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수능과 같은 시험이 있었나요?
우리는 현재 대학을 가기위해 수능을 치루고 준비하는데 옛날 조선시대에도 지금의 대학입학시험과 같은 제도구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서당을 마치면, 4학이라고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4학은 양반만 갈 수 있었구요. 여기서 성적이 우수하면 성균관 (지금의 대학같은 교육기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지금의 대입과 같이 여러가지 있었어요.
위에서 말했듯이 4학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
생원이나 진사같은 시험에 합격한 사람,
유명한 공신들의 자제도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과의 시험 과목은 유교 경전과 시문詩文, 그리고 역사歷史였다. 시험의 가장 마지막 관문은 책문策問이었는데, 요즘으로 친다면 논술형 시험으로 주제에 맞게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를 비중 있게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주로 왕이 중요하게 여기는 현안이 문제로 출제되었다. 시대의 물음에 답하는 능력을 보고자 했던 것이다. 장원급제자들의 답안지는 평균 길이가 10미터에 이를 정도였는데 앞면은 물론 뒷면에도 빼곡이 글이 적혀 있었다. 그만큼 어떤 주제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자신만의 견해가 또렷하게 있어야만 과거의 최종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답변을 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의 수능시험은 조선시대 과거시험 개념으로 보면 됩니다.
수능은 그동안의 학업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관직을 얻기 위해 보는 시험으로 과목에 따라 인재를 선발한다고 하여 과거라고 불렀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의 수능이 있다면 조선 시대에는 과거 시험 제도가 있었지요. 과거시험이 처음 시작된 것은 중국의 수나라때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고려의 4대 왕인 광종때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인 통일신라 원성왕때 독서삼품과라는 시험이 있긴 했지만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거나 채용하는데 참고하는정도로만 사용됐기 때문에 본격적인 과거시험은 958년에 처음 시작되었고 그것이 조선 시대에 까지 계속해서 이어져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 처럼 조선시대에는 수능은 아니지만 지금의 고등학교 처럼 진학을 해서
5일에 한번씩 시험을 치게해서
1년동안 꾸준히 시험 성적을 윗 사람에게 보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과거고시라는 현행 대학입시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유교 경전, 역사, 법에 대한 지식을 테스트하는 공무원 시험으로 정부 관리를 선발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대학 입학 시험이 있었으며, 이를 "과거(科擧)" 또는 "시조(試序)"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대학은 서원(書院)이나 향교(鄕校)에서 운영되었는데, 이러한 대학에 입학하려면 과거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과거는 대개 한 해에 한 번, 조선왕조의 권고나 시험 당국의 판단에 따라 각 지방관청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학 입학에 필요한 지식과 덕목을 평가하였습니다. 과거에는 문과(文科)와 무과(武科)로 나뉘어, 문과는 유학, 문집, 서당 등에서 학문을 배운 후 시험에 응시하였으며, 무과는 군인이나 국사 등의 실무 경험을 쌓은 후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과거를 통과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으며, 대학에서는 4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졸업시험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학 졸업을 통해 고급 관직에 취업할 수 있었고, 또한 세속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의 대학 입시와는 다르지만, 과거를 통한 대학 입학은 조선시대의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회적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초시가 수능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초시를 받으면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주는데요. 이것이 오늘날의 대학입학시험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상 및 난위도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성균관에서의 공부도 많이 힘들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