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월화수목 요일을 왜 숫자를 붙여서 표현하나요?
중국에서 요일을 월~목요일 처럼 한자로 표기하지 않고, “星期一, 星期二, …, 星期六”처럼 숫자를 붙여는 것은 별이 도는 7주기라는 뜻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월화수목금토일'로 해, 달, 5개 행성에 대한 고대 천문 개념을 그대로 활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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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념이 사회 변화와 충돌하게 된 원인은?
조선을 건국한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통해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성리학을 이념으로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또한 신분 질서, 가족 일상까지 규제하는 유교 도덕 질서를 만들어냈습니다.양난 이후 성리학은 변화된 사회와 모순을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집권 세력들은 성리학을 절대화하고 교조적으로 추종하기도 했습니다. 즉 도덕 예의 신불질서에 집중해 민중들의 실제 생활, 경제, 기술 현실을 간과하고 그들의 지배 체제를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런 문제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실학이 등장하였습니다. 실학은 실학이 더 이상 조선의 사회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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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경우 형사취수혼 이외에는 근친혼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나요?
형수취수제는 형이 죽으면 시동생이 형수를 데려오는 취수혼의 형태입니다. 왕실 지배층 사이에는 일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봅니다. 즉, 고구려는 형사취수혼은 있지만 그외 근친혼 등이 일반적이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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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연결되기 이전부터 왕권에 대한 욕심이 있던 사람인가요?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연결되기 전에도 이미 권력 욕이 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세종, 문종 시대에도 수양대군은 왕족 중에서도 가장 큰 정치적 기반과 자기 세력을 구축했으며, 그 가운데 한명회가 대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단종 즉위 직후 왕권 강화를 명분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이 책사로 들어가 수양대군의 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인물입니다. 즉, 한명회와 연결되기 이전에도 수양대군은 왕권 강화와 권력 집중을 노리는 정치 세력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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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의 유행이 사회 제도와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꾼 사례는?
전염병의 유행으로 국가나 사회적으로 위생 관념, 사회 및 정치 체제 변화 등의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줍니다. 중세 유럽 시기 14세기 흑사병의 유행 이후 노동력이 급속하게 부족하여지면서 노동 가치가 상승하였습니다. 이런 변화는 농노제를 바탕으로 하는 장원제가 붕괴되는 계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흑사병의 유행 이후 유럽 여러 도시들에서 격리소, 시체의 중앙화 처리 등 최초의 공공 방역과 위생 제도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1918년 스페인 독감 이후 공중 보건 시스템과 역학 바이러스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공중 보건청, 예방 역학 체계가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몇년전 코로나 유행으로 원격 교육, 재택 근무, 원격 회의 등이 출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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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망한 사례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 이후 국가가 완전히 사라진 사례는 없지만 나라가 합쳐지거나 분할, 국명 체제가 바뀐 사례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르비아 몬테니그로는 2006년 세르비아와 몬텐니그로로 분리되었습니다. 국가가 망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에서 둘로 분화된 것이죠. 다만 멸망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소멸 위기에 처한 나라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 시리아 등은 내전 등이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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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쪽에 옛날 조선시대 문인들이 많이 살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담양 청산, 무등산 안쪽 마을에 정철, 송순, 양산보 같은 유명한 문인들이 많은 이유는 조선시대 정치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의 낙향지였기 때문입니다. 정철 역시 아버지가 사화로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뒤 조부 선산이 있는 담양 창평으로 내려와 10년간 머물었습니다. 게다가 담양은 자연 지리적으로 영산강과 산지로 되어 잇어 은거에 이상적인 곳이었습니다. 즉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선비들이 세속 정치에서 벗어나 학문과 문학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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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도의 변화가 조선 사회의 신분 구조와 정치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조선시대에서 관리는 철저하게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과거제에 따라 선발했습니다. 과거제의 운연 신분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조선 전기 과거는 가문에 관계없이 능력으로 관리에 진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물론 중기 이후 인맥이 합격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으며, 특정 가문, 붕당의 자제들이 과거를 장악하는 경우가 커졌습니다. 그리고 과거는 소수 가문이 관직을 독점, 세습하는 수단이 됩니다. 또한 입시 경쟁이 치열해제면서 뇌물, 부정과 부패가 심화되어 갔습니다. 결국 과거는 신분을 고정하고, 부정 및 파벌 정치를 이끄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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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에 여왕들의 경우는 남편을 무엇이라 지칭했나요?
신라의 여왕들의 남편은 공식적으로 ‘국서(國壻)’ 라고 부릅니다. 나라의 사위, 즉 여왕의 남편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신라에서 여왕이 남편은 기본적으로 골품제에 따라 성골, 진골에 해당합니다. 여왕의 남편인 국서는 궁안에서 상징적 존재로 궁정 행사에 참여하며, 귀족 일가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합니다. 다만 진성여왕의 남편, 위홍은 각간 출신으로 여왕의 측근, 정치적 동반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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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질 윤, 깃들일 서 이름 한자 뜻 풀이 부탁드립니다
빠질 윤(淪)의 기본 의미는 '빠지다', 또는 '떨어지다'입니다. 하지만 이름으로 사용할 때는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몰두하다', '몰입' 등의 의미를 담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깃들일 서(棲)의 의미는 '새가 나무에 깃들다', '누군가 머무르다', '정착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으로 해석하면 안정, 평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즉, '윤서'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깊이 빠져 살다', '깊이 몰입하여 살아가다'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깊이 몰두해 한 곳에 깃들처럼 지켜 살아가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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