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은 왜 20세기에 소련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회주의 국가가 됐나요?
몽골은 과거 청의 지배를 받았으나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자 외몽골은 독립을 선언하고 브그드 칸을 중심으로 신정부를 수립했습니다. 그러나 1919년 중국 군벌 서수정이 몽골을 점령하여 다시 중국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당시 백군 세력인 그리고리 세묘노프가 몽골에 진주하여 혼란이 가중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몽골의 민족주의자들이 1920년 몽골 인민당을 창당하고, 소련의 지원을 1921년 몽골 혁명을 일으켜 중국군과 백군을 물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리고 1924년 몽골인민공화국을 세워 소련식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한 것입니다. 몽골이 소련의 위성국처럼 된 것은 정치적으로 소련 공산당의 지도를 받았으니 당연합니다. 그리고 군사적, 경제적으로 소련에 종속되었으며, 지정학적으로도 소련과 중국 사이에 완충지대에 있어 소련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 체제제를 유지해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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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지역 사투리 언제 생긴 건가요?
우리나라 사투리는 삼국시대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투리라는 것이 본래 지리적으로 산맥과 강에 의해 분리되고, 교통이 불편하여 교류가 어려울 때 생깁니다. 특히 제주도처럼 섬 지역은 배로만 이동할 수 있어 퍠쇄적인 문화가 발달하고, 이는 사투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또한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다른 언어적 특성과 문화를 가지고 있어 그 고유한 말투와 어휘가 각기 뿌리내려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 사투리는 삼국 시대 이전부터 지역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하여,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며 오늘날의 지역별 방언으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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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옥저와 북옥저는 같은 나라였나요?
동옥저와 북옥저는 같은 옥저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지역의 집단으로 추정합니다.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 3세기에서 3세기까지 옥저는 함경도, 두만강 유역과 연해주 남부 지역까지 존재한 부족 국가였습니다. 동옥저는 함경도 함흥일대, 남옥저는 함경남도와 강원도, 북옥저는 두망강 유역과 연해주 남부로 추정합니다. <삼국지>, <후한서>의 동이전에 따르면 다른 각기 기록되어 있으며, 북옥저는 남옥저에서 800여리 떨어져 있었으나 풍속은 동일하다고 합니다. 북옥저는 기원전 28년 동명성왕 때, 동옥저는 기원후 56년 태조왕 때 고구려에 흡수되었습니다. 즉, 동옥저와 북오저는 같은 옥저이지만 지리적으로 떨어진 별개의 국가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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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지역 갈등은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 시작됐나요?
팔레스타인 지역 갈등은 20세기 초 1차 대전 시기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당시 이땅에는 아랍인이 대분이었고, 유대인은 소수 민족에 불과했습니다.그런데, 영국은 전쟁 중 두개의 상반된 약속을 하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1915년 영국의 고등판무관 맥마흔은 아랍의 족장 후세인에게 오스만제국에 맞서 싸워주면 팔레스타인 지역에 아랍 국가를 세우게 해주겠다는 선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는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온주의 운동이 일어나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피해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토착 아랍인과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그런데 1947년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국가로 나누는 분할안을 통과시켰고,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자 아랍 국가들이 반발하면서 중동 전쟁이 처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전쟁 이후 여러 차례 중동전쟁을 거치면서 영토 분쟁이 고착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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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와 연잉군은 만난적이 있나요??
이인좌와 연잉군(영조)는 서로 만난적은 없습니다. 이인좌는 영조가 즉위하자 정권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이인좌는 연잉군이 왕자시절때부터 반대파인 강경 소론에 속하였던 인물인니다. 그는 경종의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관계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남인과 연합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1728년 3월 15일 청주성을 함락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3월 24일 안성, 죽산에서 관군에 격파되어 진압되었습니다.즉, 이인좌는 연잉군은 만난적이 없으며, 소론 강경파로 영조 즉위 후 정권에서 배제되어 반란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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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는 국왕직속사법기관인지 그 중 판의금부사가 높은지
의금부는 조선시대 국왕 직속 사법 기관으로 왕명을 받들어 활동합니다. 또한 일반 사법과 달리 반역, 강상죄 등 중대 범죄만 담당하고, 별칭으로 금부라 불립니다. 오늘날로 보면 국왕 직속이라는 점에서 대검찰청, 국정원 수사국, 관료 범죄를 수사를 담당하는 측면에서는 감사원에 해당됩니다. 또한 왕권 호위 및 반역 사건을 담당하므로 대검찰청 공안부에 해당됩니다. 판의금부사는 종1품으로 의금부 최고 수장으로 수사, 재판을 총괄합니다. 오늘날로 보면 부총리급에 해당됩니다. 정2품 판서보다 품계는 높고 실질적 권력도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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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수리남은 실제있었던 일을 각색한 거라던데 사실인가요?
넷플릭스의 영화 '수리남'은 실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수리남'은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 수리남에서 활동했던 한국인 마약상 조봉행과 그를 검거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조봉행 일파는 1994년 빌라 건축 사기로 10억원을 사기치고 수리남으로 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불법 정유 공장을 운영하다 남미 최대 마약 조직인 칼리 카르텔과 손잡고 마약 밀매 조직을 만들어 마약왕으로 부상했습니다. 국정원은 미국 마약단속국, 브라질 경찰과 공조 검거 작전을 전개했습니다. 2008년 검거 작전 실패 이후 민간인 K씨가 조봉행을 브라질로 유인하는데 성공하여 2009년 브라질 공항에서 최종 체포하였습니다. 재판 결과 징역 11년, 벌금 1억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리고 조봉행은 2021년 출소 이후 다시 수리남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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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나 옛날 트로디시대 역사를 보면 그 시대 내용들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없나요??
로마시대 못지않게 우리나라도 고대 유적지는 많이 남아 있습니다. 로마는 주로 석회암, 대리석 등의 석재를 많이 사용하여 보존에 유리하고, 거대한 석조 건물이 수천년간 버텨 오늘날에 이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목재와 흙 등으로 만든 건축물이라 부패와 화재에 약해 보존이 어려워 소실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석굴암, 불국사, 경주 역사유적지구, 백제 역사 유적 지구 등 다수의 고대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고대 유적이 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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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와 트로이에 있던 영웅들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의 핵심 영웅 중 한명인 오디세우스가 전쟁이 끝난 다음 고향인 이티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서사시입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최강 전사로 헥토를 죽이고 트로이군을 패배시킨 영웅이지만 마지막에 화살을 맞아 죽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를 장례를 치른 마지막 인물로 기록됩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트로이 전쟁 후 귀향길에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에게 살행당합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아가멤논의 영혼은 오디세우스를 만나 성공적인 귀환을 부러워합니다. 스파르타의 왕이며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는 오디세우스의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 스파르타를 방문했을 때 환대합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늦은 이유는 포세이돈의 저주와 여신 칼립소와 7년간 열애, 그리고 키를롭스 등 신화적 존재와 대결때문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신화로 역사적 사실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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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 갈등과
한국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근거는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징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967년 국립공원제도 도입, 사찰 경내지가 국립 공원에 편입되면서 입장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1970년 국립공원입장료와 사찰 문화재 관람료가 통합 징수되어 왔습니다. 문제는 2007년 정부가 국립공원입장료를 일방적으로 폐지하면서 사찰과 탐방객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2022년 문화재보호법의 개정으로 사찰이 문화재 관람료를 감면 또는 폐지할 경우 국가나 지방 자치단체가 그 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 2023년 5월 시행되었습니다. 템플스테이는 한국 사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독자적 관광 상품으로 글로벌 관광 시장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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