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용지 도장의 모양 의미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표 용기는 1948년 선거 초기에는 총알 탄피로 시작 해서 중간에는 볼펜 자루 등등 여러 번의 변화가 있다가 지금의 점복자가 들어간 인장으로 대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도장의 기호에 대해 '사람 인 (人)'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사람인 자가 아니라 점복 자 <卜> 라고 합니다. 1994 총선 때 부터 바뀌었는데 이는 김영삼 대통령의 시킨다고 해서 바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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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에 색지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책에서 색지의 역할은 표지와 본문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며, 표지 및 본문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색깔의 색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속표지 또는 표제지 ) 본문의 맨 앞장, 표지에 나온 색지는 미관상으로도 에쁘게 하면서 특히 제목과 지은이, 출판사 등을 한 번 더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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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은 이유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 대원군이 왕이 못된 이유는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이 조대비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왕실 계보 때문 입니다. 조대비는 익종(효명세자)의 아내였고 헌종의 어머니였죠.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보위는 철종에게 이어졌는데요. 조대비는 남편인 익종과 아들인 헌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왕의 계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문제는 흥선군이 익종과 항렬이 같었습니다. 그러니 익종의 양자로 들어갈 수가 없기에 그래서 흥선군은 자신의 둘째 아들(훗날 고종)을 익종의 양자로 입양시켜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야 조대비를 설득해서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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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타고르가 조선은 아시아의 등불이라고한 근거가 있습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발표된 자유시인데 당시 주요한의 朱耀翰)의 번역으로 실린 이 시는 《동방의 등촉 혹은 동방의 불꽃》이라는 제목으로도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1929년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아 일보 기자로부터 한국 방문을 요청받았으나 응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여 《동아일보》에 기고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시는 타고르가 한국을 소재로 쓴 두 편의 시 가운데 하나로, 일제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인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싸워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낸 격려의 송시(頌詩)인데 당시 인도 또한 우리와 같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이기에 아마도 동변 상련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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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도 신라처럼 금관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총 9개의 금관들은 6개가 신라 시대의 것이고 3개가 가야의 금관 이였다고 합니다. 고구려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그 이유가 고구려의 위치가 북한 및 중국에 위치 한데다 도굴을 하도 많이 당해서라고 합니다. 얼마전 처음으로 불꽃 금관이라고 하는 것이 북한 지역에서 공개가 됬는데 정확한 시기나 연도는 미 확인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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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의 설립 목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G7 결성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 달러화 가치의 급락으로 미국 달러를 주거래 통화로 삼는 브레턴우즈 협정이 흔들리고 세계경제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1974년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 1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 은행장들이 미국 워싱턴 스미 소니언 박물관에 모여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스미소니언 합의’를 도출했고, 당시 조지 슐츠 미국 재무장관이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의 재무 장관에게 백악관 도서관(라이브러리)에서 따로 만날 것을 제안한 데서 ‘라이브러리 그룹(Library Group)’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결성된 것이 G5(Group of 5)입니다. G5는 1975년 이탈리아, 1976년 캐나다의 참여로 G7으로 확대 개편됐다고 합니다. G7은 1997년 러시아가 참여해 G8이 됐으나 재무 장관 회의는 아직도 G7 국가만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비록 최근 몇년간 글로벌 이슈 해결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 했지만 그래도 G7은 국제 사회에 있엇서 가장 영행력이 있는 국가들의 구성이며 세계 환경 문제 해결 및 광범위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 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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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천황은 2차 세계 대전 시절처럼 상당한 영향력이 있나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의 왕은 어느 국가 던지 얼굴 마담입니다. 현대 입헌 군주제는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특징 입니다. 영국도 일본도 태국도 마 마찬 가지이며 다만 국민들의 존경은 한 몸에 받고 있는 것도 공통된 특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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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는 어느 나라에서 시작이 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적으로 당구의 기원은 BC 400년경에 그리스에서 실시되었다고 전해지며, 현대식 당구의 기원은 영국 기원설과 프랑스 기원설로 나뉘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당구의 시작은 1910년 순종 때 창덕궁 동행각에 2대의 당구대( 당시 명칭 : 옥돌대 )가 설치되면서 한국 당구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구의 종류는 크게 새 가지인데 미국식 포켓볼, 프랑스식 4구, 그리고 영국식 스누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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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추쇄도감이라는게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때 부터 전해 오긴 했으나 노비추쇄도감을 설치한 것은 조선 건국 이후 노비 문제의 처리를 둘러싸고 고심하다가 간관(諫官) 전백영(全伯英)의 건의에 따라 1395년(태조 4)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을 설치하였다고고 합니다.100여년 동안에 생긴 은루자와 불법종량자를 밝혀 각사 노비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누대에 걸쳐 누락된 자 가운데 사마시에 합격한 사람도 있었으므로 당시 감소 추세에 있는 양인 군정(軍丁)을 확보하기 위해 그런 사람들을 양인으로 구제하는 데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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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원폭피해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져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했을 당시 한국인 약 5만 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는 히로시마 원폭으로 인한 한국인 사망자를 3만 명으로 추산한 바 있으며, 위령비에는 사망자가 2만 명으로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돌아 가신 분들께 위로를 전하고 참배를 하는 것은 맞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 적이 없었다고 하고 이번 윤석렬 대통령이 처음 이라고 하네요. 다만, 이러한 원폭 투하가 없었다면 과연 일본이 항복을 했을 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어려운 문제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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