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만은 중국본토랑 달리 번체자를 쓰나요?
대만이 번체자를 쓰는 이유는 우선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뒤 문자 개혁을 통해 간체자를 도입한 것 때문입니다. 반면 대만은 국민당 정부가 피난하기 이전부터 전통 중국 한자인 번체자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번체자가 전통 중국 문화의 수호자라는 의미를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대륙과의 문화적 구분을 명확히 하여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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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역사관이 한반도에만 있는거 같은데
질문의 요지가 왜 한국의 역사가 한반도 중심이라는 것이라는 의문으로 판단됩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을 바탕으로 고대 국가 및 고려 등의 역사 한반도에 국한된 것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듯합니다. 물론 벡제의 요서 진출설, 왜 진출, 해상 활동 등의 주장도 있지만 한국사에 제한적으로 반영됩니다. 우선 사서의 한계입니다. 한민족의 대륙, 해외 활동이 충분이 사료로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선 때까지 한국사서는 국가 왕조 중심으로 한반도 내 정치, 군사, 관료제 등을 기록하는데 초점을 맞춘것도 이유입니다. 즉, 한반도 내 사건 및 왕조 교체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 등 식민사관의 잔재와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이 계승한 탓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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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대문위에 있던 시설물의 이름을 알려주세요.
정확하게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가로로 긴 직사각형 판이라면 일반적으로 비막이판를 말하는 것같습니다. 이 것은 한옥의 처마 개념을 축소형으로 달아 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비가 쏟아지거나 눈이 내릴 때 문열고 닫는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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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의병이 전국적인 항일 전쟁으로 발전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정미의병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을 계기로 일어난 의병 항쟁입니다. 그런데, 정미의병은 이전의 의병 항쟁과 비교하여 국권 회복 운동이면서, 전국적으로 전국민이 참여한 항일 전쟁입니다. 그 이유는 우선 이전의 을미의병과 을사 의병의 진압을 일본군 이외에도 우리 군인들이 진압하였다면, 정미의병에서는 해산된 군인도 참여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전의 의병이 대부분 유생들이 주도했다면 정미의병은 다양한 계층이 주도하고, 전국민이 참여했기 때문이 일본을 상대로한 전쟁의 의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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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낼때 향을 피우던데 향을 피우는 이유가 멀까요?
제사나 장례에서 향을 피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조상, 영혼을 맞이하고, 영과 이승을 잇는 것이라 여깁니다. 연기가 하늘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조상의 영혼이 향을 따라 내려오거나 죽은 사람의 혼인 좋은 곳으로 가는 깃을 상징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유교, 불교, 가장 제사 모두에서 향은 조상, 신들께 드리는 공양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향을 피워 마음을 정화하고 조상과 신에게 예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외에도 장례시에 부정한 냄새를 완하하는 정화, 정신을 맑게 하고 산과 통하려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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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님 남북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북향민으로서 갠적인 생각)
저도 통일은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가족, 삶의 문제입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정치, 제도, 경제, 문화 차이로 쉽게 통일을 이루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통일은 민족의 과제이고, 헌법상 달성해야 할 당위적 목표입니다. 물론 당장 통일 보다는 서로를 적이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대를 통해 왕래와 교류를 늘려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주용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통일을 이뤄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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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천 마크의 유래나 기원에 대해 알려주세요
물음표는 라틴어 “quaestio"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뜻은 '물음', '질문'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quaestio'가 쓰기 번거로웠기 때문에 피령사가 첫글자 'q'와 마지막 'o'를 따서 'Qo'를 약어로 붙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Q가 위로 올라가면서 구부러지고, o가 아래로 내려가서 구부러진 점(점에 끊긴 줄) 형태로 바뀌면서 현재의 '?' 모양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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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영웅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
이순신 장군은 1597년 4월 1일 한양을 떠나 경기, 충청(아산), 전북(남원, 곡성, 임실, 고창, 전남(구례, 순천, 보성, 광양), 경남(하동, 산청)을 거쳐 합천 초계(권율 진영)에 이르는 1700리 남짓을 걸었습니다. 정유재란 당시 모함으로 삼도수군통제사직을 박탈당하고, 투옥당한 뒤 석방되어 백의종군하여 합천의 권율 진영까지 걸어갔습니다.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뒤 합천 초계에서 다시 순천, 여수, 진해, 함양, 광양 등으로 돌아가 복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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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의 경회루 누각 돌기둥들이 둥글거나 네모형이던 데 그 이유가 있나요?
경복궁 경회루의 돌기둥은 아래쪽 바깥쪽은 네마 안쪽은 둥급니다. 같은 식으로 위층 나무 기둥도 바깥쪽은 네모이고 안쪽은 둥글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네모 기둥은 구족적으로 힘을 받치고, 공간 형체를 선명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반면 안쪽이 둥글기 때문에 시건을 실내 공간을 더 부드럽고, 단순하게 보이게 합니다. 또한 주역의 천원지방의 개념을 반영한 설계입니다. 네모 기둥은 땅을 상징하고, 둥근 기둥은 하늘을 통하는 공간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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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왕족이 아닌 사람들이 왕을 처형한 경험이 프랑스쪽보다 빨랐다던데 정말인가요?
맞는 말씀입니다. 영국은 프랑스 보다 먼저 청교도 혁명 당시 왕을 처형한 사례가 있습니다. 스튜어트 왕조 시기 찰스 1세가 의회와 권리청원을 무시하고 조세를 거두려 하자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의회파를 이끄는 크롬웰과 왕당파의 내전으로 의회파와 대립하여 의회파가 승리하였습니다. 그 결과 찰스 1세가 의회파에 의해 1649년 처형되었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가 1873년 국민공회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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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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