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과거 천주교를 박대한 이유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천주교 박해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교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의 교리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 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유교주의 사회에서는 신분의 차이가 확실하고, 그 신분에 따라서 해야 하는 일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반 중심의 사회인 조선에서는 천주교의 존재 자체가 본인들의 사회를 무너뜨리는 [사회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이에 자신들의 사회를 지키기 위해 천주교를 부정하고 박해하였습니다.그리고 이런 천주교를 정치적인 이유로 사용하였기에, 더 큰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새로 떠오르는 세력인 남인과 시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그들이 천주교와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빌미로 신유박해와 기해박해 사건을 저질러 학살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당시에 남인 세력과 함께 많은 천주교인들이 살해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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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영화에서 엄흥도 역을 맡은 유해진 님이 주인공 같은데 엄흥도는 단종 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엄흥도란 인물은 실존 인물입니다. 다만 기록이 많이 있는 인물은 아닙니다. 엄흥도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의 중종실록에서 확인 가능하며, "당초 돌아갔을 때 온 고을이 황급하였는데, 고을 아전 엄흥도(嚴興道)란 사람이 찾아가 곡하고 관을 갖추어 장사했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위 내용은 단종(영화에서는 노산군)의 사후 고을 아전 엄흥도란 인물이 장례를 치뤄주었다는 내용으로, 이외의 엄흥도에 대한 공인 기록은 없습니다. 또한 중종대 학자 이자의 기록으로 비슷한 내용의 기록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셨다면 영화 최후반부에 자막으로 나온 내용입니다.)엄흥도에 대한 이외의 기록들은 엄흥도의 자손인 영월 엄씨 설화로 내려오는 기록만 남겨져 있으며, 설화적인 요소도 같이 섞여 있어 진위여부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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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 문명의 산물은 무엇인지 답글 바랍니다만…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옛 로마 문화의 산물이 현재까지 이어저 온 것은 많이 있겠지만, 가장 대표적으로는 그리스도교(기독교/천주교 등)를 들 수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교가 퍼져 있는 이유는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토대로 유럽 -> 전세계로 종교가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그 외에 로마의 법이 현대의 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는 유럽을 넘어 아시아까지 영향력을 펼칠 정도의 대제국이었습니다. 로마의 통치 영향력이 그만큼 넓었기 때문에, 로마법도 전세계적으로 많이 퍼지게 되었고 로마법이 기본법처럼 굳어져 현대의 법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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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시 중세시대의 고성 이 어떤역할을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독일의 고성 가도는 1950년대 독일 정부에서 관광 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성한 테마 가도 입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테마 가도를 만들었으며, 우리 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것은 로멘틱 가도가 있습니다.문의주신 고성 가도에 다양한 성이 있는 이유는, 중세 시대 독일은 통일 국가가 아닌 수백개의 영주국이 모여서 만들어진 나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영주들이 자신의 성을 따로 지었고, 독일은 유럽에서도 가장 성이 많고 밀도가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이 현재와 같은 통일 국가가 된 것은 1871년 독일 제국 수립 이후이며, 이전까지는 각 가문들이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국 형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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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신라는 대화가 통했을까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3국의 언어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지만, 계통이 비슷하여 말이 어느 정도 통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학계에 따라서 그 차이가 많아 어느 것이 맞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백제와 신라는 한반도 문화이기 때문에 통하고 고구려는 안통하였다고 하는 연구도 있고, 오히려 백제와 고구려가 통해 신라가 안통했을것이다 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물론 세 나라가 모두 통하였다고 하는 연구도 있구요.)다만 확실한 건, 문화권이 크게 차이나지 않아 서로 어느 정도는 소통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일부 어휘나 문법에서 유사성이 있고, 전체적인 단어들에서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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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숫자가 전세계로 퍼진 이유?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아라비아 숫자가 전세계적으로 퍼진 가장 큰 이유는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가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 사회에 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한 그 피보나치가 맞습니다.) 이전까지 유럽은 로마 숫자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피보나치의 "주판서"라는 책에 의하여 아라비아 숫자가 유럽에 소개되게 됩니다. 로마의 숫자보다 아라비아 숫자가 더욱 사용하기 편리하였고, 특히 "0"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학적으로도 사용하기 더욱 쉬웠습니다. 그로 인해 유럽 사회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중심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유럽의 세계 진출로 인하여 전세계적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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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세계화는 지역 고유성을 약화시키는 결과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질문자님의 내용에 그대로 있듯이 문화의 정체성이 희석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문화의 세계화가 무조건적으로 고유성을 약화시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로 하자면 일본의 스시를 들 수 있습니다. 초밥은 일본어로 스시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 스시를 홍보할 때 본인들의 고유 명사인 "스시" 그대로 홍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진출을 위하여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게 "캘리포니안 롤"이었습니다. 스시와 제작법이 유사하지만 아보카도를 사용하여 미국인들에게 쉽게 다가갔고, 이것이 스시를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안 롤로 서양권에 스시가 소개되고, 이것이 유행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 고유의 스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서양권에서 일본으로 스시를 사먹으로 여행을 올 정도로 스시는 세계적인 음식이 되었습니다.위의 사례처럼 문화의 정체성이 희석되지 않고, 고유의 문화를 세계로 알리기 위하여 세계화를 이용한 경우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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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란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어떤 역할인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이스라엘과 이란은 원래 이스라엘 건국 초기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사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원래 이스라엘과 원시간인 팔레스타인과는 다르게 중동 국가 중에서도 친미적인 성향인 국가였습니다. 그러나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호메이니(이번 폭격으로 죽은 이란의 수장입니다.)가 집권하면서, 급격하게 반미 성향의 국가로 변화하였습니다.호메이니 집권 이후 이란은 이스라엘과 분쟁 관계에 있던 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에게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도 하였고, 이슬람 무장 단체인 하마스나 헤즈볼라를 지원하면서 대리 전쟁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중동에서 미국을 몰아내기 위함이었고, 이스라엘의 친미의 선봉장과 같은 국가이기에 집요하게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이전까지 이란은 위처럼 다른 국가나 단체에를 지원하는 대리전쟁으로 이스라엘과 분쟁을 하였으나, 20년대에 들어서면서 직접적으로도 부딪히기도 하면서 지금의 관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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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 한국사 서술형대비 방법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시험에 나오는 서술형은 거의 대부분이 답이 정해져 있습니다. 역사와 관련된 서술형에서 중요한 건, 그 정답까지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어떠한 사건만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이전의 상황과 어떠한 경과로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떠한 상황까지 왔는지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서술형에 대해서 감점 없이 완벽한 답안을 내려고 한다면1. 문제에서 무엇을 물어보는지 먼저 파악하기2. 답을 위하여 사건 이전 상황부터 사건의 흐름에 맞추어 설명하기3. 최종 이 정답으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가 나왔는지위 3가지에 집중하여 정답을 쓰시는게 좋습니다. 단순 암기로는 위와 같은 정답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이야기의 형식으로 공부하는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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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오스크단어 유래가 이란에서 왔다는것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키오스크는 현재는 무인으로 주문하는 기계를 부르는 말이지만, 원래는 박스형 판매 가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튀르키예에서는 이전부터 별장이나 정원 등에 건축되어 있는 작은 개방형 건물을 쾨슈크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의 구멍가게 처럼 좌식 평상이 함께 딸려있는 작은 건물이었습니다. 이것이 서구권으로 들어오면서 키오스크라고 부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이후 유럽에서 길가에 있는 전면 개방된 박스형 가게를 키오스크로 부르기 시작했고, 작은 공간에서 판매하는 판매대를 키오스크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대에 들게 되면서 무인 주문기계(인터랙티브 키오스크)를 지칭하는 말로 변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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