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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화 영웅이 개봉한다네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중근 의사는 마지막 유서에서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하셨답니다.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태어나셨다는 그는 민족의 별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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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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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락호의 어원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파락호라는 말은 그다지 좋은 말이 아닙니다.집안에 재산이나 세력이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자손이 집안의 재산을 아낌없이 털어먹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써 난봉꾼 같은 주색 잡기를 좋아하고 경박한 사람을 지칭합니다.한자로 쓰면 破落戶 인데 깨어질 파(破), 떨어질 락(落) 집호(戶)자를 씁니다. 즉 집안을 말이먹은 사람입니다. 대표적린 예가 바로 흥선군 이하응은 안동 김씨 세력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락호, 상갓집 개라고 불리면서까지 일부러 주색잡기에 빠져 살았다고 하지요. 물론 그는 이렇게 모든 수모와 멸시를 견디어 냈고 한편으로는 후사가 없는 철종의 유고시에 대비하여 신정황후 조씨(조대비)와 가까이 지내며 훗날을 도모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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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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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관은 어디까지 기록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사관은 국왕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가서 국왕의 언행 및 행동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사관의 역할로 인하여 왕과 신하는 은밀히 만나 정사를 의논할 수 없었으며, 열린 정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왕과 대신들의 부적절한 권력의 남용과 부패를 방지할 수 있었지요.사관은 역사의 서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을 갖춰야 하며,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거짓 없이 그대로 기록해야 하기에 권력 앞에 맞서는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관들은 여러 분야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었습니다.사관이 직필의 원칙을 얼마나 지켰는지는 태종의 일화에서 알수 있는데 태종은 어느날 사냥을 갔다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태종은 아픈곳을 살피기 보다는 주변에 사관에게 절대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하네여. 결국 알게된 사관은 태종이 알리지 말라고 한것 까지 다 기록을 했다고 할 정도로 거짓 없이 기록울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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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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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과 관련된 도서로는 어떤게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두권의 책을 추천드리고 싶네여. 게리 콕스가 쓴 <실존주의자로 사는 법>이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사르트르라는 실존주의 철학자가 직접 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입니다. <실전주의로 사는법>은 실존주의 철학을 간결하고 재미있게 설명한 안내서인데 니체, 사르트르, 카뮈를 비롯하여 여러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만들어낸 실존주의 철학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을 명확하게 제시한 책이구요.저자 게리 콕스는 실존주의가 음울하고 비관적인 철학이라는 인식을 뒤엎어, 솔직하고 희망적인 철학,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담은 철학으로서 실존주의의 본모습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구요. 두번째 책<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은 장폴 사르트르가 1946년에 출판한 책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실존주의가 급속히 보급되었던 시기의 사르트르의 강연과 토론을 수록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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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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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부엉이는 황혼에 날개를 편다 라고 한말은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는 의미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낮에는 활동을 안하다가 밤에만 움직이는 새 이듯 철학(부엉이)은 동시대에는 어떠한 영향을 주지도 않고 앞날을 예측도 못하지만 어떤 현상이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역사적인 조건을 고찰하여 철학의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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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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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최초로 집을 짓기 시작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약 1만년전 우리 조상들은 가축을 길들이고 벼를 심어 농사를 시작함으로써 정착생활을 하게 됩니다. 정착 동굴의 생활은 과거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정착생활이 일상화된 시점에서는 불편한 거주방식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류는 자신과 배우자, 그리고 자식들을 위해 특별한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는데.바로 바로 움집이었습니다. 움집은 한 가구가 충분히 살 정도의 크기로 구성됐는데 50cm~1m까지 바닥을 파내 토벽을 만들고 그 위를 나무로 덮어 지붕을 만들었다고 하네여. 집 한 가운데에 화덕이 놓여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요리를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야생동물의 침입까지 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전반적으로 동굴보다 훨씬 나은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을 선사했지요.움집은 단순한 주거지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우리 가족과 너의 가족을 나누고 우리 것을 확실하게 보호토록 만들었지요.움집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움집은 건축, 그 중에서도 ‘집’의 특성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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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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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 북한이 남침 했잖아요? 그때 쳐들어 올거라는 징조 같은게 없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그런 징후가 있었다고 하네여. 1949년 전후 잦은 삼팔선 충돌로 인한 준 전시상황에서 남침 정보를 소홀히 취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25일 당일 상황만 보아도 대응에 너무 안이했구요.. 전쟁 발발 사실이 국방부장관에게 보고되기까지 3시간, 대통령에게 보고되기까지는 무려 6시간이 걸렸다고 하지요. 전화가 있었던 시대에.이건 아닌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24일 저녁 육군 장교클럽 낙성식 댄스파티 술자리가 길어져 새벽 2시에 귀가했다는 채병덕(蔡秉德) 총참모장은 새벽 5시 육본상황실 당직근무자 김종필(金鍾泌ㆍ총리 역임) 중위의 보고를 받고 전군 비상조치를 내렸고 비상시국 핵심보직인 육본 작전국장 장창국(張昌國) 대령은 이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전화연락이 안 되었다고 하지요. 채 총장은 보고를 받고 신성모(申性模) 국방부장관 집에 전화부터 걸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자 장관 비서에게 연락해 함께 지프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오전 7시정도 였다고 합니다. 아침부터 비원에서 낚시를 즐기던 이승만 대통령은 오전 10시쯤 경찰 보고를 받고 경무대로 돌아왔는데, 이때야 신 장관이 허겁지겁 달려와서 그는 간략한 상황보고 끝에 “크게 걱정하실 것 없다”는 말을 거듭했다고 하네여. 너무나도 안이하게 초기대응을 했던 것도 비극을 더욱 키웠던 원이 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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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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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체면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왜 그런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체면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분야에서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좋은 대학이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우월함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죽도록 공부시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학벌은 동시에 학력에 대한 동경심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살아온 삶의 이력을 다 무시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체면 의식은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가식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체면의식은 정직한 나눔과 고백을 하는 것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요.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나누지 못할 때 심각한 질병에 걸립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는 각종 정신적 질병이 난무하고 있지요. 정신적 질병을 나누는 목록을 보면 각종 인격성 장애가 존재합니다. 우울증, 조현병, 경계성 인격장애등 많은 질병들이 존재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면 할수록 이런 병은 더 심해집니다. 나와 남을 비교하지 않으면서 살아갈수 있는 사회가 될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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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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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독재자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센코쿠 시대에 가장 출세한 인물로 유명한 히데요시는 서민 출신으로 태어나서 일본 조정 최고의 자리인 관백까지 오른 인물이지요.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표현할 때 빠지지 않는 어구가 바로 "戦国一の出世頭(전국 최고의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일 정도로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입신출세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이지만 최근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 역사상 가장 유례없는 독재자로 알려져 있지요. 그 이유는 당시 일본천황인 고요제이 덴노의 임진왜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결정으로 전쟁을 일으킬 정도였으니 우리나라 같으면 왕의 반댜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일으킨 역적이라고도 볼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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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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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장 풍습에 관한 인륜적 질문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순장풍습은 죽은 뒤에도 피장자(被葬者)의 평상시 생활이 재현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으로, 왕후 또는 귀족 등이 사망했을 경우에 첩(妾)·신하·종자(從者) 등을 함께 매장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러한 풍습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데여. 그러나 그 중심은 신분계층이 존재하는 사회, 가부장제(家父長制)가 확립된 사회, 그리고 수메르·이집트·상(商) 등과 같은 절대왕권이 확립된 초기 고대문명 지역 및 그 영향권에 있던 지역이였습니다. 우리나라도『삼국사기』 고구려 동천왕 22년(248)조에는 왕이 죽자 가까운 신하들이 스스로 죽어 순장되려 하자, 사왕(嗣王)예(禮)가 아니라 금했으나 장례일에 이르자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가 매우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구려의 경우에서 보이는 자사순장(自死殉葬)의 풍습은 부여에서 살인순장(殺人殉葬)과 비교되는 또 다른 형태의 순장풍습이라 할 수 있는데요. 신라본기(新羅本紀) 지증왕조(智證王條)에는 502년(지증왕 3) 봄 3월에 명령을 내려 순장을 금하였다. 그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5명씩을 죽여서 순장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를 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걸로 보아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초에 이미 없어진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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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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