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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서강에 대한 개항에 거부감이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과 서민의 생활과 인식 수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적어도 일본의 집권층은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직시했다고 합니다. 보신 전쟁부터 애초에 근대화 할거냐 말거냐 이걸로 싸운거 아입니다. 근대화를 해야된다는 필요성은 당시 막부측이나 유신측이나 너무도 당연하게 초당파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애초에 이런 시대적 공감대가 있었던 덕분에 카츠 카이슈슈부터 에조 공화국의 수괴 에노모토 다케아키까지 패배한 막부측 인사도 대부분은 큰 문제 없이 신정부에서 등용, 재능을 필 기회를 마련해주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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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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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가 공산국가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에 알바니아는 원래 공산 주의 국가 였습니다. 알바니아는 1946년부터 1992년까지 남유럽 발칸 반도의 알바니아 지역에 존재하던 공산주의 국가이었는데 원래 명칭은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이였으나 1976년에 새로운 헌법을 통과 시키며 국명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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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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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에서 왜 남한쪽 사람들이 북한쪽 군인이 되기도 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남한 내 좌익세력도 있었습니다. 6.25 전쟁 당시 남한 내에는 좌익세력이 존재했습니다. 이들은 북한군과 협력하여 남한을 침공하고, 일부 민간인 학살 등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전쟁의 복잡한 배경 중 하나였습니다. 인민군의 진입할 당시인 6월 28일 인민군이 서울에 진입했을 때, 일부 남한 내 좌익세력은 인민군을 환영하며 도와주었고 북한구에 합류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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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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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작품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 연극 100주년을 기념해 최초의 연극인 '은세계'가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주시평 기자입니다. <기자> 1908년,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공연됐던 이인직의 '은세계'가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탐관오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한 농민과 그 자식들의 굴곡진 삶을 그린 이 작품은 당시 봉건 사회상이 잘 투영된 우리 연극의 효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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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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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예술은 정말 가치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예술이라는 가치 자체는 근현대에 들어서 발명되었고 현대미술이야말로 가장 예술의 가치에 부합하는 존재 입니다. 고전 미술은 당시 예술이라기보다는 미적인 아름다움, 쾌적함을 최상으로 여기는 장식의 개념에 불과했는데 이에 반해 현대미술은 인간의 관념을 질료로 삼은 진정한 예술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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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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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은대지 제도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마제국의 은대지 제도는 야만족 출신 군인이 국경을 수비 하는 대가로 국가가 일정량의 먹고 살 땅을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봉건제도 항목에서 언급 하였듯 서양의 봉건제는 실질적으로는 권력 이 밑에서부터 모여서 위로 수렴되는 것 이었는데 우리 나라로 따지면 군인전 같은 개념 이였다고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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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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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선 지금의 휴게소는 어느곳에서 역할을 하였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금의 휴게소는 예전에 주막 이였습니다. 주막은 시골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도회지에도 많이 있어 주막거리라는 이름이 생겼을 정도인데 대체로 주막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으로는 장터, 큰 고개 밑의 길목, 나루터, 광산촌 등이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주막이 많기로 유명했던 곳으로는 서울은 물론이고,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중간인 소사·오류동에 많았는데, 서울에서 출발하면 점심 때쯤 그곳에 도착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문경새재에 주막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곳에는 나라에서 운영하던 조령원(鳥嶺院)·동화원(桐華院) 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천안 삼거리는 능수버들의 전설과 함께 주막이 번성했던 곳이고, 경상도와 전라도의 길목인 섬진강 나루터의 화개(花開), 한지와 죽산물·곡산물의 집산지인 전주 등이 주막이 많았던 곳으로 꼽힐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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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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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제주도도 찾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시황이 보낸 서복이 불로장생약이 있다고 여긴 세 장소 중 하나인, ‘영주’는 바로 제주도의 옛 지명 입니다. 영주에 다다른 서복은 지금의 한라산에서 자신이 불로초라 여긴 영지버섯, 시로미, 금광초, 옥지지 등을 구했다고 하고 그리고는 서귀포 앞바다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서쪽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합니다. 서귀포(西歸浦)는 이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말에서 유래한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서복이 돌아간 포구’라서 서귀포였다가, 훗날엔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고 해서 서귀포로 불렸다고 전해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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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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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제주도에 일본인들이 더 많이 상주했을 때가 있다던 게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인들이 제주도에 많이 살았던 시기는 1900년부터 1945년까지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인 거류민은 제주도에서 근대 생활을 하며 일본식 집을 짓고 일본 음식을 먹고 일본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후 많은 일본인들이 한일 관계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 가거나 제주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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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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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먹는 풍속이 있는 데 그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곡밥은 보통 특별하게 겨울의 끝인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 (정월 대보름)에 차려졌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많은 한국인들은 음식이 드물었기 때문에 긴 겨울 동안에 영양의 결핍 방지를 위해 음식을 먹었는데 이런 문제에 의해서, 그들은 겨울 때의 식사를 위해서 겨울이 오기 전에 곡물을 말렸다가 먹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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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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