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말 호족세력은 왜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통일신라 말기에는 중앙집권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동안 쌓여온 향락과 방임은 즐거운 시간이었을지 모르지만 말기에 와서는 나라에 돈이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 개선을 위해 왕실에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백성들을 쥐어짜면서 더더욱 중앙에 대한 반감만 커졌습니다. 결국 나라의 돈이 없으니 지방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어지고 그러한 배경 속에 지방 호족들이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호족들은 돈과 힘을 키워나가면서 더더욱 중앙집권화는 유명무실한 단어가 되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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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를 민족반역자라고 부르는것은 어떤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구요 친일파는 특별히 생긴 것이 아닌.당시의 흐름이었기에 당시 있던 친미파, 친러파 처럼 일반적인 부류를 부르는 것이기에 민족반역자라고 해야한다고 말이죠.그렇습니다. 당시 구한말에는 여러 서양열강 뿐만 아니라 청나라, 일본까지 한반도에 들어와 있었으니 조선인 각자의 생각에 맞는 국가를 좋아했을테죠.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넘겨줄 생각이 아닌 개혁을 위한 파트너로서 보았죠.하지만 친일파는 민족반역자라는 명칭에 걸맞게 나라를 팔아먹고 같은 민족을 수탈하는데 앞장선 인물들이기 때문에 민족반역자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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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안상호는 친일파다? 아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친일파가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일제강점기 때에도 출세를 위해서 일본에 유학 하기도 하고, 공부해서 공무원 생활이나 경찰, 군인 등을 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일본인이며, 내선일체를 강조하고, 친일 모임에 가입해서 활동 했다면 친일행위가 맞다라고 생각이 드네요.아무리 과거의 일이고, 독립이 될줄 몰랐다 등의 변명으로는 당시 목숨을 걸고 독립을 위해 활동했던 조상들 앞에서도, 지금 그 독립군의 후손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생각한다면 당시 친일 행위를 적극적으로 했던 인물 행적이 있다면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라고 생각합니다.부끄러운 행위, 나라를 파는 행위를 했던 자가 독립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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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수없는 현실인 친일파 조부를 어떻게할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 모든 일들의 원인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처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인 것 같습니다. 당시 친일파들이 친미파,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처럼 변화하면서 독립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친일을 하면서 얻은 막대한 재산들을 유지했고 오히려 그 재산을 기반으로 지금 후손들은 더 큰 재산을 보유하고 사회 상층부에 지내고 있습니다.비록 그 후손들이 조부, 증조부를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재산을 영유하며 즐기고 쉽게 살아온 배경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는 행위는 삼가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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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팔아 먹은 친일파들은 왜그렇게 잘 살고 있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미국에 무조건적인 항복을 선언하며 식민지였던 대한민국이 독립을 쟁취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았지만 약소국에겐 선택권이 없었습니다.북한에는 공산주의 소련이, 남한에는 자유민주주의 미국이 자리를 잡았죠. 남한의 경우 통제의 편리함을 위해서 친일파였던 기존의 군인, 경찰들을 그대로 이용하길 원했고, 이에 눈치 빠른 친일파들이 적극 협조하여 친일파 경찰들이 이제는 옷을 갈아입도 친미 경찰이나 권력층이 되어 있었습니다.북한의 경우 친일파에 대한 처벌이 있었지만, 남한은 친일파에 대한 처벌이 당연히 약해질 수 밖에 없었고 친일파가 친미파, 우익세력이 되어서 당시 남한에 있던 공산당을 때려잡는 이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존의 친일파는 다시금 권력을 이어가고 쌓아올린 재산이 국가로 환수 되지 못하고 지금도 후손들에게 이어져서 문제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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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6두품은 왜 능력이 있어도 최고 관직에 오를 수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신라시대는 철저한 계급 사회였습니다. 골품제라는 틀 안에서 사회가 나뉘어지고, 그 나뉘어진 계급 사이에서 역할이 있으며 혼인, 주택의 형태 등 모든 것들이 구분 되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최상위층인 성골, 진골이 있는한 그 아래 육두품은 적당한 관직, 적당한 재산, 능력은 있지만 그 한계가 뚜렷한 계급이었죠. 그러니 육두품들은 신라에서는 더이상 이룰 수 있는 것이 없다 생각하여 선진국이었던 당나라로 넘어가서 관직을 하거나, 신라말에 가서는 지방호족 등과 연결되어 신라가 무너지는데 역할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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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왜 다른 나라와 다르게 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신라는 철저한 신분제도인 골품제도가 있었기에 여왕이 나올 수 있었고,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골이라는 왕족 중의 왕족만이 왕이 되었는데, 성골과 성골이 결혼해야만 성골이 되는 구조라서 철저히 근친혼, 족내혼이 이어져왔습니다. 성골이 아닌 사람과 결혼해서 나온 자식은 성골이 아니기에 왕이 될 자격을 잃었고, 여왕들이 나올 시기에는 더이상 왕위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여왕이 나오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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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초기에는 왜 박씨, 석씨, 김씨가 번갈아 왕위에 올랐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신라 초기에는 아직까지 절대왕권을 가진 우두머리가 없었기 때문에 여러 부족, 성씨 집단의 연합정권이었기에 3성씨의 리더를 돌아가면서 선출하여 맡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신라도 중앙집권화 되면서 점차 연합정권이 하나로 통일 되면서 더이상 3성씨가 돌아가면서 왕위에 앉는 체제는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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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때 공노비를 해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공노비 해방은 말 그대로 국가 공공기관 등에 소속된 노예를 해방시켜준 사건인데요. 조선후기에는 이미 임진왜란 등으로 전국이 초토화 되고, 세금을 제대로 거두기 어려웠는데 그 부담마저 지지를 못한 일반 백성이나 공노비 마저도 다 도망을 가면서 제대로 된 공노비 운영도 되지 못 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공노비들을 해방시켜 주면서 상민(양민)을 육성하여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양을 늘리는 효과를 노렸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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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조의 호가 많이 붙은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는 조 또는 종이 자주 번갈아 가면서 사용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의 경우 태조 처럼 왕조를 창립하거나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는 등의 이슈가 있어야 하는데 조선은 태조 세조 인조 선조 등 국란이 있었던 시기에 조가 붙었는데 후기로 갈 수록 큰 이슈가 없었지만 조를 붙이는데 이는 조라는 시호가 더 좋아보여서 그랬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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