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차 세계 대전 패전국으로서의 전쟁 보상금을 모두 배상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배상금은 다 갚았긴긴 했는데 90년 만인 2010년 10월에 다 갚았습니다. 독일 정부는 1차 세계 대전 전쟁배상금 잔여분 지불을 위해 발행된 채권이 독일 통일 20주년 만에 다 갚았는데요. 마지막 잔여분 7천만유로(9천400만달러)를 2010년 10월 다 치르고 배상금 지불을 완료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92년 만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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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어디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서원은 1550년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백운동서원’에 대하여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어필(御筆)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노비를 부여하여, 사액서원의 효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 전국의 도처에 서원이 세워지면서 사액을 요구하자, 국가에서는 사문진흥(斯文振興)과 선유(先儒)에 대하여 보답한다는 뜻으로 대개 이를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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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장거정의 개혁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거정은 관리들에 대한 근무평정법을 도입하여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았다고 합니다. 전국적인 토지 조사를 실시함으로써 은닉된 토지를 색출하여 세원을 확대했고 관리들이 임의로 국가의 역전(驛傳)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국방력을 강화하면서 효과적인 협상을 주도해 마침내 변경의 안정을 회복했는데 . 10년간의 개혁을 통하여 장거정은 쇠퇴하던 명나라를 다시 정상적인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역사에서는 이를 '만력중흥(萬曆中興)'이라 평가하며, 장거정은 '시대를 구한 재상'이라는 의미에서 '구시재상(救時宰相)'이라는 명예로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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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빈민구휼제도에 대해 알려주세용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 비황제 제도란 보릿고개 때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백성에게 정부 곡물을 빌려주고 수확기 때 이를 갚도록 하는 사회복지 제도를 말하는데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고려 백제 고구려 시대에도 비황제와 같은 사회복지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이는 모두 민심을 안정화시킴으로써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창 (환곡), 상평창, 사창, 교제창, 제민창 등이 있습니다. 2. 구황제도 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궁(四窮)에 대한 보호, 노인보호사업, 시식(施食), 진휼 및 진대사업, 조적(蘿繼) 및 방곡(放穀), 고조(顧助), 견감(獨減),원납(願納), 인보상조, 구황방(救禁方) 등을 들 수 있습니다. 3. 구료 제도는 빈민·행려자의 구호와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실시되었던 의료제도. 전의감, 혜민서 , 동서 대비원등이 대표적인 케이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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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양에는 유화가 발달하지 못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화에서는 보통 수묵화가 발달 했습니다. 유화가 아주 없진 않으나 있어도 물감을 만들 때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는 반면 서양화에서는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고 또한 동양화에서는 물감을 얇게 바르고 색을 섞지 않아 색의 진한 정도를 나타냅니다. 동양적인 사고 방식도 먼가 은은한 맛을 내는 반면 서영화에서는 정확하고 원색적인 질감을 나타내고자 하는게 차이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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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잡류들은 주로 어떤 역할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잡류라 함은 이속(吏屬)인 서리직과 잡류직, 남반, 기술관, 향리, 하급 장교등이 있는데 이러한 부류는 귀족도 아니고 천민도 아닌 중간 계층으로 조선 시대에 중인에 해당하는 부류 입니다. 여러 관서에 소속되어 다양한 잡역에 종사하거나, 관료를 호종하는 임무를 담당하였고 국가에서 녹을 받아서 생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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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삼포왜란 어디에서 일어난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포왜란 ( 1510년 4월 4일 ~ 4월 19일) 또는 경오왜변 (庚午倭變)이라고 하는 것은 1510년 (중종 5년) 4월 4일 우리나라 부산 근처에 거주하고 있던 왜인들이 대마도주 종성친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왜변을 말합니다. 여기서 삼포란 제포 (내이포), 부산포, 염포 등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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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지배자 칭호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의 왕의 칭호는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그리고 왕 순으로 변화했는데 우선 거서간은 진한의 말로 귀인을 가르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차차웅이란 무당을 가르키는 말로 제정일치 시대에 제사장의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 있고 이사금이란 현명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이라는 의미 이며 마지막으로 마립간이란 신라 시대에 왕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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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이 불교와 유교를 장려한 이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앙 관제와 지방의 통치 조직을 정비하여 정치 운영에서 귀족 회의체의 정치적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왕권 중심의 국가 운영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사비 천도도 그 일환으로 단행되었고, 유교와 불교를 장려해 국론을 통합하고 역시 왕권을 강화 하고자 함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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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성공했는데 왜 홍건적의 난이라고 부르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건적의 난은 1348년 원나라 에서는 절강의 방국진이 해상에서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차례로 반란이 일어난 것이고 당시 주원장은 홍건적의 대장이 아니라 그냥 부두목 정도 였으며 그 후 20년 후에 1368년 주원장은 응천부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국호를 명 (明), 연호를 홍무 (洪武)로 정했습니다. 황제가 된 주원장은 북방에 대군을 파견하여 원나라의 수도 대도 (大都, 지금의 베이징)를 점령하고 원나라 순제 (順帝)를 몽골초원으로 쫓아냈고 몇 차례 대군을 파견하여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정벌하였고 1388년 통일을 완성하게 된 것 입니다. 그러니 홍건적의 난이 바로 명나라 건국으로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홍건적의 난은 그냥 민란이지 혁명이나 건국 전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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