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기독교와 천주교가 역사적으로 분리가된계기는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독교라는 말은 사실 주교(천주교)와 개신교(예수교)를 통틀어서 지칭하는 가장 넓은 개념입니다. 주교(가톨릭)와 개신교는 사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에서 분리된 종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가톨릭이란 말은 '두루 따르는, 모두를 포함한'이란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Katholikos : 영어 Catholic)에서 온 말인데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같이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특히 당시의 유대교에서 분리된 여러 종교 집단들로부터 구분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가톨릭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분하는 종파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이처럼 종교개혁 이후 성경에 대한 견해, 성직자에 대한 인정 범위 등의 차이로 인해 기독교의 종파로서 자연스럽게 의미가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는 그 종파가 별개의 종교인 것처럼 구분되어 운영되는 것은 안타깝기도 합니다.상기 내용은 일전에 유사한 질문에 제가 답변에 달았었던 내용을 참조하였습니다.
Q. 불교에서 보면 108배라는 게 존재하는 데요~ 108배는 어떤 의미일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불교에서의 108배는 108가지 번뇌를 참회하며 벗어버리기 위해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면 왜 108배일까요?그것은 우리의 감각 기관을 나타내는 안(눈)/이(귀)/비(코)/설(혀)/신(몸,피부)/의(머리,생각)의 6가지 기관과 그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 색(모양과 빛깔)/성(소리)/향(냄새)/미(맛)/촉(촉각)/법(생각의 대상)의 6가지가 과거/현재/미래 세 시기에 나타나므로 과거를 참회하고, 현재를 다스리고, 미래를 다짐하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기관 6가지 + 대상 6가지 = 12가지 번뇌가 존재하며,그 12가지 번뇌가 3생 즉, 과거/현재/미래 각 시기에 발생하였거나, 발생하고 있고,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각 시기마다 12가지 번뇌가 존재하게 되니 총 36개의 번뇌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3귀가 있습니다. 3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부처께 지심으로 귀의합니다둘째로 법보(불법)께 지심으로 귀의합니다.셋째로 승가와 승보(승려 또는 승려집단)께 지심으로 귀의합니다.따라서 거의 모든 경우에 절을 할 때 3번의 절을 합니다. 그래서 위의 총 36가지 번뇌를 잠재우고 없애기 위한 수행으로 절을 하며 다짐을 하는데 '36가지 번뇌 X 3번의 절 = 108배'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108배라고 하는 것은 다른 불교 문화에는 의미는 같은 것이 있지만, 절의 횟수까지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시절부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여 수행의 방법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내용은 비슷하나 108이라는 숫자를 만드는 것에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으니 검색엔진에서 찾아보셔서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Q. 서양에는 유화가 발달할수있었던 이유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화의 시초는 얀 반 에이크(1395년생)라고 보았습니다. 정확히 누가 유화 물감을 발명하고 시작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 에이크 가문이 안료에 섞는 기름을 개발하고 유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유화의 시초를 그렇게 보는 것이 현재의 정설인 듯 합니다.색을 내는 안료의 분말을 기름에 섞은 것이 유화 물감입니다. 유화 물감 발명 이전에는 안료 분말에 달걀을 사용하였고 이름 템페라 기법이라고 합니다. 달걀은 그림을 그리던 중 마르는 속도가 너무 빠른 나머지 그림을 그리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벌꿀, 아교, 송진, 나무수액, 각종의 기름을 섞어 시도해보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것이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르네상스 회화가 발전하면서 대부분의 그림들이 유화로 그려지게 되었던 것으로 봅니다. 서양은 유화, 동양은 수묵화가 주를 이루었던 이유는 서양은 처음 그림 등은 양피지나 나무판 등에 그려졌습니다. 아니면 프레스코화처럼 벽면에 그려졌습니다. 그러므로 작품의 보존성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배의 돛으로 사용되던 질긴 재질의 캔버스가 사용되면서 더욱 유화로 굳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동양은 일찌기 종이가 발달하였고, 그림보다는 문자의 기록을 위주로 하여 먹을 사용하였고, 자연스럽게 종이에 그림을 그리게 되다 보니 그대로 발림성이 좋은 먹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색을 내는 안료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Q. 로마시대때 가장 유명한 황제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 제국의 황제 중 유명한 사람은 아래와 같습니다. 가장 먼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로마 제국 최초의 황제입니다. 그는 로마 제국의 황제에 대한 정치적 체제를 정립하였고, 놀랄만한 통치력으로 '파크스 로마나' 라고 불리는 로마의 평화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의 성장을 이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가 있을 당시는 공화정이었으나 그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이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될 수 있도록 유연한 리더십과 정치력으로 로마 제국을 세운 인물로 지금에 와서는 황제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카이사르 전쟁과 공화정 시대의 끝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 등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네로 황제는 로마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황제 중 한 명으로, 그의 잔인하고도 흉악한 행동은 역사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습니다.마지막으로 황제 트라야눌루스는 로마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하나로, 최대 규모의 로마 제국을 만들고 이끌었으며, 그의 군사적 업적과 건설 사업을 추진하여 끊임없이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통치는 로마 역사상의 최고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