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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가면 로마법에 따른다의 유래는?
유래이 속담은 4세기 기독교 성인인 성 어거스틴(Augustine)에게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로마를 방문했을 때 발견한 관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속담을 사용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밀라노에서의 미사 참석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한 신도에게 "로마에 있을 때는 로마인처럼 행동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로마와 밀라노에서 금식 관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는 일요일에 금식하지 않았지만, 밀라노에서는 그랬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의 관습을 따르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When in Rome, do as the Romans do"라는 속담으로 발전했으며, 새로운 환경이나 문화에 잘 적응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교훈으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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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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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전쟁으로 인하여 유럽지역에는 어떤 대규모 전염병으로 고생하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097년, 1차 십자군이 지나가던 안티오크(Antioch)는 전쟁을 치르기에 훌륭한 요새였다. 하지만 십자군은 굶주림에 지친 상태로 식량을 찾아 수십 킬로미터를 헤매 다녀야 했다. 그해 겨울은 춥고 바람이 많이 불고 습도가 높아서 병사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한편 십자군이 설쳐대는 꼴을 볼 수 없었던 투르크군은 안티오크 방어에 나섰고 프랑스군을 포위해 버렸다.여전한 굶주림으로 모든 여건이 열악한 십자군이 거룩한 신앙심으로 마지막 힘을 모아 포위망을 뚫은 것은 1098년 6월의 일이었다. 그 직후부터 장티푸스로 의심되는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치명적인 이 전염병은 계층의 고하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몇몇 영주가 세상을 떠나는 걸 목격한 다른 영주들은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안티오크를 빠져나갔다. 그러자 전염병도 함께 주변 도시인 마라에 주둔하고 있던 군대를 습격했다. 십자군은 더 이상 안티오크에 머물 수가 없었다. 아무런 작전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추운 겨울에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해야만 했다.2차 십자군이 출범한 1148년, 오늘날 겨울이 되면 유럽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지중해 도시의 하나인 터키 안탈리아(Antalya)에 프랑스 군대가 도착했다. 그런데 장거리 여행을 하는 동안 프랑스군의 전투력은 이미 크게 상실된 상태였다. 터키는 같은 기독교를 받아들인 나라였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전투를 피할 수 없었다. 프랑스 군대는 지형에 익숙한 투르크의 기습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비잔틴제국과 협상을 마치고 루이 왕이 이끄는 군대와 순례자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려 할 때 남아있던 사람들에게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십자군은 각자 능력에 따라 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동시에 장티푸스나 세균성 이질로 의심되는 전염병이 도시 전체를 휩쓸었다. 이 전염병은 남아있던 프랑스 군대의 전투력을 거두어갔고, 투르크가 공격을 시작하자 대부분의 프랑스군이 사망했다.13세기에 들어서자 유럽에서는 한센병이 대유행을 했지만, 십자군은 비타민C 부족에 따른 괴혈병에 시달려야 했다. 1218년부터 약 1년간 이집트의 다미에타(Damietta)를 점령하는 동안 십자군의 약 5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기록된 내용을 보면 괴혈병이 확실해 보이지만 이 병은 이슬람군과 다미에타 시민들에게도 만연했다. 따라서 괴혈병과 함께 다른 전염병도 유행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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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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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한센병을 신이내린형벌로 여겼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당시엔 신이내린 병이라고 생각햇지요. 전염성도 없고 옮는것도 아니었는데.... 보기에 흉하다고 이들을 격리하고 외면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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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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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의 조선건국 사상은 어떻게 되는지?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백성(下民)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써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백성이 인군을 버리고 따르는 데에 있어서는 털끝만 한 여지도 용납되지 않는다."조선의 건국이념을 사대주의, 농본주의, 억북숭유주의로 보던 종래의 주장에 맞서 민본주의와 민족적 주체성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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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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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유대인은 왜 다르며 핍박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독교는 예수의 부활과 메시아이신 그리스도를 믿지만 유대교는 예수를 인정하지 않지요. 오히려 예수를 핍박해서 죽게했지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서로 핍박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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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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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꽃으로 정한 배경이 무엇이며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원히 피고 피어 지지않는꽃 무궁화는 고조선부터 한반도에 자리잡은 꽃인데.반만년 우리 역사와 같이하고 있지요. 국호로 지정된것은 개화기무렵인데, 일제의 침략속에서 굽히지 않고 저항해온 우리민족 정신과 닮은 꽃으로 애국가에도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국화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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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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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인 인물화가는 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대표적인 인물화가로는 조선조기,중기,후기까지 시대순으로 강희안.이상좌.김명국.한시각.김홍도.채용신.장승업.안중식.조석진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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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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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황건적의 난은 어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중국의 한나라 말기 영제가 통치하던 184년에 일어난 종교집단 태평도의 교주 장각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규모의 농민봉기 혹은 역성혁명이다.거록 출신인 장각이 후한 말기에 성행한 황제와 노자를 교주로 삼는 종교인 황로도(태평도)를 통해 신도들을 모아서 스스로를 "대현양사"라 자칭하고, 그 무리들을 모아 신봉자들에게 과오를 깨우치게 하고 부적이나 부적을 태운 재를 탄 물 따위를 사용하여 주문을 외우며 병을 고치는 등의 전형적인 종교집단의 활동을 전개하여 무리들을 이끌어 모았다고 한다.장각은 제자들을 사방에 보내 황로도를 전파하여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의 8주에 무리들이 퍼졌으며, 황실의 환관들과 내통 약속을 받아내는 등 치밀하게 거사 준비를 했으나, 이 사실이 제자들의 밀고로 발각되자 동생인 장보, 장량과 함께 184년에 전국적으로 난을 일으켜서 각지의 주ㆍ군들을 약탈하고 관리들을 죽이는 등 온 세상에 세력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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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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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도 지금처럼 사형수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생명형인 사형은 제한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는 조선시대 지배적 가치관인 유교사상 때문인데, 자연의 원리대로 살 것을 지향하는 유교에서 인위적으로 인간을 죽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면 만물의 생장이 멈추는 겨울에 시행토록 하였다. 또한 사형 판결 자체도 임금이 승인해야 확정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다보니 조선시대 내내 강상에 반하거나 역모를 저지르지 않는 한 사형은 잘 집행되지 않았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뒷날 일제강점기, 현대에는 사형이 남발된 거에 비하면 인명을 중시하는 경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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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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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구성하는 3요소에는 어떤 요소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을 말한다. 인물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 작품 속에 등장하여 사건을 이끌어 가는 주체로 사건을 진행시키고 소설의 주제를 이끌어 낸다. 사건은 등장 인물들이 일으키고 겪는 행동과 갈등으로, 주로 등장 인물들이 일으키는 갈등 요소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배경은 인물이 행동하거나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과 장소를 말한다. 배경은 사건이 일어나는 바탕으로 배경의 묘사를 통해서 등장 인물의 정서와 적절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주제의 암시하거나, 명확히 드러내기도 하며,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사실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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