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가 광해군을 질투하였다는 것은 임진왜란 중 피란을 간 선조에 비해 광해군은 분조를 이끌며 민심을 수습하고 군사 행정 업무를 통해 신하들과 백성들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이 과정에서 명나라는 선조 대신 광해군을 노골적으로 칭찬하고, 심지어는 황제의 칙서를 세자 광해군 앞으로 보내 '부왕의 실패를 만회하라'라는 식의 압박까지 했습니다.
광해군은 후궁의 소생으로 적통이 아니었고, 선조는 뒤늦게 인목대비를 들여 적자인 영창대군을 얻으면서 세자 자리가 흔들렸습니다. 선조와 조정 내 일부 신료들은 광해군의 신분과 정통성에 해단 불안감을 가졌으며, 이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정치적 경젱 구도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