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조선시대 지방에도 신문고와 유사한 수단이 있었나요?

조선시대 신문고 제도가 태종 때 만들어졌다고 배웠는데, 실제 노비나 평민 같은 서민들도 자유롭게 신문고를 칠 수 있었나요? 기록을 보면 한양에 있는 대궐 문 앞에 설치되어 있었다는데 시골에 사는 지방 백성들은 사실상 이용하기 불가능했던 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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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고는 처음 조선시대 태종이 한양에 설치한 민원 통로였습니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지방 사람들은 활용하기 어려웠습니다. 원칙적으로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장치였지만 실제로는 지방 수령이나 관찰사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모, 해결이 안되면 상급 관청으로 올라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신문고 자체는 없었지만 지방 관어에 직접 소청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임금의 행차나 궁궐 앞에서 징, 괭과리 등을 쳐 호소하는 격쟁이 있었습니다. 또한 글을 아는 사람들은 상언을 통해 억울함을 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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