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자유로운풍뎅이41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에 대해 궁금합니다.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백자는 외국에서 더 유명하고 보물처럼 여기던데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어떤 큰 차이점이 있을까요?
고려시대의 도공들이 대를 이어 조선의 백자까지 오게된것인가요?
자세한 정보가 궁금합니다.
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고려청자는는 10~14세기 고려시대 전성기를 이룬 도자기로, 옥색(비취색)의 색감을 띄고 있습니다. 이런 색이 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용하였던 흙이 철분이 포함된 흙을 사용하고 바르는 유약 또한 철 성분이 포함 되어 있어 구워낼 때 청록색을 띄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삼강기법을 통해서 섬세한 세공을 하였기에 우아하고 귀족적인 느낌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러한 느낌의 도자기가 유행하였던 것은 고려시대가 귀족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에,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를 많이 선호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조선 백자는 깨끗한 흰색이 대표적이며, 다양한 무늬를 넣기 보다는 단순하거나 절제된 무늬나 장식이 특징입니다. 백자는 구울 때 백토를 사용하기에 철 성분이 없고, 사용하는 유약도 투명 유약을 사용하기에 깨끗한 백색으로 구워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자가 조선시대 유행하였던 것은 선비 중심의 유교 문화였기 때문입니다. "청백리" 라고도 하는 선비의 검소하고 절제됨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기에, 유행하는 도자기도 검소함을 강조하다보니 백자가 더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이렇게 변화한 것도 있지만, 임진왜란의 영향으로 도자기의 기술력이 많이 소실되었다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은 한편으론 "도자기 전쟁"으로도 불리었는데, 임진왜란 시기에 많은 도공들이 일본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히데요시가 조선의 도자기를 좋아해, 전략적으로 잡아들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의 도자기 기술력이 많이 소실되었고, 반대로 일본의 도자기 기술력은 상당이 발전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아리타 지방의 아리타 도자기나 사쓰마 도자기 등이 있습니다. 고려시대 청자와 같은 도자기는 더 세심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문 도공이 많이 없어진 조선에서는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덜 필요한 백자 생산이 주를 이루었다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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