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학문 공부순서가 천자문부터 시작하여 주역까지 과정이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배열이 된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처음에 천자문을 읽어 한자의 기초 지식을 얻은 다음, 동몽선습이라는 책을 배웠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오륜과 우리 나라 및 중국의 역사에 대해 쓴 사회과의 기초 교과서 입니다. 동몽선습을 배운 다음에는 계몽편, 명심보감, 소학 등의 순서로 공부한다고 합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논어, 맹자와 같은 유학책을 배운다고 하지요. 이라한 순서는 서당에서 아이들의 발달 과정과 인지 능력을 고려해서 이러한 순서를 정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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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장 늦은 나이의 과거 급제생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최고령 과거 급제자는 고종 24년(1887년) 나이 83세에 개성 별시 문과의 병과로 급제한 박문규 씨라고 합니다.고종은 이제 막 급제한 박문규를 병조참지(정3품 당상관)에 특명으로 제수하고, 1년 후 1888년 가선대부 행용양위호군(종2품)에 제수되어 초고속 승진하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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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2로 성공한 드라마나 영화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영화던 드라마던 원작 보다 시즌 2가 흥행 하기는 쉽지 않지요. 그러나 시즌 2가 시즌 1보다 더 히트를 친 작품들이 제법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터미네이터 2, 에일리언 2, 대부 2, 탑건2 멜버릭 등입니다. 해외 영화 뿐 아니라 우리 나라 영화도 시즌2가 원작 만큼 뛰어난 것들이 있지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신과함께-인과 연》의 관객 수가 1000만을 넘어, 신과함께 시리즈는 대한민국에서 역대 최초로 '쌍천만 관객 영화'라는 타이틀을 기록하여, 전작인 《신과함께-죄와 벌》에 이어서, 또 하나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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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은, 1465년(세조 11)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했다고 전해 지는 김시습이 이곳에서 2년 만에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었고 『산거백영(山居百詠)』(1468)을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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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탁마의 의미와 유래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절차 탁마란 切磋琢磨란 학문·도덕·기예 등을 열심히 닦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편(淇澳篇)의 다음 시구에서 유래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저 강[淇水, 기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瞻彼淇澳, 菉竹猗猗.] 아름다운 광채의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 듯하구나.[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엄갹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아름다운 광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도다.[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이 시는 군자를 칭송한 것으로, 학문과 인격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 겉모습까지 완성된 것을 푸른 대나무에 빗대어 말한 것이다. 이로부터 '절차탁마'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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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이후 네덜란드에 갔던 특사에 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05년 을사 늑약 이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는 각국 대표들이 모여 세계 평화에 대해 논의하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릴 예정이였는데 . 이 회의의 목적은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를 넓혀가던 서양의 힘 있는 나라들이 서로 충돌해 생길 수 있는 전쟁을 미리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종 황제에게 만국평화회의는 일본의 불법적인 침략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이준 열사를 파견 하나 일제의 반대로 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체포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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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점유율 축구의 원조는 어떤 감독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맨체스터씨티의 과르디올라는 1군 감독 경력이 전무한 상태였는데 감독이 되자마자 호나우지뉴, 데쿠, 사뮈엘 에토와 같은 주축선수들을 이적시키는 과감한 리더쉽을 발휘하기 시작하며 숏패스에 의한 높은 볼 점유율을 유지하는 이른바 '점유율 축구'였다를 구사하며 점유율 축구의 원조 역할을 하고 대명사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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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을 주는게 언제부터 시작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결혼 예식은 신부의 집 마당에서 이루어졌기에 결혼은 마을 공동체의 잔치였으며, 품앗이 처럼 음식물을 상호 부조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식이 식장에서 간소화되면서 음식물은 화폐로 바뀌었지요. 결혼 뿐 아니라 장례나 제례, 회갑 등의 경조사에도 현물이나 돈을 보내는 부조금 문화는 이웃이나 친지에게 도움을 주고, 자신이 큰 일을 치를 때 돌려 받을 수 있어 사회적 교환으로써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기록으로 보아서는 현물 대신 현금을 주는 부조가 등장한 시점은 18세기 즈음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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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월드컵 최다골 선수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대 축국 선수 중에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독일의 미로 슬라프 클로제 선수로 4대회 24경기 16골로 경기당 0.67골을 넣어 세계 최고의 선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현존하는 선수로 이를 꺨 수 있는 선수는 프랑스의 음반페 정도가 있을 뿐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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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외국과 무역을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과 조선은 조공 무역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처럼 조선과 명 사이에는 조공과 상사 등의 형태로 양국 사이에 이른바 관무역이 행해지는 동시에 사행의 사무역이 이루어졌는데요. 조선정부는 선진문물을 수입하고 정권의 국제적 승인을 얻어 국내 통일에 활용하는 동시에 관무역과 사무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편 명은 명목상의 종주국으로서 그 전래의 자존심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역시 조선과의 관무역과 사무역을 통해 경제적 욕망을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태종대부터 금은 세공이 면제된 세종 12년(1430) 2월 이전까지 정조·성절 및 천추사 등 정기사행을 통해 다음과 같은 물품을 명에 조공으로 보냈습니다. 금은그릇·나전소바·백면지·각색모시·용문렴석·각색세화석·표피·달피·황모필·백면지·인삼·종마등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상 정기적인 조공품 이외에도 수시로 파견되는 사은·진하·주청사 등 각종 임시사행에게도 의례적 예물로서 여러 가지 물품을 명에 보냈습니다. 조선정부가 왕조 초기에 이상과 같이 정기 및 임시 사행을 통해 각종 물품을 조공으로 보내면, 명은 조공에 대한 답례물로서 자기·약재·예복·서적·악기·보석·弓材牛角·문방구 등을 조선에 보내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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