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황국 중앙 총상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황국중앙총상회皇國中央總商會요약1898년 서울에서 창립된 시전상인(市廛商人)의 단체.시대 근대/개항기설립 1898년성격 경제단체, 상인단체유형 단체해체 1898년 12월설립자 구완희(具完喜)분야 역사/근대사내용전 군수 구완희(具完喜)가 경성의 각 시전상인을 회원으로 하고 전참정 조병식(趙秉式)을 회장, 전참봉 이종래(李種來)를 부회장으로 추대하여 만들었다. 설립 목적은 외국상인의 침투에 대항하여 민족적 권익을 수호하면서 그 속에서 시전상인의 독점적 이익을 수호, 유지하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첫째 외국상인의 상행위를 일정지역 내에 제한하고 일본상인·청상인(淸商人) 등 외국상인들로부터 보호되는 한국 시전상인들의 국내 시장영역을 설정하는 것. 둘째 농상공부의 허가인지(許可印紙)를 중앙총상회에서 위탁 관리하여 무명잡세를 일체 혁파하는 것. 셋째 각 항구의 물가의 고저(高低)를 관찰해 조절하는 것. 넷째는 대소 상인을 자본금에 따라 모두 의무적으로 입회하게 해 전국 상업을 통괄하는 일종의 상인협회(商人協會) 또는 상인조합을 설립하는 것이었다.이 상회의 조직체계는 회장 1인, 부회장 1인, 주무(主務) 2인, 서기 4인, 회계 4인, 사무(事務) 30인, 사법(司法) 5인, 경찰(警察) 25인, 검찰(檢察) 5인 등으로 방대하였다. 활동은 위와 같은 상업활동에 그치지 않고 독립협회(獨立協會)와 더불어 자유·민권 신장을 위한 운동도 전개하였다.독립협회의 노륙법(孥戮法 : 처자까지 연좌하여 죽이는 법) 및 연좌법 부활저지, 자강개혁내각 수립요구(自强改革內閣樹立要求), 독립협회지도자 17인 석방운동, 독립협회 복설운동(復設運動), 황국협회(皇國協會)와의 투쟁 등 모든 자주민권자강운동(自主民權自强運動)에 적극 참여하고 지원하였다.이러한 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자 1898년 10월에 독립협회와 함께 외국상인의 침투를 저지하는 상권수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2월에 독립협회와 함께 수구파 정부에 의해 탄압, 해산당하여 상권수호운동은 중도에서 좌절하게 되었다.
Q. 부여의 풍습이 고구려로 계승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는 건국신화 자체가 부여의 것과 완벽히 일치할 정도로 자신들의 정체성이 부여출신임을 숨기지 않았음.(그러나 이와 별개로 부여-고구려는 서로 앙숙관계였음.)백제는 국성부터가 "부여"이며,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기 전까지도 꾸준히 자신들이 부여의 후손임을 대외적으로 표방했음.발해는 고구려 계승의식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만 계승한 것은 아님.실제로 발해 무왕은 자신들이 발해의 풍습을 계승했음 또한 대외적으로 주장했음.고려는 아예 부여를 봉국으로 삼아버렸음.왕자에게 "부여공"이라는 제후 작위와 국명을 봉한 것.즉, 아예 부여가 자기 역사의 일부임을 표방하여 계승의 정통성을 다졌다는 거임.비록 조선이 건국되고, 고조선의 후예를 자처함으로서 부여가 주는 정통성과 상징성이 단절되었지만, 한국사 전반에 엄청난 상징성을 줬던 대단한 나라였음을 알 수 있음.여담으로 부여는 고조선과 동시대에 존재했으며, 고구려에 흡수되기 이전까지 동북아 패권국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