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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은 무엇을 보고 소설책이라고 하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실 세계에 있을 수 있는 일을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 인생의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 소설의 특성은 허구성, 진실성, 서사성 등이다. 허구성은 작가의 주관과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가공의 세계라는 점, 진실성은 소설이 허구의 세계이지만 인간성의 진실을 밝혀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점, 서사성은 인물, 사건, 배경 등을 갖춘 일정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소설 구성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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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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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님의 유해를 찾기 위해 우리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 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재 많은 분들이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그러나 저희 사업회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안중근 의사께서 순국하신 뤼순감옥으로부터 동쪽으로 500m 가량 떨어진 '뤼순감옥구지묘지(旅順監獄舊址墓地)'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뤼순감옥의 죄인묘지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굴이 시도되지 않았던 곳입니다.2008년 정부의 공식 발굴 조사 당시에는 엉뚱한 지역만 발굴하고, 이 지역에 대한 발굴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결국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내지 못했던 것이죠.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담당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정책과에 지속적으로 건의를 하는 등, 저희 사업회도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렵기만 합니다. 이런 일들은 국민적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안중근뼈대찾기사업회>: http://cafe.naver.com/ahnjungg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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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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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예술에 미친영향??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 ·시인.2. 이탈리아 카프레세에서 출생. 카프레세 출생.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나, 양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13세 때에 기를란다요(Ghirlandajo)에게 입문함.3. 조각가 베르톨도(Bertoldo di Giovanni:1420?∼1491)에게로 옮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배우면서, 메디치가(家)의 고대 조각을 연구하였다. 그 때 로렌초 일 마니피코(Lorenzo il Magnifico:1449∼1492)에게 인정받아, 그의 집에서 체류하게 되어, 인문 학자들과도 접촉, 고전문학이나 신구약 성서를 탐독함과 동시에, 조각을 위한 인체 해부에도 전념하였다. 블랑카치성당 마사초의 벽화 앞에서 토레지아니와 논쟁하다가 코뼈가 부러진 것도 그 때의 일이며, 이때의 작품으로는 피렌체의 카사 보나로티에 남아 있는 도나텔로풍의 《스칼라의 성모》와 고전적 격조를 보인 《켄타우로스족과 라피타이족의 싸움》의 부조(浮彫)가 있다. 1492년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죽은 후, 프랑스군이 침입하자 볼로냐로 피난, 거기서 J.d.퀘르치아의 조각도 배웠다.4.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 아름답지 않고 의미가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의 많은 작품 중에서 ‘최후의 심판’을 예로 들어보면 이 작품 역시 도상학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당시의 개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형태와 개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신성해야 할 성인들이 발가벗은 채 등장하고 천사들은 날개도 없이 못 생긴 얼굴을 하고 있는 등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벗어난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가톨릭의 교리는 물론 프로테스탄트 사상까지 내포하고 있으니 한 인간의 폭넓은 사상을 마음껏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은 작품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에도 기인하지만 그가 평생 잃지 않았던 자유분방한 사고와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에도 기인한다. 미켈란젤로는 진정한 권력은 실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가로서의 고집과 주관을 기라성 같은 후원자들 앞에서도 당당히 주장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의 작품에 토를 달거나 그의 기분을 언짢게 한 자는 상대가 누구였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대상 중 한명이 비아지오 체세나라는 추기경인데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작업 현장을 방문한 추기경이 벌거벗은 인물들에 대해 한마디하자 그를 지옥의 사신 미노스로 그려놓음으로써 영원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그 즉시로 “교황이 날 찾으면 내가 없다고 하라”고 전하며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내려왔고 교황이 다시 그를 부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는 일화는 권력 앞에서 당당했던 그의 용기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준다.5. 미켈란젤로의 양식은 조각, 회화, 건축 각 분야에 걸쳐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완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특히 후반생(後半生)에 있어서는, 내면적 정념 표출을 강조하는 육체 표현과 복잡한 구성으로, 마니에리슴, 바로크를 예고하고 있다. 젊을 때, 사보나롤라의 사상과 피렌체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1530년대 이후 점차로 신비주의적 경향을 더한 사상 편력의 흔적이 많은 시나 서간 가운데 남아 있고, 거의 500점에 이르는 데상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는 물론, 후세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주요작품 : 《다비드》(1504)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1541)<미켈란젤로의 생애>1475년 3월 6일, 이탈리아 카프레저에서 출생. 부친은 피렌체의 지방 행정관.1495년(20살) 교황의 특별 배려로 미켈란젤로, 연말경 피렌체로 귀환. 사보나롤라가의 인민의 정부제를 찬성한 피에로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를 위해 〈세례자 요한〉, 〈잠자는 큐우핏〉을 조각.1496년(21세) 교황의 초청으로 6월 25일 로마를 방문.1497년(22세) 7월, 〈바커스상〉제작. 이 작품은 은행가 갈리의 주문에 의한 것임.1498년(23세) 추기경 리얼리오가 주문한 〈성 프란체스코의 성흔배수〉의 초벌 그림을 그림. 〈아폴론상〉제작.1499년(24세) 다음 해까지 〈피에타〉제작.1501년(26세) 봄, 피렌체 정부의 초청으로 피렌체 귀환.1503년(28세) 4월 24일, 피렌체 대성당을 장식할 12체의 등신대 12사도상 제작을 계약. 연말 〈드니가의 성가족〉, 〈성모자〉조각 착수.1508년(33세) 2월 21일, 〈율리우스 2세 상〉완성.1509년(34세) 1월 27일 부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황으로부터 한푼의 보수도 받지 못했다고 불평.1510년(35세) 시스타나 예배당 천장화 제작을 계속.1523년(48세) 제네바 원로원으로부터 〈안드레아 도리아상〉을 의뢰받음. 11월 19일, 추기경 쥴리오 데 메디치, 새 교황으로 선출되고, 클레멘스 7세가 됨. 12월, 미켈란젤로 로마를 방문. 클레멘스 7세와 만나 성 로렌초 성당 도서관의 건립 계획을 부활시킴. 율리우스 2세의 묘각에 관해 유언 집행자들과 타협을 계속.1524년(49세) 〈아침〉, 〈저녁〉조각 작품에 착수.1525년(50세) 교황 클레멘스 7세, 성 로렌초 성당 천장화 제작을 의뢰. 12월, 교황의 거상 제작 계획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음.1526년(51세) 3월 10일, 메디치가 예배당의 〈성모자〉, 〈로렌초 데 메디치〉상을 제작.1527년(52세) 5월 7일, 황제 군이 로마 점령. 5월 21일, 피렌체 공화제 선언.1528년(53세) 망명 중인 교황 클레멘스 7세, 미켈란젤로에게 메디치가의 두 공사를 속행하도록 거액의 돈을 줌.1529년(54세) 1월 10일, 피렌체 공화국이 영도하는 피렌체 방위 9인 군사위원으로 뽑히고, 4월 6일에는 축성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대세의 불리함을 깨닫고 9월 21일 피렌체를 탈출. 프랑소와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에 망명하려고 했으나 피렌체 공화국의 귀국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귀국, 축성장관으로 다시 일함.1530년(55세) 펠라라 공이 주문한 〈레다〉를 그림.1535년(60세) 새 교황 바오로 3세 시스타나 예배당의 〈최후의 심판〉을 다시 의뢰. 9월 1일 미켈란젤로, 교황청어용 최고 건축가, 조각가, 화가로 임명됨.1536년(61세) 교황 바오로 3세, 〈최후의 심판〉이 완성될 때까지 율리우스 2세 묘각 일에서 손을 떼도 좋다는 칙서를 내림.1537년(62세) 피렌체 공 알렉산드르 데 메디치 암살됨. 여류 시인 비토리아 콜로나와 깊은 우정을 맺음.1541년(66세) 10월 31일 〈최후의 심판〉공개됨. 교황 바오로 3세, 장엄한 미사를 집전.1542년(67세) 5월 16일, 율리우스 2세 묘각의 상부 건축을 위해 석공들과 계약 체결. 7월 20일, 바울 3세에게 10년 전의 계약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간청. 8월 20일 율리우스 2세 묘각에 관한 다섯 번째의 갱신 계약을 체결. 2체의 상은 다른 조각가에게 맡기기로 함.1543년(68세) 파올리나 예배당의 〈사울의 회심〉속행.1544년(69세) 6월, 중병에 걸렸으나, 스트로치가의 따뜻한 간호로 죽음을 면함.1545년(70세) 제자들 손으로 메디치 가 예배당 완성.1546년(71세) 1월, 재차 병을 앓아 스트로치가에서 치료를 받음. 파올리나 예배당의 〈성 베드로의 책형〉에 착수. 10월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감독에 임명되고, 12월 그 최초의 점토 모형을 제작.1547년(72세) 2월 25일 우애로 맺은 여류 시인 콜로나 사망.1548년(73세) 1월 9일, 동생 사망. 5월 2일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보낸 편지에서 「요도폐새」를 호소하고 「나는 3인의 교황(실제는 4인) 밑에서 일했으나 언제나 부친과 형제의 명예를 보지했다」고 술회.1550년(75세) 파올리나 예배당의 〈성 베드로의 책형〉완성. 이 해 최초로 미켈란젤로의 전기 「화가, 조각가 및 건축가의 생애」초판 출간.1552년(77세) 바티칸궁 계단을 설계.1555년(80세) 새 교황 바오로 4세, 그의 지위를 확인. 성베드로 성당 크폴라 건축을 의뢰. 이때 〈팔레스트리나의 피에타〉를 착수. 나중에 제자들이 완성시킴.1556년(81세) 2월 23일 우르비노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나는 벌써 예측하기 어려운 비참한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술회. 9월 스페인 군이 접근하자 스폴레트로 피난. 이곳에서 교황의 귀국 명령을 받음.1560년(85세) 프랑스 앙리 2세 기념상을 디자인. 밀라노 대성당 묘비와 로마 성문을 설계했는데, 이 성문의 건조는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됨.1561년(86세) 로마의 산타 마리아 델 안젤리 성당을 개조 설계.1564년(89세) 2월 18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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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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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는 어떤 예술 단어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방가르드는 전쟁에서 본대에 앞서 선두에 나가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부대를 일컫는 군사용어에요~ 아방가르드는 또 20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예술 운동으로 기성의 예술 관념과형식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이룩하려 했던 움직임을 일컫는 용어입니다~입체파와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형식적인 예술을 모두 포함하죠! 특히 문학에서는 체코의 프란츠 카프카가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작가로 일컬어 져요! 쉽게 말해 기존의 예술관념이나 형식을 부정하고 ! 혁신적인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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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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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은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약현성당이 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처음 조선조 고종 27년(1890) 순화동에 강당을 짓고 포교하다가 정가밀로 신부가 책임자로 부임하여 약현 언덕 위 김군선 소유의 대지를 사서 1891년 10월 27일 정초하고 1892년 9월 준공을 보았다. 설계자는 당시 부주교이던 프랑스 신부 코스트(Eupance Jean, George Coste)로서 중국인 기술자들이 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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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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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권위있는 문학상에는 어떤게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 문학상수여시기 : 매년 10월수여 장소 : 한국 문화 예술 진흥원기타사항수상분야 : 한국 문학시상 내역 : 일반, 평론, 아동, 번역, 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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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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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이 남긴 업적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423 : 세종대왕이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 생각을 함. 기계 다루는 솜씨와공작 솜씨가 뛰어난 장영실은 세종대왕의 부름을 받고 대궐로 들어감.세종대왕에게 재주를 인정받고 중국으로 가서 공부할 기회를 가짐.귀국하자 노비의 신분을 벗고 상의원 별좌에 오름.1424: 물시계 완성.1432 : 간의대 건축 공사를 감동하고 여려가지 천문기구를 만들 계획에 착수함1433 : 이천,정초 등의 도움을 얻어 혼천의를 만들고 호군(정 4품 벼슬)으로 승진함1434 : 이천을 도와 구리 활자인 갑인자를 주조함. 그리고 김빈과 함께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를 완성, 경복궁 경회루 남쪽에 보루각이라는 집을 짓고, 7월1일에 자격루를 통한 표준 시각을 정함.1437 : 천문 관측기구인 대간의, 소간의를 만들고,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일구등을 만듦 남북의 방위가 정해진 해시계 정남일구를 만든뒤, 우리나라 최초의공중시계인 앙부일구를 만들어 서울의 혜정교와 종묘 남쪽 거리에 설치함. 밤낮으로 천체를 관측할수 있는 일성 정시의 라는 기구와,방위,절기,시각을 측정할수있는 높이 8미터의 규표라는 천문관측 기구를 만듦1438 : 시간도 알고 천체의 움직임도 관측할수 있는 옥루를 만들어, 흠경각에 설치함.그후 채방별감이 되어 경상도 땅으로 내려가 철의 생산을 늘림.1441: 다시 한성으로 올라옴,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 이탈리아의 베네데토 가스텔리가 만든 측우기보다 200년 앞선 것임. 역시 세계 최초의 수표를 만들어 청계천의 수표교와 한강에 설치. 이 공으로 정 3품벼슬인 상호군에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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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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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고 베스트셀러인 책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책 1위는 '[성경]'이다. 2위는 '스포크박사의 육아전서'다. 3위는 미국의 대공황기인 1936년에 등장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한국 현대사에서 1920년이래 8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책의 양은 얼마나 될까? 대형 베스트셀러라 할지라도 1960년대 이전에는 3만부 내외, 대중 독자군의 출현을 처음 알린 '별들의 고향'(최인호)이 등장한 1970년대에는 10만부에 불과하던 것이 1980년 '인간시장'(김홍신)이 단기간에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이후에는 한 해에도 몇 권씩의 밀리언셀러가 등장했다.그 중에서도 낱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무엇일까? 실용서인 크라운 출판사의 '자동차 운전면허 예상문제집'이다. 24년간 운전면허 시험을 본 사람의 70% 이상이 보았을 것으로 보아 1000만권 이상이 팔려 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다른 출판사의 문제집까지 합하면 2000만권이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10권으로 된 '삼국지'([이문열])의 판매기록 1150만부의 2배 가까이 되는 기록이다.2위는 매년말 명문당,남산당 등 여러 출판사에서 어김없이 출간하는 '대한민력'이다. 이 책은 많은 가정에서 매년 반복 구매하는 거의 유일한 책이다. 그 다음이 '일반상식'. 지금은 수요가 크게 줄었지만 80년대만 해도 고졸 이상의 취업자는 '일반상식' 한 권은 의무적으로 구입하다시피 했다.이러한 실용서나 학습참고서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추정되는 것은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다.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동심의 눈에 비친 어른의 허위의식을 잘 드러낸 이 책은 한국인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 교양 성장소설로 자리잡았다. 단행본으로는 1972년에 처음 나온 문예출판사 것만도 120만 권이 팔려나가는 등 모두 600만 권이 팔려나갔다. 100여 출판사 이상에 의해 중복 출간된 것도 한국 출판사상 최고의 기록. 이 책은 지금도 매년 태어나는 60만 명의 어린이 중 3분의 1인 20만 명에게 읽혀지고 있다고 봐야한다.이 책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들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이솝의 '이솝이야기' 리차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J 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등이다. 이 책들은 한결같이 교양 성장소설이며 중복 출판이 이뤄졌다. 모두 300만 - 500만부가 팔려 나갔다.한 출판사에서 한 종으로 발간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아침나라에서 발간한 '세상을 보는 지혜'(발타자르 그라시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인정받는 삶의 지혜에 대한 명구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소중한 사람 앞에 놓아주고 싶은 책'이라는 일관된 광고 카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대형서점 114연속 베스트셀러 1위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240만부나 팔렸다.다음으로 '아버지'(김정현), '무소유'(법정),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석용산), '배꼽'(오쇼 라즈니쉬)의 순이다.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당대 아버지들의 초상을 그린 '아버지'는 정보혁명이 시작되던 1966년에 등장해 6개월만에 200만권 판매를 돌파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1976년에 300원 정가의 문고판으로 등장한 '무소유'는 4반세기 가까이 대중의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며 180만 권이 팔렸다. '여보게 저승갈 때 뭘 가지고 가지'는 150만부, '배꼽'은 140만부를 기록했다.인문서로서 최대의 반응을 일으킨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다. 의미 있는 여행의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선 이 책은 '답사'라는 여행문화를 새롭게 정착시키며 '문화기행문'의 출간을 촉발시키는 등 수 많은 신드롬을 일으켰다. 1권만 120만 권이 팔렸다.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한국에서 초판이 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난 1991년에 뒤늦게 스테디셀러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예. 당시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던 텔레비젼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여주인공이 남자 친구에게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도 모르는 애와 사귈 수 없다'는 대사를 한 뒤 하루 5천권부 이상 팔려 나갔다. 내용이 쉽지 않은 이 책도 수십 여 출판사에 의해 중복 출판되며 100만부 이상 팔렸다.경제 관련 서적으로는 곧 100만부 돌파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꼽을 수 있다. 성공적 인생을 산 사람들의 삶을 분석해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습관을 분석한 이 책은 리더쉽이나 처세서의 판도를 바꿔 놓았다. 대인관계의 변화를 통해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기존의 처세술과는 달리 이 책은 습관을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 책의 성공이후 '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리처드 칼슨), '생각의 속도'(빌 게이츠)와 같은 새로운 개념의 자기개발 책이나 경제적 거대담론을 다룬 책들이 자주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게 되었다.시집으로는 '홀로서기'(서정윤), '접시꽃 당신'(도종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가 모두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시집으로 최초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1995년에 출간된 조병화의 '사랑이 가기전에'. 요정의 기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이 시집의 성공 이후 대중 취향의 연시풍 시집 베스트셀러 진입 전통은 반세기 동안 일관됐다.출판의 종수가 다양해 질수록 독자들의 독서경향은 오히려 획일화 돼 '메가히트'상품이 늘어난다. 그것은 대중이 끊임없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생동감 있는 '스타'와 같은 인물을 원하고 그런 스타에 버금가는 인물이 고민하는 문제를 다룬 책을 경쟁적으로 찾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책 판매의 최고기록은 끊임없이 경신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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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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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업적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훈민정음(한글) 1446년 9월 3일(양력 10월 9일)반포되었음2. 최초의 공중 해시계 앙부일구(보물 845호)3. 측우기 (세계 최초의 우량계)4. 물시계 (자격루, 옥루 등)5. 일성정시의(별이 자리를 옮기는데 따라서 밤 시각도 알게 만든 시계)6. 4군6진 개척,7. 군사제도 개편,8. 조선통보 주조9. 박연에게 아악을 정리하게 하였으며, 악기를 개조하였고, 음악을 발달시켰음10. 구리로 된 『 갑인자 』라는 활자를 주조하게 하여, 많은 책을 남겼음11.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농업에 관한책 '농사직설' 편찬12. 우리 나라 최초의 지리책 '팔도지리지' 편찬13. 1445년 '치평요람'완성14.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지었음15.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이 밖에도 수많은 업적을 남겼음.세종의 업적1. 유교정치의 기틀 마련세종대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대였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기틀을 잡은 시기였다.즉,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貢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하였다.이 많은 일들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세종이었다. 세종은 태종이 이룩한 왕권과 정치적 안정 기반을 이어받아 이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리고 세종 4년까지는 태종이 상왕으로 생존해 영향을 주었다. 태종은 1414년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실시해 의정부 대신의 정치적 권한을 크게 제한하고 왕권의 강화를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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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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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L(프리미어)리그는 언제시작 되었으며 프리미어리그가 창설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88년에 출범했고요 !잉글랜드와 웨일즈 소속 클럽들이 당시에는, 같은 리그에서 뛰었습니다. (북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는 리그 존재)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유를 꼽으라면..1. 헤이젤 참사 등 (잉글랜드 훌리건들에 의한)의 이유로.. 유럽 클럽대항전 제한조치를 받게 된것도 이유고요 !2. 스페인-이탈리아 등 프로축구 경쟁국가 에게 밀리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작용했습니다.3. 현대화된 구장,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방송장비 등에 신경을 많이써서, EPL 출범후, 세계화 (외국에, 자국리그 수출이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지금, 세계에서.. EPL 축구중계 해외 나라 (특히, 아시아 시장)에 팔아서, 짭짤하게 수익창출 거두고 있죠 !! 프리미어리그 출범은 1992년 부터 입니다. 당시에는, 22개팀까지 있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1992~93시즌)
학문 /
역사
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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