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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에서 물감 색을 추천하는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빨강, 파랑, 노랑의 색을 섞었을 때 가장 많은 가지 수의 색깔을 만들므로, 이 세 가지를 색의 3원색이라고 하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자홍(Magenta), 청록(Cyan), 노랑(Yellow)이 색의 3원색입니다. 유화물감은 15세기 중세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유럽에서 활발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는데요. 유화의 발명, 그 이전에는 달걀 등의 단백질을 사용하여 정착하는 템페라 기법이 주를 이뤘습니다.지금처럼 다양한 색상을 내는 인공 물감을 얻을수 없었기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습니다. 유화물감이 활발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예술가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이 있는데요. 초기의 유화물감은 여러 화가들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기름에다 안료를 혼합하여 유회구를 만들어 사용하며 조금씩 발전시켜오던 방식이었습니다.이후 유화는 17세기 루벤스와 렘브란트 시대를 거쳐 발전하다 19세기 인상주의 화풍에서 이르러 기술의 발전과 맞물려 더욱 발전하게 됩니다.지금처럼 유러 색상의 물감을 쓰게 된 시기는 19세기에 이르러 기계의 보급이 가속화되고 지금의 금속튜브에 담아서 오래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면서 더욱 편리한 방식으로의 대량생산도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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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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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군인들 월급은 뭘로 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가에서는 군인에게 월급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군사업무를 수행하는 군인을 정군(正軍)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에게는 보인(保人)이 있어서 이들이 정군에게 재정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이었고 정부에서는 별도의 월급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정군의 월급 및 군대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보인에게서 얻었고 그래서 정군 1인에 보인이 2~3인 정도가 하나의 집단을 이루었지요.월급 군인은 임진왜란 때 만들어진 훈련도감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고 합니다그때 월급으로는 쌀과 면포를 받았습니다.훈련도감의 경우 마병은 쌀 10두(斗)와 말의 먹이로 콩 9두를, 보병은 쌀 9두를 받았고, 이 외에 군복용 면포를 1년에 9필(疋)을 받았다고 하지요. 당시 관청 품팔이 노동자의 월급이 쌀 2~9두였다고 하니 삼군영 군인의 월급은 결코 높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업무시간 외에는 다양한 상업 활동에 참여하였다. 군복 옷감으로 받은 면포를 비롯하여 담배와 담뱃대, 짚신, 망건 등과 같이 비교적 간단한 기술로도 만들 수 있는 물건을 직접 제조 판매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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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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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크리스마스 캐럴(Carol)은 많은 사람들이 그냥 즐겁고 신나는 선물 받는 날로만 생각하는 바로 그 성탄절에.맞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뜻으로 부르는 찬송가에서 비롯 됬습니다. 캐럴은 14세기 영국에서 그 유래가 시작되었는데여. 다만 본래는 캐럴이 크리스마스에 한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민중이 야외에서 소리를 합하여 노래하는 즐거운 성격을 띤 종교적인 노래를 모두 캐럴이라고 하였지요. 어법적으로 '캐롤'이 아닌 '캐럴'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은 표기입니다.종교의 자유가 없는 북한과 이스람문화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불법인 탓에 캐럴이 모두 금지곡이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여름이기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었거나 기존 캐럴에서 가사만 여름 느낌이 나는 것으로 바꾼 여름 캐럴도 따로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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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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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가 해방되는경우도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는 고려에 비해 신분상승이 비교적 자유로왔지요. 양반이 죄를 지면 노비도 되고 노비도 업적을 남기면 양반이 되기도 했지요. 대표적인 예가 장영실 이였지요. 장영실은 아버지가 양반이였으나 어머니가 기생 출신이라 신분이 노비였지요. 그러던 그가 다양한 가술 재품을 만든 공로로 종 3품 대호군의 직급까지 오르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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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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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머스크는 왜 트위터를 인수하려고 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지난달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가 440억달러(약 63조원)에 트위터를 인수했다고 하지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려고 했던 건 갑자기가 아닙니다. 벌써 몇년 전 부터 준비해 오고 있었던 것이구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유튜브를 노려서 입니다. 현재 유튜브는 유튜브 프리미엄 등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사업이 지지 부진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튜브와 대항할수 있는 플렛폼이 틱톡 정도인데 틱톡도 유튜브랑은 비교가 안됩니다. 그래서 트위터를 일론 머스크는 유튜브를 잡아먹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키울 야심을 거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문 /
역사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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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어느정도 됬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확한 예전시대 사람들의 평균 나이를 알기위해선 어쩔수 없이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는 왕들의 수명을 참고할수 밖에 없습니다. 일반 사람들의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조선시대 수명과 관련해 정확하게 남아 있는 것은 국왕 27명의 숨진 나입니다. 가장 장수한 조선시대 왕은 만 81세 5개월에 세상을 떠난 영조이고 두 번째는 72세까지 산 태조 이성계입니다. 70살을 넘긴 임금은 태조와 영조 등 2명에 불과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고종(66세), 광해군(66세), 정종(62세)이 였습니다. 조성 28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48세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의 평균 수명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낮았을 거라고 판단이 들지요. 아마도 이렇게 현저히 낮은 이유는 영아 사망율이 높았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고 볼수 있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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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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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를 왜 바가지긁는다고 표현하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바가지를 긁다' 라는 말의 어원으로는 크게 2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전에는 전염병이 돌면 무녀를 불러 굿을 벌였는데, 굿판이 벌어지면 소반위에 바가지를 올려놓고 득득 긁어 병귀가 달아나도록 하면 병이 낫는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귀신을 쫓는 주술적행위라고 볼 수 있지요. 이 바가지 긁는 소리를 듣고 귀신이 물러나게 한다는 신경에 거슬리고 듣기 싫은 소리인데요 , 그래서 신경에 거스리는 소리를 하다가 되었다는 설과 또 하나는 바가지는 원래 쌀을 푸는 도구입니다. 그러니까 집에 쌀이 떨어져서 아내가 쌀통(쌀독)남아 있는 쌀을 한톨이라도 더 담을려고 박박 소리내며 바가지로 긁어가며 내던 소리가 바가지를 긁다라고 되었고 이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남편입장에서는 매우 가슴아프고 신경거스리는 소리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2.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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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퍼가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극래퍼들의 대부분이 외국애서 살다온 경우가 많은데.한국에서 힙합을 한국학생들도 워낙 많은 미국 힙합을 들어 가지고 발음이나 문장걑은 경우에는 굉장히아주 자연스럽기도 합나다.
학문 /
음악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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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학도병들은 자진해서 참점한것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국방부는 국가의 장래를 짊어질 학도들의 참전을 만류하면서 정훈국의 지도에 따를 것을 종용하였지만 7월 1일 대전에 내려온 피난 학도들과 현지의 학도들은 다시 ‘대한학도의용대’를 자발적우로 조직하였다고 합니다.어린 중학생 소년에서 장성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학도의용군의 이름으로 실전에 참여한 학도들은 그로부터 6·25전쟁의 전 기간을 통하여 모두 2만7700여 명에 이르렀고, 후방지역 또는 수복지역에서 선무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무려 2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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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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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머리를 무엇으로 감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에 머리는 그리 자주 감는 것이 아니었다. 세정제의 도움이 없어도 깨끗한 물에 마리를 골고루 적셔 감고 빗질을 촘촘하게 해서 틀어 올린 모양이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일반적이었으므로 쉽게 더러워질 일도 없었고 생각만큼 냄새가 지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샴푸 등의 세정제 없이 물만으로 머리를 감아서 빛나는 머릿결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인터넷상에 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염색도, 파마도, 열기구를 사용한 모발 손상도 없던 조선시대에 지금처럼 미세먼지와 화학적 헤어제품들로 범벅이 되지 않은 머리라면 물로 정성 들여 감고 말리고 빗는 과정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위생관리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단오날에 창포물에 멱감을 감는다는 말처럼 굳이 그냥물이 아니라 청포꽃잎를 띄운 물에 머리를 감으면 벌레가 안 물린다는 것 때문에 종종 창포물을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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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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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1991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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