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관련 질문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오늘날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호패"라는 신분증이 있었습니다. 16세 이상의 남성 모두는 호패를 착용해야 했는대, 고려 공민왕 처음 등장했으며, 태종 13년(1413)에 본격 보급되었습니다. 호퍠는 인구 파악, 군역 요역 관리, 신분 증명에 활용했습니다.호패에 기재되는 주요 내용으로는 관리는 관직, 성명, 거주지, 평민은 얼굴빛, 수염 유무도 기입하였습니다. 호패는 신분별로 다른 재료를 사용했는데, 2품 이상은 상아, 녹각, 3~4품은 녹각, 황양목, 5품 이상은 황양목, 자작목, 7품 이하는 자작목, 서인 이하는 잡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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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공산,사회주의국가인데 왜 사상과 다른가요?
중국이 표방하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과 실제 운영에는 괴리가 있습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실용주의 체제입니다.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시장자본주의를 수용했습니다. 즉, 이념보다 실질적 성과를 강조한 것입니다.하지만 정치적으로 중국은 공산당 1당 독재 체제 유치가 최우선 목표로 합니다. 집권 정당인 공산당의 권력 유지가 최우선입니다. 결국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은 형식적으로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공산당 1당 독재 체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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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이 총애 했던 장희빈의 이름이 뭐죠?
장희빈의 이름은 장옥정입니다. 그녀는 역관 출신 장경의 딸로 숙부도 역관으로 부유한 집안입니다. 거대 재산을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신장시키려는 중인 세력과 서인을 견제하기 위한 남인 세력의 결탁으로 장희빈이 입궁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에 입궁하여 숙종의 승은을 입어 1686년 경신환국 이후 숙원, 1688년 소의, 1689년 정1품 희빈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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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 가 정말 사실일까요? 궁금합니다
사주는 출생월, 일, 시간을 바탕으로 인간의 현재, 미래를 점치는 역술입니다. 사주의 경우의 수는 1296만가지라 합니다. 하지만 사주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하며, 개관적 통계와 실험으로 검증된 체계도 아닙니다. "사주가 맞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실제로 좋은 일 난 후에 기억으로 맞는 부분만 기억하는 확증 편향에 해당됩니다. 또는 모두에게 어느 정도 맞을 수 있는 막연한 설명을 특정인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바넘 효과에 해당합니다. 사주를 통해 자신감을 얻을 수 있으며, 마음을 안정을 가질 수 있으나 맹신은 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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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부모님 앞에서 할복자살을 하는 경우가 흔했나요?
우리나라는 활복자살을 하는 행위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본의 활복 문화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 이후 사무라이 계급의 전통적 풍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국 시대 흔했으며, 에도 시대에는 형벌의 형태로 공식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으로 폐지되었습니다.본래 일본의 막부 시대 활복 문화는 명예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며, 결백과 가족을 보호하는 수단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도 부모님 앞에서는 활복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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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1급 빠르게 따는법 알려주세요
우선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인터넷 강의(최태성의 기본별 개념 30강) 등을 2~3회 정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강의를 들어며 핵심 내용을 정리하며, 연표를 작성하면서 보강하세요. 또한 최근 기출 문제를 10회 이상 푸는 것을 추천합니다. 1급은 80점 이상을 맞으면 되므로 2주간 선택과 집중으로 공부하며, 최소 10회 이상 기출제 문제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며 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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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과정을 볼 수 있는 다큐나 소설 등이 있을까요?
KBS 역사 스페셜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스페셜 <세종 조선을 업그레이드 하다>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도서로는 <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실록>의 1차 사료에 대한 해석본과 김진명의 소설 <세종의 나라>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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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소설 세종의 나라는 어느 정도가 팩트라고 보면 될까요?
김진명의 소설 <세종의 나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한 역사 소설입니다. 세종 재위 시기의 정치적 상황과 사대부들의 반발 등 시대적 배경은 90% 이상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대에 있었던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 학자들의 반대, 세종의 의지 등도 대부분 사실입니다. 게다가 신숙주, 성삼문 등 인물도 실존인물입니다.하지만 주인공 한석리는 극적 사건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창작한 것이고, 사랑과 음모가 얿힌 이야기, 인간관계 등은 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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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여왕들과 결혼한 남편들은 왕족으로 편입이 되었나요?
신라 여왕들과 결혼한 남편들은 왕족으로 편입한다기 보다 본래부터 성골과 진골만 배우자입니다. 그 이유는 신라의 혼인은 골품제에 따라 엄격히 결정되었으며, 특히 왕실은 성골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근친혼이 성행했습니다. 선덕여왕, 진덕여왕이 즉위한 것은 성골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고, 진성여왕은 전례의 사례와 어린 조카를 대신하여 즉위한 것입니다. 즉, 신라 여왕의 배우자는 모두 왕족이었으며, 외부에서 왕족으로 편입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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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스탈린은 어떻게 권력을 잡은건가요?
스탈린의 권력 장악 과정은 레닌 사망 직후에 비롯됩니다. 레인은 붉은 군대 창설자인 트로츠키와 당총비서인 스탈린을 염두하고 있었습니다. 레닌은 병마에 시달리며 최후의 유언에서 스탈린을 총비서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게 했지만 스탈린은 이를 숨겼으며, 트로츠기에 대해서도 교만함을 비판했습니다.따라서 1924년 레닌 사후 두 사람은 치열한 후계자 경쟁을 하였습니다. 핵심 쟁점은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의 대립하였습니다. 결국 1927년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당에서 제명하였으며, 1929년 국외로 추방했습니다. 트로츠키는 터키를 거쳐 프랑스, 멕시코로 이동하였으나 1940년 스탈린의 지시로 암살되었습니다. 스탈린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조직을 장악하고, 정치적 술책과 무자비함입니다. 그리고 트로츠키는 혁명 주역으로서 자신감을 과신하여 당내 기반 조성을 소호할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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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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