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인들은 왜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존하려 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집트인들이 갖고 있는 사후세계에 대한 생각으로 인하여 미이라를 만들었는데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사후세계로 가서 현재 이승에서의 삶이 이어져서 살아간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영혼이 사후세계에서 이승의 죽은 육체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이승에 있는 육체는 사후세계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승의 육체가 없으면 결국 사후세계도 보장할 수 없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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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기즈칸시절 엄청난 영토를 가졌던 몽골제국은 어쩌다가 힘을 잃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칭키즈칸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장 기본으로 확장해나간 몽골제국은 엄청난 속도로 확장을 하였습니다. 현재의 동유럽까지 빠르게 확장하면서 막대한 전리품을 챙기고 칭키즈칸을 따르는 자들은 공평하게 부를 나눠 받음으로써 대칸에 대한 충성심이 강력했습니다.하지만 이후 점차 후계로 넘어가면서 대칸에 대한 충성심이 약화되고, 더이상의 확장이 없으니 전리품이나 자본을 나눠주고 받는게 어려워지게 되죠. 그러면서 각 지역마다 칸국(한국)만들어지며 지방분권화 되면서 거대했던 제국이 이제는 각자 살아남는 형태로 변화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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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영이 친일파 논란이 뜨겁네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는 가족의 법적인 책임을 다른 가족에게 물을 수 있는 연좌제가 폐지된 국가이기에 하영에게 증조부의 민족배반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친일파 민족배반자들의 후손들도 책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친일행위로 벌어들인 수익을 후손들이 물려 받아서 남들보다 편하고 우월하고 떵떵거리고 살았다면 적어도 반성하는, 아니면 적어도 자신들의 집안을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이죠.나라가 힘들 때 가장 먼저 나라를 배반한 배신자가 애국자로 둔갑하고, 그 후손들이 잘먹고 잘 산다면 훗날 다시금 나라의 위기가 찾아왔을때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겠습니까.그러니 적어도 그 민족배반을 통해서 얻은 재산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대놓고 자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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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를 북침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북침이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나 그들도 북침을 단순히 남한이 북한을 공격했다라기 보다는 남친 유도설이 더 힘을 받는 것인데요. 일부러 농번기 휴가 등을 보냄으로서 남한에서 전투, 방어 병력을 줄였다면서 북한이 남침을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며, 에치슨 라인을 그을 때 남한이 제외되게 함으로써 더 좋은 먹잇감을 주었다는 것이죠.하지만 북한은 그 전부터 이미 남침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며 수없이 소련과 중국을 통해서 남침을 위한 허락, 지원을 요청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소련이 이를 불허함으로써 기간이 늦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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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문명은 왜 나일강 범람을 재앙이 아닌 축복으로 여겼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자신들이 가진 것들을 쓸어간다는 생각이 아닌 풍부한 영양분이 농토에 전달된다는 의의가 큰 사건이었습니다. 나일강 상류에서 흘러 들어와서 바닥에 깔려 있던 영양분들이 나일강 범람 때 둑을 넘어와 농토에 골고루 퍼지면서 농경에 있어서 큰 자원이 되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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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오래된 간판은 철거보다 ‘기록 자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일단 간판이라고 해서 다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닌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업체가 많고 적음, 또는 어떤 직종의 사무실, 학원, 식당 등인지를 꼭 간판을 통해서 해당 도시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닌 통계가 이미 나와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간판이 그 어떤 의미를 가진 기록물로서 존재하려면 특정 도시만의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말 그대로 오랫동안 보존된 간판이라면 의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예를 들어서 1950년대 오픈한 식당의 간판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그것이 만들어진 재질이나 형식, 규정 등이 있다면 그것이 지금에 와서는 그 어떤 역사적인 기록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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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움으로인해서 우리는 무엇을?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역사는 원래 왕학이라고 해서 왕이 배우는 학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를 알고, 과거를 공부하려 현실에 적용하는 것도 있지만 역사라는 학문을 공부함으로써 사건의 흐름이나 핵심 사건들을 공부함으로써 통찰력을 기르고, 교양을 기르고, 지식을 확장하는 개념도 있었던 것이죠. 지금도 유럽이나 선진국에서 역사학과 등이 지금도 중요시 되는 이유죠. 우리나라는 단순히 수능을 치기위해서만 어릴 때 부터 공부를 하는 것이지 해외는 다른 개념으로 역사를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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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건국 시점은 왕건부터인가요? 궁예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통일신라 이후에 고려가 된 것은 아니고, 통일신라의 중앙집권화가 약해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호족, 무신 세력들이 힘을 얻는데 이때 두각을 드러내어 결국 국가를 형성한 나라가 후백제, 후고구려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통일신라 이후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다시 통일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궁예는 최초에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이후 마진, 태봉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연호를 별도로 사용하였기에 고려라는 국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궁예가 불교를 내세우며 통치이념이나 사회이념을 내세웠지만 고려에서는 유학이 기틀이 되고, 통치이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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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나 추석 때 차례나 제사 지내는 방식을 간소화하셨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저희집도 추석에 차례를 생략한지 이제 4~5년 정도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물론, 생략할 예정이구요. 과거에는 설날, 추석, 증조, 고조부 제사 등 상당히 여러번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맞벌이는 하는 경우에는 음식을 장만하기도 힘든 상황이 많았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음식을 장만하고, 시간을 투자하는게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많이 간소화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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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트로이 전쟁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트로이 전쟁은 과거 기록에 존재했던 전쟁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유적지가 발굴되어 트로이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트로이라는 국가가 존재 했다는 것과 불에 탄 흔적 등이 확인 되었죠.그러나 영화에서 처럼 수십만의 대군들이 맞부딛히는 전쟁은 없었으리라 보고 있으며 당시 트로이 인구가 5-7천명 정도라서 아무리 군사력을 동원해도 트로이는 1천명 선이라 영화처럼 그런 문명의 전쟁은 아니었으리라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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