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결혼 적령기는 몇세정도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여자들은 보통 15-16세에 결혼을 했고 남자들은 보통 19-20세에 장가를 들었다고 합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 여자나 남자나 20살이 훌쩍 넘어서 가는 경우도 있었긴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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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200원짜리 동전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조폐공사는 홈페이지를 통해 "200원짜리 동전은 단순히 발행기념 주화로만 만들어졌으며 실제 사용주화는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즉 만들긴 했으나 이는 수집용이고 실제 사용 용도는 아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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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선 왜 집안에서 신발을 신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난방 방식과 생활 방식의 차이 입니다. 서구의 집들은 벽난로나 스팀 같은 온열 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차가운 바닥에 카펫 등을 깔고 신발을 신는 문화가 형성된 반 면에 한국은 온돌 난방이기 때문에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것이지요.더군다나 서양은 침대 문화가 발달했지만 우리나라는 예전 부터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습관이 있기에 방바닥이 깨끗 해야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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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일본의 인구는 많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 왜란 당시 조선과 일본의 인구수는 약 1200만명으로 서로 비슷했다고 합니다. 소농경영에서 농업기술은 노동력의 집약과 경지면적당 수확량의 증대라는 방향으로 발전한 결과 17세기 단위면적당 수확량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합니다. 소농경영이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하게 되면서 인구가 대폭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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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의 업적엔 어떤것들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임당은 조선 시대의 여인을 업신여기는 봉건 시대의 제약을 받았으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자기 개발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시문과 그림, 글씨 등 조선 시대의 대표적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개척하였을 뿐 만 아니라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로서도 유명한 분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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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무라이의 할복은 어떤 의미를 가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무라이에게 할복은 할복을 함으로써 사무라이 자신이 저지른 책임과 죄과는 어떠한 것이든 용서받을 수 있었고, 이것의 의미는 자신은 죽지만 자신의 처자식 들은 계속적인 권력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할복이라는 것은 일본에만 있는 자살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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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문화는 어떻게 생겨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프랑스 왕족의 향수 사랑은 각별합니다.16,17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럽 도시들이 번잡해지고 냄새가 고약해져서 그 냄세를 지우기 위해서 향수를 뿌리는 것 또한 더욱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모든 것에 향수를 뿌리는 집착이 심해져 애완동물이나 보석에도 향수를 뿌렸다고 합니다. 18세기에는 향수가 대단한 유행처럼 번졌고,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좋은 향수를 뿌리고 다녔습니다. 1715~1774년 프랑스를 통치한 루이 15세의 궁전은 ‘향수 궁전’이라 불렸고, 귀족들은 요일마다 다른 향수를 뿌리는 것이 관례였다고 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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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소를 숭배한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는 힌두교를 믿는 인도에서 가축같은 동물입니다. 마치 강아지와 고양이 처럼 집에서 가족처럼 키우지요. 그래서 소들이 거리를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누구하나 해를 가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도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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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에서 해적은 언제 처음등장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적으로 해적질 로만 먹고 살았던 첫 해적은 바이킹 시대 ( 영어: Viking Age )가 유럽사 의 시기 중 하나이며 (793년–1066년), 특히 게르만족의 철기 시대 이후 북유럽 과 스칸디나비아의 역사 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드인 들이 교역, 약탈, 식민지화, 정복을 위해서 바다와 강을 건너 유럽을 탐험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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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나라에도 화장을하는문화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기 해주신대로 신라에서는 여자뿐 아니라 화랑도들 같은 남자에 이르기까지 화장을 하였고 아름다움을 귀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고려시대가 시작되면서 기생이 짙은 화장을 함으로써 직업 여성은 야한 화장, 여염 부녀자는 엷은 색조의 화장이라는 이원 화된 고정관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는 조선 시대를 거쳐 지금 까지도 그런 생각이 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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