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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임시 도읍지였던 강화도에 남아 있는 고려 유적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강화도는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몽골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고려의 수도로 역할했으며, 강화 고려궁지는 그 당시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강화 고려궁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64년에 사적 제13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외 강화도성은 고려시대에 강화도를 둘러싼 성곽으로, 강화도의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한 개씩 남아 있습니다. 강화도성은 고려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며, 몽골과의 전투에서 방어의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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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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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지역의 동선 문화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동선문화는 베트남 북부의 홍강 유역에 청동북으로 대표되는 번창했던 청동기 문화입니다. 기원전 500년에서 기원전 100년까지 이며, 베트남의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한 문화입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에서도 발견되고 있으며, 벼농사가 발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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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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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가 송악에서 철원으로 수도를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궁예는 901년 송악을 배경으로 후고구려를 건국하였습니다. 그러나 왕건 등 송악을 중심으로 패서 호족의 성장은 궁예에게 정치적 부담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왕권 강화 차원에서 수도 이전을 결정합니다. 또한 철원에서 미륵불 화신이 나타났다난 소문이 돌자 불교에 심취했던 궁예가 자신이 미륵불의 화신임을 자처하기 위해서 철원 천도를 결정합니다. 또한 철원은 한탄강으로 인한 지리점 이점과 평양과 가까워 고구려 계승 명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905년 천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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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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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초에는 문반과 무반을 구분하지 않았다던데 체계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려 건국 초창기부터 완벽한 양반관료제를 수립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관제의 기초가 되는 고려 초기의 관계(官階)에 있어서도 문·무의 구별이 없던 신라 및 태봉의 관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문반과 무반을 처음으로 구별한 것은 경종 원년(976)에 실시된 전시과(田柴科)에서 부터였습니다. 전시과에서는 고려 초기의 관계를 기준으로 모든 직산관(職散官)을 공복(公服)의 빛깔에 따라 자색(紫衫)·단색(丹衫)·비색(緋衫)·녹색(緣衫)의 네 단계로 나누고 자삼층을 제외한 단삼·비삼·녹삼층을 문반·무반·잡업으로 구분하여 각 품에 따라 전(田)과 시(柴)지를 지급하였습니다. 문반과 무반의 구분은 광종의 과거제 도입, 성종의 관제 정비와 경종의 전시과 시행 과정에서 성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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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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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은 나라를 판 후에 잘살았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0년 8월 29일 국권 피탈의 주인공으로 당시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으로 통감 데라우치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하였니다. 그는 매국의 대가로 충분한 보상을 받았는데, 백작의 작위와 퇴직금, 특별 은사금을 받았으며, 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친일 귀족의 중심 인물로 중추원 부의장, 조선 귀족원 회원, 농사장려회 회장 등의 지위를 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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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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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지하자원 중 뭐가 제일 많아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지하자원은 경제성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매장 자원으로는 석회석이 가장 비중이 큽니다. 2022년 기준으로 가장 많이 채굴되는 광물은 석회석 (1억 1,000만 톤), 규석 (3,000만 톤), 석탄 (2,000만 톤) 등입니다. 금속광물 중에서는 철광석 (1,000만 톤), 텅스텐 (1,000톤), 금 (1,000kg) 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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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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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있는 곳을 이베리아 반도라고 부르는 이유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스페인과 포루투갈이 위치한 지역을 이베리아 반도라고 합니다. 이베리아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에브로강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서유럽 지역을 겔트족이 사즌 곳이라 하여 겔티케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둘로 나눠 갈리아와 이베리아로 구분했습니다. 바로 스트라본이 피레네 서쪽이 에브로강에 접해 있어 이베리아로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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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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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선명력법과 원나라의 수시력은 각가 어떤 것이고 어떠한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역법은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바탕으로 만든 달력입니다. 당나라 시기에 만들어진 선명력은 1년을 365.25일로 정하고, 고려시대에 사용한 달력입니다.수시력은 원나라 시기에 곽수경의 주도로 만든 역법으로 1년을 365.2425로 더 정확하며, 고려말 원간섭 시기부터 조선 초기 칠정산으로 대체될 때까지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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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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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미라 동굴 벽화는 인류 역사상 어떤 의미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알타미라 동굴벽화는 스페인의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입니다. 동굴 벽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을 생생하게 입체적으로 그린 벽화들이 있습니다. 이는 구석기인들이 사냥이 잘 되기를 바라는 주술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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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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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는 왜 고양이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730년대 프랑스 파리의 인쇄소 주인들은 고양이를 키우는게 유행이었습니다. 동시에 골목에는 언제나 길고양이가 범람했습니다. 그런데 인쇄소 견습공들은 주인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밤늦게까지 일하다 차가운 방에서 잠드는 열악한 삶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으나, 새벽녘 길고양이 우는 소리에 잠이 깨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장 부인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애완 고양이 ‘그리즈’를 잡아 죽이고자 모의하고 고울음소리를 모창하는 사람에게 밤새 울라고 시켜 고양이 소음을 극대화했습니다. 잠을 설친 주인 가족도 “이 고양이들 잡아 죽여!”라고 하자, 견습공들은 빗자루를 들고 소란을 피우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 소란 속에 주인의 애완 고양이와 동네 고양이들다가 학살합니다. 이 고양이 학살 사건은 당시 사회적 계급 갈등과 민중의 적개심을 반영한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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