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농민들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민들은 일년내내 농사일에 매달려야 했고, 춘분과 추분 사이의 농번기에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시간인 농한기에도 집수리, 가마니짜기, 새끼꼬기 등의 일에서 벗어날수 없었습니다. 하루 일과는 보통 동트기 전인 약 새벽 5시에 일어 나서 저녁 6시 정도까지 일을 했으니 약 10시간 이상을 농사 일을 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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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시작되었던 종교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한반도에 처음 종교는 민간 무속 신랑 이라고 할수 있으나 보편화된 종요라고 한다면 불교 입니다. 불교가 처음 한국으로 전래된 것은 4세기 무렵 고구려 소수림왕(재위 371~384) 2년인 372년으로, 전진(前秦: 315~394)의 왕 부견(符堅: 재위 357~385)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를 보내어 불상과 불경을 전파 하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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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왜 고려는 안된다고 한걸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는 불교 국가 이고 왕권 위주의 국가 였습니다. 정도전이 꿈꾸는 국가는 재상 위주의 유교 국가 였습니다. 한 나라의 이념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기에 불교 위주의 고려는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생각을 한 것 입니다. 그래서 유교 위주의 조선을 세우고 왕권 보다는 재상정치를 하고자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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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주범이 바로 히틀러이니 이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은 아마도 아돌프 히틀러 일 것 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죽은 사람들만 7-8천만명 이라고 하고 대부분이 민간인들 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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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도 염색약이 존재하였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에 조선 시대에도 천연 염색약이 있었습니다. 기름 두 되와 오디 한 되를 병에 넣어 볕이 안 드는 처마 밑에 석 달 동안 두고 바르거나, 푸른 깻잎과 호두의 푸른 껍질을 함께 달여 그 물에 머리를 감았는데요. 일시적으로 머리카락이 검게 염색되었다고 합니다.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물건 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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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처음으로 만든 문은 어떤 재료로 만든 어떤문이 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4000년 전 이집트 무덤 그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문을 발명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이집트 중부 어딘가에서 벽돌 사이에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처음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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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똥차다의 어원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똥차다는 원래 ' 게의 살이 가득 찼다' 라는 말에서 온 것 이라고 합니다. '게'를 사투리 (방언)로 '기'로 발음을 하고, 게의 살이 가득하고 내장이 많은 상태를 '똥'으로 의미하여 '게가 살이 많고 내장이 많아서' 먹음직스럽게 된 상황입니다. 이걸 '기똥차다'의 어원으로 보는 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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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나라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집트의 역사는 5,0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문명 중 하나입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따라 발전했으며, 고대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기념물과 놀라운 문화적 성과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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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언어 번역의 돌 이름이 기억이 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이집트 언어 연구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로제타석을 이야기 하시는 것 같습니다. 로제타석(Rosetta Stone) 또는 로제타 돌은 기원전 196년에 제작 되어 멤피스에 세워진 화강섬록암 석비 라고 합니다. 신성 문자, 민중 문자, 고대 그리스어 등의 3가지로 기록 되어 있는 화강암 입니다. 이돌을 이용해서 그리스어를 기반으로 1822년에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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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왜 제모를 하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모는 현대에 들어와서 생긴 여성들의 습관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근대 이전 고대 그리스 여인 조각상부터 중세시대 누드화까지 여성을 그린 작품에는 털이 한 올도 없이 매끄러운데 작품에서만 털을 묘사하지 않은 게 아니라, 실제로 당시 여성들이 제모를 한 것이 반영된 것이라는 얘기가 설득력을 얻습니다. 고대 이집트 신전에서는 제사 의식 중 일부분으로 털 뽑기가 행해졌고, 실제 신들의 몸에는 털이 없다고 믿었다고 하는데 미용 목적으로도 물론 제모는 이뤄졌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남녀 모두 몸에 난 털을 말끔하게 다듬었다. 제모하지 않은 사람은 노예, 이방인 정도였고 제모를 위한 면도칼은 돌,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고 족집게도 사용됐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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