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태국은 왜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나요?

동남아시아 대부분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됐는데 태국(시암)만 독립을 유지했다고 배우는데, 어떤 외교적, 정치적 전략으로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동권 전문가입니다.

    태국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다르게 한번도 식민지배를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대나무 외교라고 하는 외교 전략에 있었습니다. 태국은 어느 한곳에 묶이지 않는 독자 노선을 탔는데, 서구 열강 중 어느 한 곳에 얽메이지 않고 왔다갔다 중립 외교 정책을 펼였습니다. 이 모습이 대나무 처럼 흔들린다고 하여 대나무 외교라고 불립니다.

    단적인 예로 세계 1차 대전 당시에도 원래 태국 내 여론은 친독일 여론이 더 우세(독일이 철도도 놓아주고 했습니다.)하였으나 어디에도 참전하지 않고 있었고, 이후 전쟁 종반 연합국이 승기를 잡자 연합국으로 참전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태국은 승전국의 입장으로 파리 강화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고, 외교적으로 위상을 더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쪽에 힘이 쌔진다 싶으면 다른쪽으로 붙는, 어떻게 보면 박쥐 같은 작전이긴 한데 당시의 약소국이었던 태국의 입장에서는 가장 실리적인 외교 정책을 펼쳐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채택 보상으로 187베리 받았어요.

    채택된 답변
  • 태국은 지정학적으로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확대 과정에서 이해 관계가 충돌한 완충지대였습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 이후 미얀마, 말레이시아 지역으로 영토를 넓혔습니다. 반면 프랑스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라오스를 차지하고 서진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1896년 두 나라는 영불 협상으로 독립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태국은 영국과 프랑스의 왕충지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태국의 라마 4세, 라마 5세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적절하게 양보하는 '대나무 외교'를 통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압력에는 굴복하되, 핵심은 독립을 지킨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또한 두 국왕의 서구식 개혁도 식민지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즉 미개한 국가 이미지를 탈피로 '문명화 사명 명분'을 불식하여 식민지를 막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