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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현재와같은 국방부가 따로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군제는 군의 창설·유지 및 운용에 관한 일체의 제도이다. 한 나라의 군제는 국방체제·병역제도·군비·교육훈련·군수물자 조달 등의 내용을 포괄한다. 그 형태는 국가제도와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시대적 성격이나 전쟁의 형태에 영향을 받아 변천해 왔다. 군제는 국력을 반영하며 군제의 우열 여부는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기도 하였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군제(軍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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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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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다고 했을때, 반대세력은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집현전 학자를 중심으로 성리학자들은 한글 창제와 보급과정에서 크게 반발했습니다. 이에 세종은 세자(뒤의 문종)와 수양대군(세조) 그리고 집현전 하급관리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으며 세조는 선왕의 유지를 이어 한글 보급에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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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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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보다 오래사는 생물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가장 수명이 긴 ‘최장수 동물’ 순위가 새롭게 결정됐다. 사람과 같은 척추동물 중 가장 오래 사는 동물은 대서양의 ‘그린란드상어’로 400년 이상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11년 이상을 살아 가장 수명이 긴 척추동물로 알려졌던 ‘북극고래’보다도 2배가량 오래 사는 셈이다.-출처: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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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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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통일한 수나라가 고구려를 이기지 못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양제의 고구려와의 전쟁에 대한 집착이 수의 멸망에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고구려의 요서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고구려와 수의 전쟁으로 결국 수가 멸망하였지만 중원과 고구려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당이 세워진 후에도 고구려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출처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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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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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북과 강남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은 원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며 우리민족의 역사를 간직한 한강의 유래는 어떻게 되는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검룡소(儉龍沼)는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에 있는 분출수로 대덕산과 함백산 사이에 있는 금대봉(해발 1,418m) 자락의 800m 고지에 있는 소이다. '민족의 젖줄'로 불리는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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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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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는 왜 음력으로 지내지않을까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대한민국에서는 조선시대 무렵부터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음력을 중심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음력은 기후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음력 달력만으로는 농사를 짓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양력의 요소를 도입한 것이 24절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24절기는 음력이 아닌 양력과 잘 맞는다.--자료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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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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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이 누구의 무덤인가요?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농경이 도입되어 계급 분화가 점차 나타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에 주로 만들졌으며, 수십에서 수백 톤이나 되는 거대한 바위를 이용했다. 이에 많은 인력을 동원해 옮겨서 짓는방식이기 때문에 대개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 --자료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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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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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정조가 백성을 위해서 펼친 여러가지 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재위 기간 중 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에 치중하였으며, 친위부대인 장용영의 창설과 자신의 저서 《홍재전서》를 비롯한 문집과 법전의 재간행, 수원 화성 축성 등을 추진하였다. 무예와 함께 유학의 각 경전에도 두루 통달하여 경연장에서 신하들을 강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 후기의 중흥기를 이끈 대표적인 군주로 평가된다.--자료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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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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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바둑의 유래는 대부분 고대의 전설에 의존하는 형편이며, 사실(史實)이 기록된 문헌도 드물다. 그러한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고대 중국의 요(堯)·순(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단주(丹朱)와 상균(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설이다.http://m.baduk.or.kr › story바둑의 역사 - 한국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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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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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행사중 지신밟기가 있던데 이건뮤니가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지신밟기는 한국에서 세시 풍속으로 하는 놀이의 하나이다. 주로 영남지방의 농민들 사이에 행한다. 음력 정월보름날에 행하는데 이 놀이의 뜻은 그 동리와 동리 집집의 지신을 밟아서 잡귀를 쫓아, 연중 무사하고 복이 깃들이기를 비는 데 있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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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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