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의 기원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십장생은 열 가지 장생 불사를 표상한 것인데 이에 해당하는 물상은, 해, 산, 물, 돌, 구름,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혹은 대나무 입니다. 이런 십장생은 민속 신앙이나 신선 사상에서 유래됐다고 여겨지며, 이 모두가 장수물이므로 자연숭배의 대상입니다. 옛날에는 시문, 그림, 조각 등으로 많이 사용되어왔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내어 고구려 시대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추정 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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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모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조롱, 멸시, 비아냥을 이겨냈다고 하지요. 모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삶으로 보여주었는데 ‘삶’으로 보여주는 자세만큼 가장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형태의 플랫폼을 찾아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됩니다. 그게 자신의 감각을 전하는 전략이라면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에게 맞추고자 하면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는 듣기 좋은 말에 귀 기울 수밖에 없으니까 만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것을 ‘변화’에 맞추어 일관성 있게 전하면 됩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는 일은 끈기를 필요로 할 뿐입니다. 그 끈기에 꾸준히 세밀함을 더하면 되는데 모네가 한건 그뿐 입니다. 그는 빛을 관찰하고 또 관찰했을 뿐입니다. 예술 감각은 타고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듯 남의 시선을 너무 신경 안쓰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계속 관찰하고 느끼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넓혀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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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마다 동일한 언어와 글을 사용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삼국간에는 의사 소통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여러 사신을 보내서 협상을 하게 된 부분에서 기록이 보여 집니다. 예를 들어, 내물왕 18년 ‘백제왕이 글을 보내 말하기를[百濟王移書曰]’, ‘우리 왕이 ‘대답해 말하기를[答曰]’, 눌지왕 34년 ‘고구려 사자가 와서 말로 통고하기를[使來告曰]’, 고구려 장수왕 12년 신라의 사신을 ‘왕이 특별히 두텁게 위로했다.[王勞慰之特厚]’, 백제 개로왕 21년 고구려 승려 도림이 ‘문 앞에서 고하기를[詣王門告曰]’, ‘왕을 모시고 앉아 조용히 말하기를[從容曰]’ 등은 표현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이상의 기록들을 보면 삼국 간에 어느 정도 의사 표현이 자유스러웠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리고 글은 전부 다 한자어로 기록 되었기에 문자는 다 동일 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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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사람들은 혹서기를 어떻게 지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즘은 거의 볼수 없는 풍경 이지만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농촌에서는 저녁에 대청 마루에 앉아서 수박이나 참외, 옥수수 등을 먹으며 식구들 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수박과 참외등의 과일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습니다. 또 만일 돈이 없으면 동네 과수원등에서 수박 서리 라고 해서 수박등을 몰래 가져와서 먹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바닷가를 갈수 있는 형편은 못 배도 나른대로 낭만적인 여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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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과 모차르트의 음악관 차이점은 뭐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모차르트는 곡의 구조나 음표들의 정당성보다는 자신의 환타지나 감정에 충실한 작곡가인 반면 베토벤은 떠오르는 악상에 충실했다기보다는 작곡을 하기에 앞서 구조나 논리를 먼저 생각하고 그 안에서 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음악적인 결과에 많은 관심을 가진 작곡가 입니다. 즉 베토벤은 그림으로 따지면 현실주의, 사질주의 라고 한다면 모짜르트는 초 현실주의에 해당하는 화풍이라고 비유 하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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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작품 중 경주마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작품 중 경주마를 소재로 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 이유는 그가 1872년 그의 어머니의 고향인 미국의 뉴올리안즈로 떠나 거기서 겪은 미국의 역동적인 모습에 감명을 갚아 경주마들을 많이 그리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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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양쪽 기능이 차이가 잇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왼쪽 이어폰을 4극 단자 (3줄) 오른쪽 이어폰을 3극 단자 (2줄) 이라고 하는데, 4극 이어폰은 마이크 (통화) 기능이 있으며, 3극 이어폰은 마이크 기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어폰을 왼쪽것을 빼고 오른쪽 것만 끼면 마이크 기능이 없으니 잘 안들리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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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와 한비자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순자는 이사와 한비자의 스승 이엿습니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 했는데 하지만 예라는 것을 통해 본성 변화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사는 순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 집니다. 인간은 원래 악하지만 예를 많이 배우면 착해질수있다는 것 입니다. 하지만 한비자 는 물론 성악설을 믿었고 인간의 본성은 변화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 했습니다. 인간은 선해지지않는다는 것을 주장 하는데 인간은 원래 나쁜 행동하고, 착한 행동은 우연히 하는데 그 우연한 선에 상을 주어서 상 받는게 좋아서 착한 일을 하게된다는 주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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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텍은 왜 틀락스칼텍을 유지시켰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로 인신 공양 문화 때문 이였습니다. 당시 아즈텍은 틀락스칼텍을 점령할 수 있었지만 문화적/종교적 이유로 인육을 필요로 했기에 멸망시키지 않았다는 설이 있습니다. 15세기 당시 테노치티틀란, 즉 아즈텍은 멕시코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한 상태에서 틀락스칼텍은 테노치티틀란 바로 코앞임에도 놔두고 있었는데 다만 확실한 건 아즈텍은 인신공양 의식을 앞둘 때마다 틀락스칼텍인을 공격, 포로를 잡아 인신공양의 제물로 희생시킨 다음 그 시신을 인육으로 먹었으며 이게 그 유명한 꽃 전쟁이이라고 합니다. 틀락스칼라는 그야말로 가축 취급을 당하며 테오티틀란 등과 함께 아즈텍 내의 위요지가 되어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나 소처럼 연명하게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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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인화가 김시 선생은 왜 소의 그림을 중점적으로 그린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 소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분들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시 선생의 < 야우한와> 라는 작품이 있고 비슷한 시대인 16세기 중반에 이경윤 선생의 < 유음가우> 라는 작품도 있고 17세기 최북의 < 기우도> 등의 작품 등등 매우 많습니다. 다만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우리나라 소를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중국 남방 지역에 서식하는 물소들을 그렸습니다. 우리 논과 밭에서 일하는 한우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당시에는 논과 밭에 나와서 사실감있게 소를 드리는 것이 다소 불편 하기도 했겠거니와 또한 그렇게 사실적인 시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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