이야기는 정확한 역사적 설명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4군6진은 세종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이지만, 묘호 세종과 직접 연결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료상의 근거는 확실치 않습니다.
세종 승하 직후 묘호를 정하는 과정이 기록된 '문종실록'을 보면, 묘호를 세종으로 정할 때 4군6진이나 영토확장 언급은 전혀 등장하지 않숩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세종,문종,성종 등 세 가지 후보를 놓고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문종으로 정하자는 쪽은, 중국 역사상 세종이라는 묘호는 주로 중훙을 이루었거나 창업에 준하는 공이 있는 군주에게 붙였는데,세종대왕은 창업이나 난국타개가 아닌 태종의 평화적 계승자이므로 문치와 덕을 기려 문종으로 삼는 것이 적합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종으로 최종 확정한 이유는, 신하들은 세종 대왕의 공덕이 너무나 넓고 커서 문(文)이라는 한 글자로 다 담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예약과 제도를 정비하고 문물과 국정을 대성시켜 국가의 기틀을 완성한 공적이 실질적인 세대와 국가의 기틀을 확립한 성군에 부합한다고 판단하여 최종적으로 세종(世宗)으로 결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