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은 광해군을 시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역적으로 몰려 처형되었습니다. 허균은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 등 조선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며, 개혁적인 사상을 펼쳤습니다. 그의 저서 유재론에서 인재 등용의 폐쇄성을 비판하고 홍길동전에서 이상적인 평등 사회를 묘사했습니다.
이와 같은 허균의 사상은 당시 성리학 중심의 지배층에게는 이단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광해군은 허균을 '윤리를 어지럽히고 인간으로서 도리가 없는 자'로 규정했습니다.
그의 신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그의 사상이 조선 왕조 전체를 걸쳐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이었습니다. 자유분방한 생활 방식과 급진적인 개혁 사상으로 인해 당대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부정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처형은 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