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우리나라에 김이박 씨가 많은이유?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의 성씨중 유독 김이박 씨 성이 많은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김알지, 김수로왕, 박혁거세 같은 김씨 박씨는 왕조의 후예였는데 조선 초까지만 하더라도 성을 쓰는 것은 양반들만 쓸수있는 일종의 특권이었죠 조선시대에서 전체 인구의 80%는 성이 없는 평민이나 천민이 었는데 이 천민들이 성을 갖게 된 역사적인 배경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신분계급 타파에 있습니다 1909년 "민적법" 이라는게 실시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사극에서 접하는 이름 돌쇠 개똥이도 이때부터 성과 이름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때는 호적 담당 서기가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 주거나 노비의 경우는 모시고 사는 상전의 성을 따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지역에서 유명한 성씨를 같이 쓰기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전주에서 출생한 사람은 전주 이씨로 경주에서 출생한 사람은 경주 김씨나 경주 최씨로 정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양반들의 성을 따르다보니 김이박씨가 많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2.03
0
0
광해군은 실제로 폭군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은 전란으로 인한 피해와 세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백성들을 위해 세금 제도 개혁안인 대동법을 반포 하였고 대동법은 간단히 말해서 땅을 가진 사람이 원래 내던 토지세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내던 세금을 대신 더내는 세금 법인데 즉 땅이 없는 농민들은 세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이었고 당연히 지주들과 평소에 광해와 반한 길을 걷던 서인들의 불만은 더 커지게 됩니다 이에 멈추지 않고 광해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하고 경희궁을 준공하며 왕건을 굳건히 했고 이외에도 호패법 재실시 동의보감 반포 등 백성의 삶이 안정되도록 많은 힘을 썼습니다 그 중에서도 광해군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중립 외교를 꼽을 수 있는데 명과의 명분을 저버리지 않는 한편 후금과의 관계도 적절히 유지하며 실리를 극대화하는 정책이었죠 나라가 망하더라도 의리와 명분을 지켜 후금과 전쟁 하고 있는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서인들은 광해의 중립외교 때문에 불만이 극에 달했지만 후금과 조선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광해군은 폭군이 아니었지요 다만 광해군을 싫어했던 서인들의 수작으로 보입니다
학문 /
역사
23.02.03
0
0
고려시대 벽란도에 대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고려시대 외국에 사신과 상인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던 나루로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고려 국제무역항 이였습니다 고려시대 이곳에는 송나라 사신을 위해 벽란정이란 관사가 설치 되어 있었는데 이를 따서 벽란도로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조세미 등을 운반하는 도선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지요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한 이후 고려 세자는왕위에 오를 때까지 원나라에서 인질로 잡혀가 있어야 했는데 유숙은 공민왕이 될 어린 세자를 모시고 20년 가까이 원나라 땅이 있다가 1349년 벽란도를 통해 귀국하였는데 이때 그 감개무량한 정한을 벽란도라는 시로 남겼지요 또한 고려말 홍건적의 난과 외구의 준동 등으로 무역이 크게 위축되었으며 조선의 건국 후에는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국가 정책적으로 상업을 통제해 국제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을 상실을 하였습니다. 현재 북한에 어떻게 보전되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학문 /
역사
23.02.02
0
0
우리나라는 왜 분단국가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된 후에 남쪽의 지도자 이승만은 민주주의를 북쪽의 지도자 김일성은 공산주의를 주장하며 나라를 세웠는데 이것이 결국은 남북한이 나누어지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계속해서 김일성은 남한을 침범하여 1950년 6.25 전쟁을 일으키고 우리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나라로 만들려고 했지만 세계의 우방국들은 군대를 파견하여 대한민국이 공산주의가 되는 것을 막고 삼팔선을 그어 우리나라가 나눠지게 되었죠
학문 /
역사
23.02.02
0
0
?(물음표)와 !(느낌표)의 어원이 뭔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먼저 물음표는 의문이나 의문을 나타내는 어구의 끝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점심 먹었어? 남북통일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뭐라고? 느낌표는 감탄문이나 감탄사의 끝에 쓰는데 예를 들면 이거 정말 큰일 났구나! 어머! 꽃이 정말 아름답구나! 이야 정말 멋지구나! 이렇게 표현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음표와 느낌표는 라틴어에서 왔다고 하는데 물음표는 Qo를 문장 끝에 쓰다가 ?로 단순화했다고 하며 느낌표 또한 라틴어의 감탄사인 io가 변하여 ! 가 되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2.02
0
0
우리나라의 전통소스인 된장 고추장은 언제부터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특수한 고추장은 간장이나 된장 보다는 늦게 개발이 되었습니다 간장이나 된장은 상고시대부터 있어 온 것으로 추측이 되나 고추장은 고추의 도입 이후에 개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 에는 고추가 일본에서 도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16세기 말에 전래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추장 제조법이 기록된 최초의 문서는 1760년 경에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이므로 고추에의 재배파급은 급속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증보산림경제" 에는 메주를 가루로 만들어 체로 친 것 한 말 고춧가루 3홉 찹쌀가루 한 되를 넣고 좋은 간장으로 개어서 담근다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대체로 오늘 날과 같은 것입니다.
학문 /
역사
23.02.02
0
0
조선에 천주교가 퍼진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선조 말년 "천주실의" 란 책을 통해서 였다 18세기에 들어와서는 학자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천주교를 검토하기 시작하였는데 주로 남인 학자들이었으며 대표적인 사람으로 성호 이익을 들수가 있다 당시 조선사회 이데올로기가 되었던 주자학은 관념적인 이론으로 붕괴해가는 조선봉건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못하게 되자 현실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용을 주장하였는데 그때 마침 연경을 통해 들어온 천주교가 주목이 되었다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었던 서학이 점차 신앙적 처음으로 나가며 그런 현상은 성호의 제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784년 정조 8년부터는 이벽뿐 아니라 남인계통의 학자, 사대부들이 중심이 되어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어 정조 중반에 이르러서는 더욱 치열해지고 심지어는는 삼남 지방에까지 퍼졌는데 특히 유림의 본고장인 경상도에까지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파는 단순히 교리의 전파 차원을 넘어 신앙 실천운동의 차원으로까지 발전하였으며 가령 정조 연간에는 천주교도들이 사당을 부수고 제사를 폐지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무리가 해서로부터 관동에 걸쳐 번성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2.02
0
0
갑신정변에 대해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읽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갑신정변은 1884년 12월4일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인데 일본공사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난을 일으켰고 고종을 속이고 내각을 구성해 정강 14조등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군이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고 민중들이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자 퇴각하는 일본군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하여 3일 천하로 끝난 난이 되었지요 이로 말미암아 고종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으로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의 인재들이 사라져 향후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인데 만약 성공했다면 우리나라가 빨리 개화되는 시기를 맞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문 /
역사
23.02.02
0
0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 정말 존재할까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 눈에 보이지않는 바람이 있다는걸 믿으시죠? 눈에 보이는것만이 존재하는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것이 많이 있지요 과학으로도 증명할수 없는것이 바로 신앙이지요 그러나 신에 대한 많은 체험들이 유투브에 있지요 그래서 저는 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학문 /
철학
23.02.02
0
0
조금 있으면 정월 대보름 이네요.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월 대보름날 전국 곳곳에서는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며 갖가지 민속놀이와 풍속을 즐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마을 제사 지내기, 달맞이 소원빌기, 더위팔기, 다리 밟기,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는 부럼깨기도 있지요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 날밤, 호두, 은행, 잣 같은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풍속인 부럼깨기는 한해 동안의 각종 부스럼을 예방하고 치아를 튼튼하게 하려는 뜻에서 행해졌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2.01
0
0
199
200
201
202
203
204
205
206
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