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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존법이라는 것은 정식으로 있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압존법이란 대화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존대 여부를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어법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흔히 직장 및 군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어법입니다. 듣는 사람을 기준인 어법이다 보니 흔히들 앞존법으로 오해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압존법이 맞으며 한자어로 존대를 막는 어법을 뜻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사회 생활을 하는데 많이 쓰는 화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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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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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은병은 무엇이며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은병은 고려 시대 고가의 화폐 였습니다. 숙종은 1097년(숙종 2) 주전관(鑄錢官)과 뒤이어 주전도감(鑄錢都監)을 설치하였고 그 뒤 1101년에는 은병을 주조해 유통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은병은 은(銀) 1근으로 우리 나라의 지형, 즉 반도 모양의 병(甁) 양식을 본떠 만들었다고 합니다.일반에서는 이를 활구(闊口)라고도 하였는데 그것은 병의 구멍은 작은 것이 보통이나 은병은 위가 넓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한 것 같습니다. 은병 한 개의 교환 가치는 일정하지 않았는데 때로는 쌀 10석(石), 또는 15·16석, 18·19석, 20석, 40석, 50석에 해당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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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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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는지 알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복의 역사는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1600여년간 이어진 고유 한복의 전통성은 세계에서 제일 길며, 그것은 고구려 고분벽화(4∼6세기)와 신라·백제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고조선 까지도 아마 한복을 입었다고 볼수 있으나 당시의 자료는 없기에 확인 할 방법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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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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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말하는 알파 베타 감마 등의 단어들은 어떻게 생겨난 것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알파, 베타, 감마 , 델타, 입실론.. 등등은 그리스어 알파벳 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A,B,C,D,E..총 24개의 알파벳 입니다. 다만 발음만 틀리게 하는 것 입니다. 이러한 그리스 알파벳은 물리학, 수학 기호 등에 쓰입니다. 영어의 알파벳이니 동양에는 이러한 글자가 존재 하지 않겠지요. 있다면 ㄱ,ㄴ,ㄷ, ㄹ 와 같은 한글의 자음 모음 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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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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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른들이 써오던 병풍의 유래나 쓰임새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병풍(folding screen)은 바람을 막거나 무엇을 가리기 위하여, 또는 장식용으로 방 안에 치는 물건입니다. 일반적으로 장방형으로 짠 나무틀에 종이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이나 자수, 글씨 등을 붙여 펴고 접을 수 있는 것이었고 2폭에서 12폭까지 짝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2폭병풍을 특히 곡병풍, 또는 가리개라 하고, 머리맡에 치는 것을 머리병풍 또는 침병이라고 했습니다. 주로 조선 시대에 많이 사용되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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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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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은 실제 존재했었던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편작은 BC 4세기 무렵 전국시대의 중국 명의로서 <난경 (難經)>의 저자라고 합니다. 당시 그가 유명해 진 이유는 죽어서 장례까지 치루려 했던 괵태자를 침을 놓아서 살려 냈다고 하는 이야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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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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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그림은 어떤 화가들이 그렸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외에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들은 많은데요 우선 귀도 디 피에르토(Guido di Pietro 1417~1455 이태리)의 ‘사도들의 성찬식 이라는 제목으로 최후의 만찬을 그렸고 디르크 보우츠(Dirk Bouts 1415~1475 플랑드르 화가)도 그리고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 1423~1457 이탈리아)도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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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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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얼음 관리는 어떻게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이 얼음을 보관하기 위한 전용 창고가 바로 석빙고 입니다. 석빙고는 겨울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얼음을 녹지 않게 장기간 보관하는 일종의 냉동 창고로 당시 과학 기술이 집약된 문화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조선시대 석빙고가 6개 남아 있는데요. 경북 청도, 현풍, 경주, 안동, 경남 창원, 영산등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얼음을 ㅓㄱ는 것이 어려웠고 왕실의 제사에 쓰이거나, 왕실과 고급 관리들의 음식이나 고기 등의 저장, 의료용 또는 식용으로 사용했고 워낙 얼음이 귀했기 때문에 경국대전에 엄격히 규정할 만큼 얼음 배급은 중요한 국가 행사에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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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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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당 내부에는 무덤을 만드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세 시절 순례자들이 성인의 무덤 가까이에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성인의 유해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인의 유해가 옮겨졌던 1230년 성인의 유해가 성 조르조 성당에서 이곳으로 옮겨지자마자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잠그고 비밀스러운 장소를 선택해 사람들이 모르는 중앙 제대 아래에 견고하게 매장을 하였고 누구도 찾아갈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14세기 프란치스코 대성당은 성인 선종 후 엘리아 수사 (Frate Elia)의 감독하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 건축의 목적은 성인의 유해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존하기 위한 것과 함께 많은 신자들이 성인을 찾아와 기도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당은 수도회를 위한 성당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성당이면서 성인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공간이 봉헌된 영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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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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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무게를 측정할 수 있는 저울 같은게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에도 저울이 있었고 조선 시대에도 저울이 있었습니다. 저울은 그 측정 단위가 규칙적이어야 하는데요. 세종 3년에는 공조에서 중앙과 지방의 저울이 부정하므로 바로 잡을 것을 건의하자 세종이 이를 허락하였고, 이듬해인 세종 4년에는 새 저울 1,500개를 만들어 보급하고 옛 저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울은 완전히 통일되지 못하였었음을 세종 9년 서울과 지방의 저울을 모두 교정하여 만들도록 한 사례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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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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