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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의 실수나 잘나가는 사람의 불행을 보면 묘한 쾌감이 느껴지는 심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요. '쌤통'이거나 '고소'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따져 보면 불편한 느낌이고, 스스로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수도 있는 감정인데, 그런 쾌감은 자연발생적이라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고 하는데, 이는 독일어로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고 합니다.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목격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이유는, 사람이 타인보다 우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인데 게다가 타인의 실패를 도드라지게 보이게 만들고 싶은 불편한 심리도 숨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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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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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는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목면도입은 공민왕 13년(1364)에 문익점이 원으로부터 목면씨를 가지고 온 것을 최초로 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당대에도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즉 우왕 원년(1375년)에 문익점을 목면도입의 공으로 典客主簿에 임명하고 있으며 조선에 들어와서도 태종 원년(1401)에 목면전래의 공으로 그의 아들에게 벼슬을 내린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고려말부터 국가는 정책적으로 목면보급에 힘썼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데 그런데 과연 문익점이 목면의 최초 도입자인가는 의문이 급니다. 왜냐하면 문익점 이전에도 원나라와의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목면이 고려에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 입니다. 더군다나 원나라에서 목화는 금지 품목도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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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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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백두산정계비는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그 위치를 모르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두산 장군봉(將軍峰, 2,750m)과 대연지봉(大臙脂峰, 2,360m) 사이 대략 중간지점인 해발 2,150m 고지(高地)로, 백두산 천지(天池)에서 남동쪽으로 약 4km 떨어져 있다고 하는데 1931년 9월 만주 사변이 일어난 직후에 아쉽게도 없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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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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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에 지하철이 처음 개통된 것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1년 4월 12일 착공하여 3년 4개월 걸 1974년 8월 15일 개통한 지하철 1호선은 청량리-서울역간 역사적 첫 운행을 시작으로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도시로의 인구집중에 따른 교통난의 해결책으로 1964년 서울에 ‘단기적으로 버스 증차, 중기대책으로 전차 철거, 장기적으로 지하철 건설’을 계획했으나 막대한 재정 마련의 어려움 때문에 실행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970년, 정부는 외자 94억, 내자 230억 원을 투입하여 도심에 지하철을 건설하고 근교 철도를 전철로 개량하는 광역 수도권 고속전철사업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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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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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에 서울시의 시내버스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에 일제 강점기에 서울에 버스가 있었습니다. 1921년, 왕십리와 뚝섬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개통하면서 서울에서 처음으로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복 후에 1949년 8월 17개의 버스 회사가 서울시로부터 면허를 받아 273대의 버스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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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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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성 전투승리의 주역이 양만춘 장군이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안시성 전투는 고구려 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에 하나였지만 안시성의 성주에 대해서는 역사서에는 어떠한 자료도 없이 그냥 "안시성의 성주"(安市城主)로만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세에 송준길 의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과 박지원의 < 열하일기>에는 안시성 성주의 이름을 "양만춘"(梁萬春)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세기가 지난 후인 조선 후기에 이름이 등장하는 이유로 과연 용감하게 안시성을 지켜내었던 안시성 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수 있는데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안시성전투의 성주가 누구냐고 왕이 질문 하는 장면이 있는데 양만춘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부분이 나오는 걸로 뵈서 그렇게 봐도 무방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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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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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언제 고추가 전래된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추도 토마토와 마찬 가지로 남미 멕시코 등지가 원산지인데 우리에게 고추가 전래된 것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사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추는 우리나라의 토종 작물이 아닌 지구의 적도 부근의 멕시코, 페루가 원산지인 작물이었지요. 우리나라 고추 도입은 임진왜란 전후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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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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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우리고유의 채소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토마토는 우리 채소가 아니라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아즈텍 문명과 잉카문명에서 처음 재배되었다고 합니다. 이 문명 문화에서는 토마토가 약효가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이 유럽으로 토마토를 가져왔고, 스페인에서 토마토는 지중해 요리로 빠르게 인기를 얻었고 중국에 들어간 연도가 17세기 초라고 추정되며 이후 우리나라 사신에 의해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수광이 지은 '지봉유설'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면 토마토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614년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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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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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의 자리 짜기란 작품이 조선후기 신분제도를 보여준다는데, 어떤 것을 보면 알 수 있는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이 작품에서 아버지로 보인ㄴ 남자가의 머리에는 사방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 사방관이로 볼때 이 남자는 양반의 신분으로 추측 됩니다. 조선 전기만 해도 양반은 농업이나 상업등 돈 버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난한 양반들도 돈을 벌기 위해서 이렇게 돗자리를 짜는등 가내 수공업을 통해 경제 활동을 하게 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옆에서 물레를 돌린ㄴ 아내도 양반이지만 이렇게 돈을 버는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옆에서 공부하는 아이는 가난한 집의 상황을 묘사하듯 바지를 안 입고 있으며 어렵지만 그래도 양반의 자식이기에 글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18세기 가난한 양반의 신분을 적나라 하게 보여 주는 시대를 잘 설명해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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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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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을 확인하는 일종의 신분증이었던 '호폐법'을 만든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패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양반과 노비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 되었는데, 이를 실시한 이유는 왕권 강화의 목적도 있었지만 신분 사칭의 방지와 인구수 조사, 마을의 가구와 인구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더 궁극적인 목적은 신분 전국의 인구수를 파악하고 세금이나 군역, 부역을 균일하게 부과하는데 활용하려고 실시한 것입니다. 따라서 호패를 찬 백성은 국가를 위해 힘든 부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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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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