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칭기즈 칸은 왜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정했을까요?
칭기즈칸이 셋째 우구데이를 후계자로 선택한 것은 정치, 성젹, 그리고 몽골의 전통적 관습 등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봅니다. 첫째 아들 주치는 정실 부인 보르테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출생에 대한 혈통 논란이 있었습니다. 둘째 차카타이는 강한 성격과 과격한 태도로 부족 내 갈등을 유발하고, 주치와 대립으로 후계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본래 말자상속제로 툴루이가 유력 후보자였으나 그 는 잔인하고 알코올 중독,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면 우구데이는 온화하고 조정 능력이 뛰어난 인물로 형제들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자주 맡았으며, 이러한 성격은 제국의 안정과 통합에 적합하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막내 툴루이가 몽골 본토 울루스를 상속받아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였지만 대칸은 우구데이에게 양보되었습니다.
Q. 조선 왕조 실록을 한글로 번역을 하는데 왜 이리 시간이 많이 필요하나요?
현재 조선왕조실록의 번역은 1968년부터 1993년까지 완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역이 많아 현대화 작업이 필요하여 2012년부터 다시 시작하여 현재 8%만 완료된 상태이며, 목표는 2026년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선왕조실록은 원문 자체가 한자로 작성되어 있고, 복잡한 문체와 방대한 내용을 모두 번역하는데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실록의 한문은 고전 문체로 쓰였으며, 역사적 용어와 제도, 당시의 관용 표현 등 정확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번역자는 뛰어난 한문 실력과 역사적 배경 지식을 갖춰야 하며, 이를 충족시키는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번역이 어렵습니다.
Q. 조선시대의 월급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나요?
조선시대 관료들의 월급은 녹봉이라 하여 관품에 따라서 현물(쌀, 콩, 베 등)로 차등 지급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 1품 관리는 쌀 44석, 콩 16두를 지급하였습니다. 초기에는 3월, 7월 년 2회 지급되었으며, 세종 때는 연 4회, 그리고 숙종 이후 매달 지급하는 체제였습니다. 관리들은 녹패를 들고 한양의 광흥창을 찾아 직접 현물로 수령하였습니다. 조선시대 화폐가 발행되었지만 널리 유통되지 못하였습니다. 비록 숙종 때 상평통보가 널리 유통되었지만 녹봉은 여전히 현물 중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