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서 냉병기들고 싸우던시절 궁금한게 있습니다.
냉병기 시대 전투 중에서 맨 앞줄의 선봉부대라도 반드시 죽은 목숨은 아닙니다. 실제 고대 백병전은 양측 부대가 대치한 상태에서 창칼 사거리 바깥에서 멈추고, 양측 1열 병사들끼리는 매우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교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사들이 지치면 뒷줄 병사들과 교대했습니다. 개인 병사들끼지 교전 시간도 길어봐야 평균 10분을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 전투에서 전사한 전체 병력 배율은 승자는 5.5%, 패자 38% 정도였다고 합니다. 즉 패배한 쪽이라도 모두 죽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선봉부대는 정예병력으로 병사들은 갑옷과 방패을 소지하여 생존률이 높고, 창과 방패를 든 밀집방진이라 상호 방어하며 전투했습니다. 뒤에서 활, 투창, 투석으로 병력을 엄호함여 적의 접근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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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독일 히틀러 정권과 소련 스탈린 정권 때도 국민들이 왜 독재자 개열로 된 물건을 버렸나요?
과거 독재 정권이 붕괴되면 그의 상징물을 파괴하는 모습은 현재나 다름없습니다. 1945년 히틀러가 자살하고,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패망했을 연합군에 의해 히틀러 초상화, 나치기, 동상 등 나치 상징물이 대거 제거되었습니다. 이는 나치 청산의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1953년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되면서 스탈린 동상, 초상화, 기념물이 제거되었습니다. 특히 1991년 소련 붕괴 후에는 더 많은 스탈린 상징물이 제거되었습니다. 이탈리아도 무솔리니가 처형된 이후 파시스트 상징물이 제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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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왜 오래된 사진에서 현재와 다른 자신을 발견할까요?
재미있는 질문이네요. 오래된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원본 기억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된 기억을 마주하기 때문에 옛날의 기억이 아닌 새로운 기억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은 변화합니다. 당시의 걱정, 짜증의 감정도 시간이 흘러가면 부정적 감정은 약해지고, 좋았던 감정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어떤 경험을 기억할 때 강렬한 순간과 마지막 순간을 기준을 감정을 기억해서도 그렇습니다. 또한 사진을 볼 때 재구성되어 따뜻하게 단순화된 기억과 당시의 실제 감정이 출돌하는 현상도 일어납니다. 오래된 사진에서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기억이 고정된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시각과 감정에 의해 지속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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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왜 경복궁 중건에 그렇게 집착했나요?
흥선대원군이 막대한 재정과 백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복궁 중건을 강행한 이유는 세도 정치로 인해 약화된 왕권을 바로세우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즉, 임진왜란 이후 불탄 경복궁을 다시 중건함으로써 안동김씨 등의 세도 정치로 실추된 권위를 되살리고,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수단으로 추진한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은 공식 직함이 없는데고 불구하고 경복궁 영건도감의 총책임자가 되어 국가 대소사를 관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야망을 굳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경복궁 중건을 위해 당백전을 발행하고, 원납전을 징수하는 등 불합리한 무리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1865년 착수하여 1868년 완공되었으나 막대한 재정 지출과 백성들의 강제 노동 동원으로 민심 이반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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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차지할 때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하였으나 나토나 EU가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토는 회권군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만 집단 방어 조항 5조에 발동합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핵보유국으로 무력 개입은 3차 대전으로 이어질 우려가 컸습니다. 특히 크림반도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주둔지로, 러시아의 전략적 핵심 지역이므로 러시아가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게다가 EU 구성국인 유럽국가들은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럽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도 크림반도에 대해 러시아의 핵심 이익으로 여겨 위험을 감수하고 개입할 이유가 없었습니다.하지만 이러한 소극적 대응은 푸틴에게 "서방은 우크라이나를 위해 전쟁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이어지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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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다르크 처형 이후 프랑스는 어떻게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나요?
잔다르크는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의 위기를 구한 영웅이었습니다. 잔다르크는 '신이 프랑스를 지킨다'라는 신념을 심어주어 패배에 익숙하던 프랑스군을 민족적 성전으로 결집시켰습니다. 그녀가 영국에 처형된 이후에도 프랑스 지휘관은 그녀의 전술을 계승하여 승세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잔다르크의 도움을 받아 즉위한 샤를 7세는 상비군을 창설하여 군사력을 강화하고, 포병대를 정규군을 편성하는 등 군사 조직을 전문화하였습니다. 반면 영국은 장기전으로 국력이 고갈되었고, 프랑스보다 인구가 적어 장기전을 지속할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백년 전쟁 이후 1455년부터 1485년까지 장미전쟁으로 내전에 휘말렸습니다. 즉, 잔다르크의 죽음 이후에도 전쟁은 22년간 지속되었으나 그녀가 심어놓아던 사기와 샤를 7세의 개혁으로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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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보살은 지혜의 부처를 상징하는지
문수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입니다. 문수보살은 관세음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과 더불어 4대 보살로 불립니다. 불상에서 오른손에 지혜의 칼, 왼손에는 연꽃이난 경전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조는 문수보살 신앙이 깊었는데, 그의 병을 고쳐준 문수동자 설화에 유래합니다. 세조는 문수보살의 상주처인 오대산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오대산 상원사 중창과 문수보살 신앙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문수 보살은 불교의 4대 보살로 통하며, 약사여래불과 지장보살과 함께 불교 미술에도 많은 소재가 됩니다. 석가삼존이란 석가모니의 좌측에 문수보살, 우측에 보현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시는 형태를 말합니다. 비로자나불삼존도 양쪽에 협시 보살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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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2 민주화 운동이 한국 현대사
1980년 5.12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5.18 민주화 운동을 묻는 것 같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은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우선 민주주의 수호의 상징입니다. 신군부의 헌정 질서 파괴와 불법적 권력 찬탈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저항권을 행사했으며, 이는 불의의 독재 거부하는 민주화 운동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확인시켰습니다.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고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 정권에 대한 저항, 즉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는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게승되어 군부 독재를 종식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우리 국군의 작전 통제권을 가지고 있었던 미국의 방임에 대한 반발로 반미 운동이 일어나는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5.18 민주화 운동은 아시아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을 넘어 전세계적 민주화 운동의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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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통해 이끌어낸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직선제를 반영한 제9차 개헌을 이루어냈습니다. 우리나라는 9차례나 개헌을 했으나 4.19 혁명 이후 3차 개헌과 6월 민주 항쟁 이후 9차 개헌을 제외하고 독재자들이 정권 연장을 위한 개헌이었습니다.즉, 9차 개헌을 통해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제도화한 결정적 전환점입니다. 개헌의 핵심적으로 내용으로는 주권재민의 실질적 구현으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였습니다. 장기 독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5년 단임제를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언론, 출판, 검열 금지, 집회 결사의 허가 금지, 노동 3권 보장 등 국민 기본권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신설하여 위헌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고 기본권을 구제할 제도를 마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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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대의 민주주의,그리고 참여
대의제 민주주의는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여 운영하는 간접 민주주의입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효율성은 높으나 정치 무관심과 엘리트주의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민주주의는 국민 투표하여 정책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다수의 폭정 우려가 있습니다. 참여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 참여와 평등을 강조하며 시민 교육을 중시하지만 토론 부재 시 교육적 기능이 불분명합니다.숙의 민주주의는 공개적 토론을 통해 정체된 여론 형성을 목표로 하지만 결정권이 없으며, 정책에 수용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오늘날은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 처럼 직접 민주주의는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반영하여 상호 보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국민투표, 공론화위원회, 주민참여예산과 같이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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