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왕이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얼마나 있었나요?
아무리 조선시대라고 해서 부왕이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사건으로 임오화변을 들 수 있습니다. 임오화변은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8일만에 죽게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조선 왕조를 통틀어 부왕이 세자를 직접 죽인 사건에 해당합니다. 또한 의심스럽지만 인조가 소현세자를 사사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이 사건은 부자 사이의 세계관 충돌과 소현세자가 귀국하자 인조가 왕권을 위협받아 불안해졌다는 가정에서 의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하지만 조선은 유교 국가라서 부자 관계와 왕실 혈통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왕이 자식을 죽이는 일은 단순한 가족 문제가 아니라 왕조의 정통성과 도덕성 자체를 흔드는 사건이기에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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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한번도 안 읽어봐서 궁금해요.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원말 명초의 나관중이 저술한 역사 소설입니다. 삼국지의 시작은 한나라 말기 부패로 인해 일어난 황건적의 난으로 일어난 난세를 배경으로 합니다.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영웅들이 모여 위, 촉, 오로 나누어 패권 다툼이 전개되는데, 결국 진나라가 통일합니다.등장하는 인물로는 촉나라의 유비를 중심으로 하여 관우, 장비, 제갈량, 그리고 위나라의 조조군, 오나라의 손권과 주유 등입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한나라가 썩어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동탁이라는 폭군이 등장하며,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손권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지만 유비와 손권이 연합하여 적벽대전에 승리, 천하삼분, 결국 사마의의 승리로 이어집니다. 아직 삼국지를 읽지 않았다면 유튜브 요약 영상, 만화나 웹툰도 좋은 접근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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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때 제공권이 왜 그렇게 중요한 전략 요소가 됐나요?
1차 대전에서는 주로 지상전과 해상전이 중심이었으나 2차 대전부터는 항공기를 이용한 제공권 장악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늘에서 폭격, 정찰, 수송, 근접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전쟁이 입체적으로 발전한 것이 2차 대전입니다.제공권을 장악한 국가는 적의 공장, 발전소, 철도, 항구, 도시를 폭격하여 전쟁 수행 능력을 근본적으로 마비시킬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영국 본토 항공전, 연합군의 독일 도시 폭격, 미국의 일본 본토 포격 등을 통해 적의 저항을 억눌렀습니다. 그리고 제공권 장악하지 못하면 적의 폭격에 노출되어 전쟁 수행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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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때는 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 영향력이 그렇게 컸나요?
명종의 모친인 문정왕후는 명종이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1545년 인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그의 이복 동생인 명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며, 당시 관례에 따라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렴청정을 하면서 문정왕후는 관료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고 중요한 정치적 현안을 본인이 결정하였습니다. 게다가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을 핵심으로 삼아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특히 을사사화를 배후 조정하여 많은 사림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또한 문정왕후는 불교에도 심취하여 승과를 부활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했습니다.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통해 실질적인 권력 장악을 한 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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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이씨와 성주이씨의 차이가 있는지
성산이씨와 성주이씨는 다로 뿌리가 다른 성씨입니다. 성산이씨는 신라 말 호족인 이능일을 시조로 성주군을 본관으로 하였는데, 1914년 본관을 성산으로 확정했습니다. 성주 이씨는 고려초 이순유를 시조로 하여 성주를 관향으로 삼은 가문입니다.즉, 성산이씨와 성주이씨는 같은 성씨가 아니라 뿌리가 다른 성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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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짧았던 전쟁도 있을것 같은데 어떤 전쟁인가요?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은 1896년 8월 27일 영국과 잔지바르 술탄국 사이에 벌어진 영국-잔지바르 전쟁으로 38분만에 끝난 전쟁입니다. 전쟁의 요인은 잔지바르의 친 독일적인 새 술탄을 영국이 승인하지 않고 군대 해산과 퇴위를 요구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영국의 함포가 잔지바르 궁전을 포격하자 곧바로 항복했는데, 잔지바르군 수백명이 전사했지만 영국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새 술탄도 독일 영사관으로 도주하였으며, 친영적인 술탄이 옹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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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내용 중 실제 역사인 내용이 있나요?
성경에서 언급된 이스라엘은 실재 역사에서도 존재하는 왕국입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 시대이 이스라엘 왕국은 고대 기록과 고고학에서 일부 증거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앗수르, 바빌론, 이집트 같은 나라도 성경에 나오는 데, 다른 고대 기록에도 존재한느 역사입니다. 또한 예수와 사도들이 활동한 로마시대, 유대 총독들도 역사 기록과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십자군 전쟁은 1095년 우르반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주창하여 일어난 성지 회복 전쟁으로 성경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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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내용 중 역사인 내용,부탁드립니다
구약성서에는 여러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등장합니다. 우선 이스라엘 왕국은 고대 실제로 존재했던 왕국입니다. 고고학적 증거외에도 고대 기록에도 존재하는 국가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이며, 모세와 이집트 탈출, 다윗왕, 솔로몬왕, 바벨론 포로 등 사건들은 고대 근동 역사 기록과도 일부 겹칩니다. 성경의 기술과 역사적 사실이 완전히 일치하는지는 역사학자들마다 논의가 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존재하는 점은 사실입니다.그리고 십자군 전쟁은 성경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주창하여 200년간 있었던 성지회복 운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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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문관과 무관중 어느쪽의 힘이 강했나요?
조선시대 평시에는 문관이 훨씬 영향력이 컸습니다. 이성계가 무관출신이지만 새나라를 세우면서 문치 국가의 체제를 확립했으며 그 결과 문신 관료 체제가 주류를 이룬 것입니다.최고위 관직인 정1품은 문관이 오를 수 있었지만 무관은 정3품 수준의 절충장군까지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조선은 문치주의 국가를 지향했기에 무는 천시되는 분위기가 일반적입니다. 물론 전쟁 시기에는 이순신같은 무관의 활약으로 무관이 부각될 수 있었지만 일시적인 위상에 해당됩니다.즉, 조선은 문치주의 국가이기에 무보다는 문을 숭상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문관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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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볼모로 왕자가 아닌 15촌 조카를 보내서 걸린 사건은 어떻게 해결되었나요?
이 사건은 1241년 제 3차 여몽전쟁 뒤 고려가 몽골에 항복할 때 일어났습니다. 몽골은 태자의 입조를 요구했는데, 고려는 평범한 왕족인 영녕공 왕준을 왕자라고 속이고 보낸 것입니다. 10년뒤 몽골이 이를 알았으나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간 사건입니다. 그 이유는 고려가 왕준에 대해 '친아들'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몽골측 반응도 왕준이 원만한 성격과 몽골 황제의 신임 덕분에 넘어갔습니다. 왕준은 이후 몽골에서 몽골 황녀와 혼인하고, 안무고려군민총관 같은 직책을 맡아 몽골과 고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몽골 귀족화 경향이 강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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