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전후 국내에 지지기반이 없던 이승만은 친일 지주와 자본가들이 주축으로 구성한 한민당을 구심점으로 자기 지지기반으로 삼게 됩니다. 이로써 반민족자 처벌특별위원회도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무력화시켰다가 아예 해체시켜 버린 이가 이승만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민족정신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인물이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의 대상이 된 것은 뼈아픈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국조인 단군이 건국하였고 해방 후에 정부가 수립된 것임에도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진보는 진정한 진보가 아니고 역시 보수도 진정한 보수가 아닌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 무리들일 뿐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 인물의 단면만을 보고 그 역사적인 인물을 판단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승만은 최초의 우리나라 일간지 '매일신문' 창간하고 미국 하와이에 한국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인 한인기독학원을 설립해서 인재를 키웠으며 미국 OSS의 굿펠로우 부장과 협력, 국내진공작전인 김구의 독수리 작전과 소수정예를 공수부대처럼 침투시키는 냅코계획을 성사시켰고 대한민국 단독 정부를 수립하고 북한의 공산화를 저지 하고 한국 전쟁 당시 어찌 되었건 대한 민국 정부를 유지하고 결국 휴전을 이끌어 냅니다. 물론 해방 후에 친일파를 숙청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고 또한 장기 독재를 하면서 독재자의 이미지를 가지기도 했지만 초대 대한 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잘한 점도 많다고 생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