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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 라면은 언제부터 출시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스턴트 라면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후극심한 식량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에서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가 발명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미군 구호품으로 밀가루가 많이 있었기에 이를 이용한 새로운 식품을 고안하게 되었다는데여. 밀가루로 국수를 만들어 기름에 튀겨 국수 안의 수분이 증발되고 이후 뜨거운 물에 들어가게 되면 본래의 상태로 풀어져 먹기 좋은 상태가 되는거죠. 최초의 즉석 라면은 1958년 8월 25일에 현재 닛신식품의 전신인 산시쇼쿠산에서 생산한 치킨라면이었다고 합니다. 라면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1963년 9월 15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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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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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우리나라 어느시대에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권도의 전신은 태견이지요. 택견의 역사는 멀리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는데여. 고구려 무용총과 삼실총에 그려진 벽화에 택견의 견주기나 품밟기와 유사한 동작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고려시대에는 택견을 수박(手搏) 또는 수박희(手搏戱)라고 하여 무인들의 무예로 성행하였다고 하지요. 「고려사」에 의하면 무인정권 때 이의민, 두경승 등은 수박을 잘하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택견은 1798년에 편찬된 「재물보(才物譜)」에 '탁견(托肩)'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한말에 편찬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탁견희(托肩戱)'로 표현되어 있고, "옛 풍속에 다리를 걸거나 발로 차서 상대를 쓰러뜨리는 기술로 내기를 하곤 했는데, 폐해가 심하여 관에서 이 다리 짓을 금하니 이 같은 유희가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어 택견이 조선시대에도 성행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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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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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계인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가 병합하지 않은 이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806년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많은 독일인들은 게르만족에 의한 통일 독일의 부활을 원했지만 게르만족이 지배하던 국가로는 옛 신성 로마 제국의 왕가인 합스부르크가가 지배하는 오스트리아, 호엔촐레른가가 지배하는 신흥 국가인 프로이센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 자신들의 주도로 독일의 통일을 이루려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다민족 국가인 오스트리아를 배제하고 완전한 독일이 아니더라도 통일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독일주의,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모든 독일의 통일을 지향하는 대독일주의가 대립했지요. 군사 대국으로 성장한 프로이센이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소독일주의에 의한 독일 통일 방안이 우위를 점했지요.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프로이센은 1871년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모든 독일 지역을 통일한 독일 제국이라는 국가를 수립합나다.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면서 독일계 민족 국가의 주도권 다툼, 비독일계 민족의 취급에 대한 문제점이 해소되었고 대독일주의에 따른 독일 통일에 대한 희망을 주었지요. 1918년 11월에는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의회가 만장일치로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독일의 일부라는 결의를 채택했습니다. 또한 1919년 7월 31일에 제정된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서도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할 의사를 시사하는 조문이 있었구요. 하지만 프랑스및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은 패전국인 독일이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은 인정되지 않았고 1919년 9월 10일에 체결된 생제르맹 조약에 따라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금지하는 규정이 명문화되었습나다. 그래서 아직 두나라는 통일이 안된 채 남아있게 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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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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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월급 예산에 관해 궁금증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현재 67만원인 병장 봉급을 2025년까지 205만원으로 올릴려면 약 5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부사관인 하사 전체와 중사 1~3호봉, 위관급 장교인 소위 전체와 중위 1호봉의 봉급은 200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3년 후 하사 1호봉의 월급이 올해보다 약 17.3% 이상 인상되지 않는다면 병장 월급이 하사 월급을 뛰어넘게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사안이니 지키려고는 하겠지요. 국민들의 세금부담은 둘째치고 더욱 우려되는건 그렇게 되면 하사관과 장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장교 하사관 지원자가 많아 줄어들것 같다는 우려도 듭니다. 과연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인 현재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지 지켜봐야 할것 같습니다.
경제 /
대출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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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인종에 대해 궁금증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르헨티나는 인구의 97%가 유럽계 백인으로, 이탈리아계 35.5%, 스페인계 28.5%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언어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가톨릭교 92%, 개신교 2%, 유태교 2% 등입니다. 남미에는 이렇게 유럽게 백인들이 주된 인종으로 구성된 나라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나라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입니다. 우로과이도 아르헨티나처럼 백인 88%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 합니다. 흑인 원주민은 10% 도 안됩니다.
학문 /
미술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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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는 경제지표상으로 획기적으로 정상화되는데 언론에서는 비난 일색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비트코인의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은 있을까요? 답은 회의적입니다. . 비트코인을 사려는 사람들마저 그 가격이 안정되기보다는 급격히 오르기를 원하지요. 시장경제에서 가격이 붙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 ‘현실적 근거’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스마트폰의 가격은 그 성능을 기반으로 수요·공급에 따라 움직이고 증권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됩니다. 원화나 달러화 같은 통화의 가치는, 그 나라 경제가 얼마나 건실 한 가에 영향을 받습니다. 비트 코인에는 그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좋든 싫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중산층의 투자를 유도하는 비트코인의 가치 제안은 바로 ‘비트코인을 호들(HODL, 계속해서 보유)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엘살바도르사람들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면, 그야말로 차이를 모르는 획일적인 메시지가 되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수중에 돈이 들어올 때마다 급한 불을 끄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현재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사용률은 2%도 되지 않고 이미 비트 코인은 실패했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비트코인 관련 정책을 시행한 지 약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엘살바도르 UCA(University of Central America) 대학이 해당 정책에 관한 여론 조사를 실시했는데 . 조사 결과, 설문에 참여한 엘살바도르 국민 중 77%가 부켈레 대통령의 정책은 실패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치안이나 기타 문제는 좋아졌기 때문에 지지율은 높은 편이지요.
경제 /
경제동향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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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일본의 인구는 한국보다 많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00년 경까지 우리나라의 인구수가 약 1000만명, 그리고 일본의 인구 수는 약1200 만명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 합니다. 하지만 120년후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등 큰 전쟁을 겪으면서 인구 수가 줄어든 반면에 일본은 1720년 기준 인구 수가 오히려2.5배 늘어나 3200만명 으로 추정 됩니다. 이러한 17세기의 급속한 인구 증가는 농업 사회에서 일어난 시장경제의 보편화와 농업 생산의 발전에 따른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임지왜란과 병자호란이 일본과 우리의 인구 수의 차이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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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왕도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사직을 백성보다 중시해야 한다고 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춘추전국시대인 기원전 372년 지금의 산둥성 추현 지역에서 태어난 맹자는 성선설을 바탕으로 한 왕도 정치를 주장한 사상가로서 유명하지요. 그가 주장하는 왕도 정치의 요체는 임금은 모름지기 백성의 신망을 얻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백성이 가장 귀한 존재이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그다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 골자 입니다. 천하를 얻는 방법은 백성을 얻는 것이며, 백성을 얻는 방법은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학문 /
철학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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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명나라 황제는 임진왜란이후 나라가 위기를 겪을 정도로 조선을 도왔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 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한 이유는 명백하게 정명 가도를 외친 일보을 조선에다가 묶어두고 더 이상 자신들의 본토에서 전쟁을 벌이기 싫었기 때문 입니다. 세상에 어떤 이득도 없는 외교 정책은 없지요. 일본은 하루 라도 빨리 북진을 해서 명나라를 치고 싶어 했고 그런 의도를 잘 아는 명나라에서 군대를 파견해서 어찌 되었건 조선에서 전쟁을 끝내고 싶었기 떄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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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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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한문쓸때(현관문)같은곳은 왜 오른쪽에서 쓰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글씨를 쓴 갑골문자는 거북이 등의 딱딱한 껍데기나 동물의 뼈에다 쓴 문자를 말하는데요. 이 갑골 문자이후에 발명된 것이 죽간 이라고 하는 대나무책 입니다. 죽간 이란 대나무를 가늘게 잘라서 여러 개를 지금의 김밥 마는 것처럼 말아 놓은 것입니다.당연히 세로로 쓰는 것이 편했고 보통 사람들은 오른손잡이가 많으므로 대나무 두루마리를 왼손으로 잡고 왼쪽으로 펼쳐가며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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