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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활 실력이 뛰어났다고 하던데 어느정도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많은 일화가 태조실록에 남아있습니다. 오녀산성 공격 때 활을 쏠 때마다 적군의 머리를 맞추었다고 하고, 왜장 아기발도의 투구를 쏘아 벗겼고 그의 의형제인 이지란이 다시 활을 쏘아 머리를 맞춰 사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성계가 젊었을 때 아버지인 이자춘의 첩인 김씨(이후 정빈 김씨) 담에 앉은 까마귀 5마리가 우는 것이 재수없다고 없애달라고 하자 활 하나를 쏘아 5마리 모두를 잡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이것 외에도 많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이 과장되었다고 할 수는 있으나 당시 태조실록에는 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졌는데 아들인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가 말에서 떨어진 기록을 쓰지말라고 하였고,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그 내용을 그대로 쓰지 말라고 했다고 적은 것을 보면 사실일 가능성도 높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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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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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단군은 실존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군은 고대 한민족 국가의 황제를 지칭하는 직책과 같은 것입니다. 중국 ‘사고전서(四庫全書)’중 단군을 한국의 시조라고 언급한 자료가 있습니다. ‘사고전서’란 중국 청나라때 편찬된 책으로 진(秦)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나온 중국의 주요 서적들을 총망라한 동양 최대규모의 총서로 총 7만9000여권의 책이 수록돼 동양의 인문·사회·자연과학 연구의 밑받침이 되는 사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그리고 단군에 대한 기록은 ‘산해경광주(山海經廣注)’, ‘역대건원고(歷代建 元考)’ 등도 있다고 합니다. 너무 오랜 과거의 일이라 제대로 기록되거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 없고, 그나마 있던 사료들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이 없애고 식민사학으로 채워넣은 부분이 많아 민족사학자와 식민사학자들 간에 지금까지도 단군과 고조선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조선의 건국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내용을 바탕으로 기원전 23~24세기 경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도 과거 위서 논란으로 시끄러웠으나 최근 그 내용이 고증되는 것들이 많아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서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고조선 단군은 2,300여년간 유지되었다 하는데 단군세기에 나오는 47명의 단군이라는 설도 있고, 전기 47명의 단군 이후 은나라에 패했다가 다시 일어서 국가를 재건하고 40명의 단군이 더 통치했던 후기가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여러 사료들에 조금씩 단군이 언급되는 것만 보아도 우리 단군은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실존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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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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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우 좋다는 표시로 엄지척을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명확한 기원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엄지손가락은, 위로 올리냐, 아래로 내리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위로 올리는 행위는 영어권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를 의미이지만, 중동, 서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는 모멸의 표현이라고 합니다. 기타 유럽 및 아시아의 일부 국가에서는 외설적인 표현으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엄지손가락을 최고라고 치켜세우는 뜻으로 한 정확한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대 로마의 검투사 경기에서 관객이 사용하던 패자를 용서하는 제스처가 유래라는 설이 있습니다. 경기에는 졌지만 아주 훌륭한 경기를 보였으니 살려주라는 뜻으로 엄지손가락을 위로 들었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아래로하면 패자를 죽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언어학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엄지는 어머니의 '엄', 손가락 '지'로 과거 모계사회의 흔적이 남았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손가락 중에 가장 굵고 힘이 센 손가락이라는 뜻으로 엄지 즉, 어머니의 손가락의 의미입니다. 한자에서 살펴보면 엄지를 뜻하는 무지 拇指는 손 수手 변에 어미 모 母가 결합된 이름으로 우리말 엄지와 같은 뜻입니다. 기독교 수어에서도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쓰는 최고의 뜻과 같은 오른 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그 아래에 왼쪽 손바닥으로 받쳐 올리는 표현을 합니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해당 표현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중동, 서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는 모멸의 표현이라고 하니 그 쪽에서는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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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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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면요 맨 특등 칸에서는 마약 같은 것들을 하고 있더라고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부족한 것이 없어서 특별히 즐거울 일이 없거나, 부를 지키기 위해 너무 힘들게 살며 스트레스를 받아 평범한 일상에서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와중 경험하거나 등등 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마약이 소량으로 암암리에 유통이 되어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부유층 들이 많이 구매할 수 있었다는 가정 하에 영화에서도 그렇게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값 싸고 대량으로 생산된 여러 종류의 마약이 손쉽게 인터넷 등에서도 사고 팔리기 때문에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넓고 깊게 퍼져가는 양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유층이든 아니든 마약의 끝은 파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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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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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기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에 유사한 질문을 하신 분이 있어 그 때 답변 드렸던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공유드립니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의 기상 상태에 맞춰 붙인 이름이므로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의 황경이 0°인 날을 춘분으로 하여 15° 이동했을 때를 청명 등으로 구분해 15° 간격으로 24절기를 나눈 것입니다. 따라서 90°인 날이 하지, 180°인 날이 추분, 270°인 날이 동지입니다. [자료출처 - 두산백과]각 절기마다의 그 범위가 15일입니다. 음력을 사용했으나 24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현재도 중국의 화북 지방과 위도가 같은 경우에는 경도의 차이에 의해 하루 정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습니다. 그 기준이 되는 지역과 남북으로의 위도의 차이가 있는 경우 적절히 감안하여 참고하여 농사에 적용하였습니다. 지구는 극점과 적도를 기준으로 일정 간격으로 선을 그어 위도와 경도로서 위치를 파악합니다. 위도는 적도를 기준으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가를 측정하는 척도인데 계절과 관계가 있습니다. 경도는 극점을 이어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지구의 자전이 1시간에 15도 이동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24개의 시간대를 설정하여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음력은 계절에 따라 24절기를 운용하고 그것은 농사 및 어업 활동에 활용했습니다. 대한민국처럼 국토의 면적이 동서남북으로 크지 않은 경우에는 각 지역이 걸쳐있는 위도와 경도의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차는 없다고 볼 수 있고, 위도에 따른 계절의 차이는 국토가 남북으로 약간의 길이가 있어 몇 일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계절이 달라질만큼의 차이는 없습니다.벚꽃이 피는 시기만 보아도 남쪽은 빨리 개화하고, 북쪽으로 갈 수록 늦게 핍니다. 단풍은 북쪽이 먼저 들고, 남쪽는 나중에 단풍이 듭니다. 이것은 1~2주일 차이입니다. 고로 대한민국은 전 지역 같은 날짜로 24절기를 확인하고, 지역에 따라 경험적으로 파종 및 수확시기 등을 조절하여 활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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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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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초상화를 보면 도포가 파랜색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명나라 황제들의 초상화를 살펴보면, 대부분 황금색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당시 ‘황색’은 황제를 상징하는 색으로, ‘황색 옷’은 당시 힘이 강한 중국의 황제만 입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이성계는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 옷’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 충돌을 방지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조선시대는 붉은 곤룡포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성계의 어진이 파란색으로 표현되어있으니 의아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성계가 파란색 곤룡포를 입은 이유는 아쉽게도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후손인 숙종도 이에 의문을 가져 신하들과 논의했는데, 고려 시대에 파란색을 숭상했기에 조선 개국 초기에는 고려시대의 파란색 곤룡포를 입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는 사서의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로 태조 이성계는 처음 왕위에 올랐을 때 명이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고려의 왕을 대신한다는 취지로 권지고려국사라는 직책을 내립니다. 이에 반발한 이성계가 고려의 복색을 유지하였고, 계속 대립하다가 태종 때에 와서 명의 혜종 건무제가 정식으로 조선의 왕으로 인정하면서 차기 왕이 된 세종 26년 1444년부터 라고 합니다. 이것은 원나라에 이어 중국을 지배하게 된 명나라와 사대 관계를 맺는 것으로 정리된 후에 명이 조선에 붉은색의 옷을 지정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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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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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신호 문제에 대해서 왜 '버퍼'라든지 '랙'이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buffer는 완충 장치라는 뜻이 있습니다. 인터넷 환경에서의 buffer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하나의 장치에서 다른 장치로 데이터를 이동할 때 양자 간의 데이터 처리 속도 등에 차이가 날 경우 그 양호한 결합을 위해 데이터를 임시 저장하는 기억 영역을 말합니다. Lag은 지연이라는 뜻입니다. 인터넷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의 의미로 네트워크 지연 현상을 말합니다. 두 단어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호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buffering은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처리 속도 차이에 따른 임시 저장 작동을 뜻하는 것입니다. Lag은 통신 문제로 너무 많은 사용자가 하나의 서버에 접속을 하던가 하여 수용량의 한계치를 넘었을 때 데이터 전송 속도가 느려져서 하드웨어에서 그 구현이 끊기거나 지연되는 상황입니다. 두 단어는 하나는 기억 저장 영역이고 하나는 데이터 전송 과부하에 따른 Activity 구현에 대한 것인데 사용자가 데이터 처리 속도 차이에 따른 버퍼링 시간과 과부하로 인해 느려진 데이터 전송에 따른 Activity 구현의 지연을 동일하게 생각하여 "버퍼링이 심해!", "왜 이렇게 렉이 심하지?" 등의 표현으로 중복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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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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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와 대학의 차이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과거 대학교와 대학의 차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시스템적으로는 대학교는 4년제로 여러 과가 있는 종합대학을 지칭합니다. 대학은 2, 3년제이고 전문대학을 지칭했습니다. 단순히 4년제와 2년제를 구분하는 명칭적 수단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쓰는 대학의 영어표기인 College는 고등교육 기관의 진학이나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한 중간과정의 further education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대학교의 영어표기인 University는 학자들의 공동체라고 하는 universitas magistrorum et scholarium 라틴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college와 University를 다루는 학문의 수와 대학원 활성화의 2가지 기준으로 구분하여 전문대학(단과), 종합대학으로 구분할 수 있기는 하지만 명칭적으로는 그 학교의 형태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 대학의 경우는 Dartmouth college로 명칭을 고수하고 있고, college나 University 외에도 대학을 표현하는 명칭은 그 학교의 전통과 성격에 따라 여러가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institute(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academy(United States Military Academy), union(Cooper Union), conservatory(New England Conservatory), school(Julliard School) 등 우리나라의 대학 또는 대학교와 동일한 형태의 교육기관이나 달리 부르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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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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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는 왜 '횡'이라는 한자를 쓰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횡단 (橫斷)[횡단/휑단]발음듣기1도로나 강 따위를 가로지름.2대륙이나 대양 따위를 동서의 방향으로 가로 건넘.3가로 끊거나 자름.상기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횡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보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도로를 기준으로 합니다. 보행자 시각에서 동서의 가로로 나있는 도로를 가로지르는 격이고, 자동차도로를 사람이 건너게 만든 것이므로 횡단보도라고 합니다. 같은 개념으로 횡단보도 흰색 선 표시를 세로가 아닌 가로로 하는 이유도 동일하다고 보입니다. 일종의 도로 위의 다리이죠. 종단은 세로의 개념으로 보행자 시각을 기준으로 남북의 방향을 따라 가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보행자의 기준이 아니라 도로의 기준으로 명명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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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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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냉장고라는 개념이 존재햇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예, 냉장고의 용도의 저장소가 오래전부터 존재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얼음 저장소인 석빙고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청도 석빙고 (1713년, 보물 제 323호,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면)대구 석빙고비 (1716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1370-1, 석빙고의 위치를 나타내는 비석만 존재)대구 당성 현풍 석빙고 (1730년, 보물 제673호,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안동 석빙고 (1737년, 보물 제305호,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경주 석빙고 (1738년, 보물 제66호,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창녕 석빙고 (1742년, 보물 제310호,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창녕 영산 석빙고 (사적 제169호,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이렇게 도처에 있었습니다. 겨울에 두껍게 얼음이 얼면 강에서 채취해다가 이곳에 장기간 보관하였습니다. 석조로 만들어져있고, 깊숙하게 땅을 파고 지형을 잘 이용하여 여름까지 그 얼음이 보관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하니 대단한 기술이었습니다. 우리가 과거 시골에서 김장을 하고 나면 김치독을 굴을 파서 보관하거나 땅속에 묻어서 저온숙성하는 방식도 냉장고와 같은 원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유럽의 와인 창고 냉장고 용도의 저장소의 예를 참고로 드리자면, 찰스 하이직이라는 와인브랜드는 브뤼 리저브라는 최고급 샴페인을 만들 때 15~20년간 숙성한 와인 원액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는 로마 시대 곡물창고로 쓰였던 백악질의 천연 와인 저장고 ‘크라예’에서 숙성하는데 밖의 기온과 무관하게 섭씨 10도 아래로 저온 숙성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연을 잘 이용하면 이처럼 전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냉장고의 기능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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