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에서 곰국은 언제 부터 먹기 시작 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넓은 의미로는 소의 여러 부위, 즉 쇠머리·사골·도가니·양지머리·내장 등을 함께 섞거나 또는 단독으로 여러 시간 푹 고아서 맛과 영양분이 국물에 충분히 우러나게 한 국을 총칭하는 것이다. 곰탕·육탕(肉湯)이라고도 하며, 영양이 풍부한 내장을 넣고 끓인 국이라 보양음식으로 알려져 있다.궁중에서는 수랏상에 팥수라와 짝이 되는 음식으로 올렸다. 곰탕이란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인 국이라는 의미의 공탕(空湯)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고기를 푹 곤 국이라는 의미의 곰국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능소주다식 조석상식발기(陵所晝茶食朝夕上食撥記)』에는 ‘고음탕’,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고음국’, 『조선요리법(朝鮮料理法)』 이후의 조리서에는 ‘곰국’으로 되어 있다. 『시의전서』에서는 다리뼈·사태·도가니·홀때기·꼬리·양·곤자소니·전복·해삼을 넣고 끓인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설렁탕과 흡사하다.몽골인의 지배를 받으며 전해진 고기도육법에 의해 고려말부터 먹었던것으로 시의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Q. 과거에 요동이라는 위치는 지리학적으로 어떠한 자리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요동의 범위는 다소 추상적이다. 좁은 의미로는 요동 반도와 그 일대만을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만주 일대, 경우에 따라서는 한반도 북부 혹은 해동이라는 단어처럼 한반도 전체를 가리킨다.좁은 의미의 요동은 전적으로 진~한 대의 행정구역인 요동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정복한 지역에 행정구역을 설치할 때는 대체로 피정복 국가가 옛부터 사용하던 지명+주/현의 형식을 띄고 있었다. 고구려 같은 경우도 당나라가 멸망시킨 이후 설치한 안동도호부 휘하의 행정구역을 보면, 개모주, 남소주, 창암주 등등 과거 고구려가 사용하던 지명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요동'이라는 지명은 진나라 이전부터 고조선에서 불리던 지명이었을 가능성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