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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정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문학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가치와 인간만이 지닌 자기표현 능력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인 연구 방법에 관심을 갖는 학문 분야로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인간이 행복함을 느끼는 경우는 다양하지만 궁극적인 행복은 자아실현을 이루는 것입니다.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 인지에 대해서 알고 그에 맞게 뜻을 펼치는 것, 그것이 자아 실현입니다. 인문학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학문 /
철학
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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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이라고 하는 직책은 어느시대 직책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궁중의 숙직, 국왕의 시종·호종·경비, 왕명의 전달, 의장(儀仗)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내관직인데 남반직은 후세로 내려갈 수록 잡류(雜流)·잡로로 취급되고, 또 말기에는 환자(宦者)가 이 직을 맡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더욱 천시되어 아무리 큰 공을 세워도 상은 주지만, 7품 이상의 관직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국왕의 측근에서 일하는 근시인 까닭에 간혹 발탁되어 파격적인 승진을 하는 예도 없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원종 때에는 내시로서 장군이나 낭장으로 임명되는 자가 있었고, 충렬왕 때에는 고위 관직에 임명되는 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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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사도세자를 안죽였다면 어떻게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런것은 아닙니다. 사도 세자가 안 죽었다면 사도세자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아마도 조선의 22대 왕은 사도세자가 되었을 것이고 22대 왕인 정조는 아마도 23대 왕이 되었을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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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절에 모신다는 뜻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제사의 정의를 살펴보면, “천지신명을 비롯한 신령이나 죽은 이의 넋에게 제물(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표하는 행위” 라고 나와있는데 . 좁게는 천지신명에게 올리는 정성이며, 넓게는 샤머니즘 및 조상숭배, 애니미즘 등과 관련하여 제물을 바치는 의식 전반을 지칭합니다. 다만 고려말 이후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유교가 도입되어 가족이 모이고 조상들을 기억하는 의례로 바뀌게 되었을 뿐이지요. 장소만 바뀌었을 뿐 집에서 지내나 절에서 지내나 큰 차이는 없을 것 입니다. 실제로 절에서도 기제사로 해서 약간의 돈을 받고 사람들의 제사를 지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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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품사 중 왜 조사는 품사에 포함되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어의 품사에는 총 8가지가 있습니다. 명사, 대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 전치사, 접속사, 감탄사인데요. 이중 우리말에 조사에 해당하는 것이 영어에 전치사 인데요. 전치사도 독립적으로 쓰이지 않고 명사나 동명사와 같이 붙어 쓰여야 하지만 품사에 포함 됩니다. 품사는 독립적으로 쓰이냐가 아니라 단어들을 공통된 특질로 모아 놓은 놓은 것을 말합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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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중에서 2인칭 소설은 왜 없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설에도 2인칭 소설이 있습니다. 편지의 형식을 빌리는 서간체 소설 중에도 일종의 2인칭 시점으로 된 것이 있습니다. 초대박 베스트셀러인 신경숙 의 엄마를 부탁해 의 1챕터도 2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협작가 진산 의 단편 중 잠자는 꽃 역시 2인칭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특히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너’는 서술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부분들은 위장된 1인칭 서술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문 /
미술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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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을 일으켰다는 장제스는 마오쩌둥의 숙적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의 국부 라고 불리우는 손문이 죽고 나서 그는 새로운 국민정부의 주석으로서 사회개혁 정책을 굳건하게 지지했으나, 그 정책의 대부분은 탁상공론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로는 1928년 그가 중국 군벌들을 흡수했지만 그가 중국 대륙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선 각 지방의 군벌들을 진압했다기보다는 중립화시킨 것뿐이었고 군벌들은 여전히 그의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1945년 이전까지 내부 친인척과 측근들의 부패와 비리를 다스리지 못함으로써 국공 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게 패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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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오신날 사찰 세군데를 가면 좋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혀 근거가 없는 말 입니다. 다니 던 절도 일년에 한번 가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기복 신앙을 위해 부처님날이라고 절을 3군데 이상 돌아 다니는 것이 부처님이 좋아 하시지 않을 뿐 더러 아마도 자기절을 더 많이 찾아 달라는 일부 이기적인 장사속에서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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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양이 동양보다 문물이 빨랐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에서는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과학 기술을 천시 했습니다. 유교 사상에 심취되어 형이 상학 적인 것과 논어 맹자 대학등 사서 삼경에만 몰두하다보니 과학 기술이 발달 하지 못했고 과학 기술이 발달 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기 제작에도 서양보다 늦게 됩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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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강연을 듣다가 '태산북두'라는 사자성어를 듣게되었습니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산북두(泰山北斗)라는 고사성어는 중국의 제일 명산인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星)을 의미하며, 학문이나 예술 분야에서 높은 지위와 존경을 받는 인물을 뜻합니다. 이 단어의 유래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인 한유(韓愈)와 관련이 깊습니다. 한유의 학문은 죽은 뒤에도 점점 융성하여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를 우러러 보는 것 같이 존경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처럼 태산북두라는 고사성어는 남에게 존경받는 뛰어난 존재를 상징하며, 그 높은 지위와 존경받는 인물의 업적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됩니다. 우리나라에도 한라산과 백두산처럼 높은 산이 있지요. 그렇게 학문이나 업적이 높다라는 것을 강조한ㄴ 표현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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