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고려말에서 조선초 무신인 유만수 인물에 대한 업적 좀 알려주세요.

가족들과 경기도 양주쪽에 문화재가 있어 들렀다가 우연히 역사적인 이야기가 담긴 유만수선생묘를 간적이 있는데요. 고려말에서 조선초 무신이라고 하던데 어떤 역사적 업적이 있는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말 조선초의 무신으로 활약하며 여러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여하여 적군 10만 명을 격파했습니다.

      1392년 요동 정벌에 참여하여 여진족을 물리쳤습니다.

      1394년 사도 정벌에 참여하여 왜군을 격퇴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만수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문화이며 자는 득휴입니다. 유만수는 고려 공민왕 때에 보마배행수 되었고, 장군 등 무관직을 두루 거쳐 전법판서에 이르렀습니다. 우왕이 즉위한 직후에는 밀직 부사와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를 물리쳐 공을 세웠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류만수는 고려 공민왕 시기에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임명되고, 1363년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여러 무관직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우왕 초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습니다. 1377년(우왕 3) 왜구가 쳐들어오자 이성계, 임견미, 변안렬 등과 함께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황해도 각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습니다. 1378년 12월 동북면으로 파견되어 호구(戶口)를 점검 계산했으며 1383년(우왕 9) 2월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겸 합포도순문사(合浦都巡問使)에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해도부원수(海道副元帥) 정지 장군과 함께 남해 관음포(觀音浦)에서 왜적을 무찔렀습니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개경의 숭인문(崇仁門) 방어전에서 최영(崔瑩)에게 패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절제사(節制使)가 되어 이방과(李芳果 ; 후일의 조선 2대 정종 임금)와 함께 해주(海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궁시(弓矢)를 하사받았습니다. 이어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 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습니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더하여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고, 1393년(태조 2) 회군공신 1등에 추록(追錄)되면서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에 이르렀습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석 편에 섰다고 하여 이방원에게 살해당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사 세가 및 류만수 열전, 고려사절요 연대기, 조선왕조실록 연대기 및 류만수 졸기에 의하면 류만수는 고려 공민왕 시기에 보마배행수(寶馬陪行首)에 임명되고, 1363년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여러 무관직을 거쳐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우왕 초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올랐다.

      1377년(우왕 3) 왜구가 쳐들어오자 이성계, 임견미, 변안렬등과 함께 조전원수(助戰元帥)가 되어 황해도 각지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다.

      1378년 12월 동북면으로 파견되어 호구(戶口)를 점검 계산했으며 1383년(우왕 9) 2월 경상도원수(慶尙道元帥) 겸 합포도순문사(合浦都巡問使)에 임명되었다. 당시 해도부원수(海道副元帥) 정지 장군과 함께 남해 관음포(觀音浦)에서 왜적을 무찔렀다.

      1388년(우왕 14)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여 개경의 숭인문(崇仁門) 방어전에서 최영(崔瑩)에게 패퇴하였다. 그러나 이성계가 권력을 잡자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절제사(節制使)가 되어 이방과(李芳果 ; 후일의 조선 2대 정종 임금)와 함께 해주(海州)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여 궁시(弓矢)를 하사받았다. 이어 문하평리상의(門下評理商議) 겸 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이 되었으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더하여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가 되었고, 1393년(태조 2) 회군공신 1등에 추록(追錄)되면서 문하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에 이르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석 편에 섰다고 하여 이방원에게 살해당했다.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만수 선생은 조선 중기에 군사와 문화 분야에서 활약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사적 업적뿐만 아니라 문화와 교육에도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만수 장군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무신으로 활동한 분입니다. 고려시대 공민왕 때 보마배행수에 올랐고 장군 등 무관직을 두루 거쳐 전법판서에까지 올랐습니다. 1374년 우왕이 즉위한 직후 밀직부사를 지내고 왜구가 침범하자 이성계 임견미 등과 함께 조전원수가 되어 왜구를 소탕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