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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7.18

오스트리아 독일을 지배한 합스부르크 왕가은 왜 합스부르크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유럽에서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독일을 넘어 유럽을 지배하는 엄청난 왕가였는데요 그들은 합스부르크라고 부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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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0세기경 알자스에서 북(北)스위스에 걸친 소영주(小領主) 군트람에서 비롯되었고, 11세기 스위스에 산성 합스부르크(매의 성)를 쌓은 후로 합스부르크백(伯)이라 불렀다. 독일(신성로마제국)에 황제가 없었던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 이후 실력 있는 국왕의 출현을 꺼린 독일 제후(諸侯)인 프리드리히 2세가 1273년 합스부르크 집안의 루돌프 1세를 독일의 국왕으로 선출하였다. 루돌프 1세는 왕으로 선출되기 이전 게르트루트 폰 호엔베르크와 정략결혼으로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마르크 주(州)를 획득하였고 보헤미아의 왕 오토카르 프레미슬(Ottokar Premysl)과 전쟁에서 승리하였다. 루돌프 1세는 보헤미아의 영토를 병합함으로써 합스부르크 가문(家門)이 번영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다.

    1291년 루돌프 1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이며 초대 오스트리아공(公)인 알브레히트 1세가 독일 국왕으로 선출되었으나, 1308년 암살된 후로 15세기까지 독일 왕위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그 동안 영토 확대정책을 진행시켜 케른텐 ·티롤 ·클라인 등을 왕가의 영역으로 병합시키면서 이 집안은 남동(南東) 독일의 대세력이 되었다. 1438년 알브레히트 2세의 국왕 즉위 이후로는 독일의 왕위와 제위(帝位)를 계속 차지하였다. 15세기 말의 막시밀리안 1세는 합스부르크가 중흥의 시조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에스파냐 왕실과의 통혼으로 가문의 통치영역 확대를 적극 추진하였다.


    막시밀리안 1세는 브르고뉴 공국의 상속자인 마르 드 브르고뉴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일대의 영토를 합스부르크 통치권으로 병합하게 되었다. 이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은 막강해졌으며 에스파냐 또한 아들 필리프 1세가 정략결혼을 통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아래 두게 되었다. 에스파냐 아라곤 왕국의 왕자 페르난도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이 결혼으로 두 왕국이 통합되고 그들의 딸 후아나 공주와 필리프 1세의 아들 카를과 결혼을 했다. 에스파냐 왕 페르난도가 아들이 없이 사망하자 에스파냐 왕국은 사위인 합스부르크가 카를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지위에 이어 에스파냐까지 통치하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에스파냐 왕을 겸했던 카를 5세(世)에 이르러 지배영역은 최대규모에 달하였다. 당시 대외적으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 프랑수아 1세와 전쟁을 벌였는데 카를 5세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인질로 잡아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카를 5세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페르디난트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이후 신성로마제국 제위를 보유하는 오스트리아계(系)와 카를 5세의 아들 펠리프 2세가 통치하는 에스파냐 계(系)로 분열되었다가, 에스파냐 계는 1700년에 가문의 후손을 잇지 못하여 소멸되었다. 에스파냐의 왕가는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가 즉위하였다. 이때문에 오스트리아와 영국이 반발하여 전쟁이 일어나지만 프랑스가 승리하여 에스퍄냐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후손이 통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계의 합스부르크는 독일 제위를 보유하고 오스트리아와 그밖의 본령(本領) 외에 헝가리 ·뵈멘 등을 영유(領有)하고,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王家)와 대항하는 동방의 국제적 세력이었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랑스와의 대립은 나폴레옹 시대까지 계속되어 나폴레옹과도 시종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결국 전쟁에서 패하여 라인동맹 성립을 계기로 신성(神聖)로마제국의 칭호를 버리고, 1804년 이후로는 오스트리아 황제라 칭하였다. 19세기에 와서는 프로이센과의 대항에서 패하여 독일 통일의 지도권을 빼앗기고 독일제국의 세력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 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함으로써 1918년 카를 1세가 퇴위하여 500년에 가까운 황제가(皇帝家)로서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출처 :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