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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수무당이라고 부르던 무당은 사이비 무당인가요??
박수무당은 남성의 무당을 말합니다. 즉 무당 중에서 남성을 지칭할 때 '박수'라 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별에 따른 명칭일 뿐이며, 무속 능력이나 진위 여부와는 무관합니다. 여성 무당은 만신, 남자 무당은 박수로 구분하여 불렀으며, 지역에 따라 박사, 박새, 할보무당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요즘에도 박수 무당이 존재하며 일부는 국가 무형 문화재로 전승되어 활동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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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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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500백년 시대에서 노비가 양반을 욕보였을 경우 어떤 처벌을 받았는건가요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적 지배 질서에 따라 신분제의 구분이 뚜렷하였습니다. 따라서 노비가 양반을 욕보이면 매우 엄격하게 처벌하였습니다. 특히 노비가 양반에 반항하거나 모욕하는 경우에는 강상을 해친다고 인식되어 일반인들보다 훨씬 무거운 형벌이 적용되었습니다.예를 들어 노비가 주인을 욕하거나 모욕한 경우, 교수형에 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실제로 1535년 노비가 주인을 욕하고 업신여기며 죽이겠다고 말한 사건에서 해당 노비는 정상 참작 없이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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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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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유적들이 많은가요?
맞습니다. 경주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유적과 미발굴 고분이 매우 많습니다. 경주 시내에는 쪽샘지구, 노동, 노서, 대릉원, 황남 등 고분군이 넓게 분포하며 왕릉급 고분 중에서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까지 경주 금척리 고분군 등 대규모 미발굴 무덤군이 새롭게 조사되고 있으며, 이 일대만 해도 50여기의 무덤 중 일부만 조사한 상태입니다. 즉 경주 땅 곳곳에 신라와 고대 한반도의 비밀이 여전히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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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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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칸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누구를 뜻하는건가요?
칸(Khan)’은 몽골, 튀르크 계통에서 우두머리, 왕, 지배차를 의마하는 칭호입니다. 칸’은 한자로 ‘汗(한/간)’ 또는 ‘可汗(가한/카간)’으로 표기하며, 최고 통치자(황제급)에게는 ‘카간(카안)’이라는 칭호도 썼습니다. 기원전부터 북방 유목 민족 사회에서 사용된 용어로 돌궐, 위그르, 선비 등 다양한 유목민족의 지배자를 가리켰습니다. 고대 신라에서도 거서간, 마립간 등 군장의 칭호로 사용했으며, 이는 크다, 최고, 임금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칸은 최고의 지도자를 뜻하는 단어로 오랜 역사와 지역에서 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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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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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떄 왕이 아들을 100명 낳으면 누가 차후 왕이 되는건가요??
조선시대 왕위 계승 원칙은 적장자 계승입니다. 왕비, 즉 중전에게서 태어난 맡아들이 왕위글 잇는 것이 원칙입니다. 적장자가 있으면 그가 세자로 임명되고 왕위를 계승합니다. 하지만 적장자가 없거나 적장자가 자격을 상실하거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후궁의 아들 또는 방계에서 왕위를 계승하기도 합니다. 즉 조선의 27명의 국왕 가운데 적장자가 왕위에 오른 경우는 8명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서자, 방계, 정치적 변동에 의해 왕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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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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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걸이는 언제부터 하던 장신구인가요?
귀걸이는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착용해온 장신구 중 하나로 원시시대부터 존재했습니다. 기원전 수천년 전부터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고대에는 질병을 막거나 악귀를 쫒는 주술적, 부적적 의미로 남녀 모두 착용했습니다. 이는 권력이나 신분을 상징하는 용도로도 널리 쓰였습니다.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등지에서는 이미 기원전 3천년경부터 귀걸이 유물을 발견되고, 벽화나 조각에도 귀걸이를 한 모습의 인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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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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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 파묘에 나오는 도깨비는 일본의 도깨비를 말하는건가요??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일본의 전통 요괴인 '오니'를 모티브로 한 존재입니다. 영화속에서 거대한 장군 귀신이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로 일본 무사의 혼령이자 오니의 형태로 그려집니다. 오니는 일본의 음양사(여우와 관련된 주술사)가 주술을 통해 저주를 걸고, 쇠말뚝(쇠침)과 함께 묘에 봉인한 것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 땅의 정기를 끊으려 했던 역사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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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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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부설로 있는 선교원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선교원은 한국 교회가 초창기부터 복음 전파와 함께 지역 사회 봉사, 교육, 복지 사역을 위해 부설로 설립한 기관입니다. 1880~1890년대 서양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교회와 함께 유치원, 학교, 병원 등 다양한 사회 기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초기 선교원은 유아, 아동 교육 빈민 구제, 여성 계몽, 지역 사회 봉사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국가의 공교육과 복지 제도가 확대되면서 선교원의 수와 영향력은 점차 축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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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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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과 유대인의 출천지 원수가 된 경위는 무엇일까요?
고대부터 유대인과 아랍인은 팔레스타인, 가나인 지역을 같이 공유하고 평화적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으면서 유대인들은 여러차례 추방과 탄압(디아스포라)을 받았으나 아랍인들은 이슬람 세력 아래 성장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시작된 시오니즘 운동은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귀환과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습니다.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과 아랍인에게 분할할 것을 결정하자,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국가를 선포했고, 이에 반발한 주변 아랍국가들이 곧바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 그리고 충돌에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땅을 잃고 난민이 되었으며, 이슬라엘과 아랍인 간의 갈등은 민족적, 종교적 원한과 분쟁이 심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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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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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기근일 때는 백성들을 위해서 어떤 정책을 펼쳤나요?
조선시대에는 기근이 발생하면 백성을 구휼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의창, 상평창에 비축된 곡식을 가난한 백성에게 빌려주고 추수하여 갚는 환곡제도가 있습니다. 반면 기근으로 굶주리는 백성에게 곡식과 소금, 장, 옷감 등 생필품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진휼도 시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임시적으로 재난 지역에 진휼청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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