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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을 공유하고 모르는 것을 함께 공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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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준 전문가
맑은글터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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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언제 왜 바뀐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의 초등교육기관은 소학교였습니다. 그러다가 소학교가 보통학교령에 의해 보통학교로 바뀌었었다고 합니다. 다시 1926년 7월 1일 소학교령에 의해 소학교, 보통학교 구분없이 심상소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41년 일제칙령 제148호 '국민학교령'에 의해 국민학교로 새롭게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바꾼 이유는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는 일제강점기의 초등교육정책을 반영한 것으로 나치독일의 전체주의 교육을 상징했던 Volksschule(폴크스 슐레)에서 연원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식민지 시절의 가슴 아픈 잔재였습니다. 이에 대한민국 교육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이하는 1995년 8월 11일에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 민족정기를 정립하기 위해 국민학교의 명칭을 변경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1995년 12월 29일 교육법을 개정하여 다음 해인 1996년 3월 1일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변경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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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익룡이 공룡이 아니라니? 이게맞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의 상 공룡은 '중생대 육지에서 살았던 파충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과 바다에 살았던 파충류인 익룡과 어룡(수룡)은 공룡이 아닌 다른 분류입니다. 공룡은 신체적인 특징으로 안구 뒤쪽이나 턱에 측두와라고 하는 구멍이 있습니다. 다리 모양 등도 다른 파충류와는 구분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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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왜 신라에만 여왕이 존재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가운데 여왕이 있었던 나라는 신라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신라에 있었던 특이한 왕위 계승 제도에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내용에 대해 조사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서기 631년 진평왕이 죽은 후 신라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진평왕은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없었고 그의 형제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의 친척 중에 선정하여 왕의 자리를 이어받으면 되지 않나 지금의 생각으로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신라 왕실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품제도라는 신라의 왕족제도 때문입니다.6개의 부족이 모여 살았던 일종의 6부족 연맹국이었던 신라는 법흥왕 무렵 고대국가로 성장하여 부족은 사라지고 그 지배층은 서라벌로 모여들어 높은 관직을 부여받습니다. 6부족이어서인지 신부계급을 여섯 단계로 나눈 6두품 제도를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왕위를 이을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누었습니다. 성골은 왕의 직계 자손, 진골은 왕의 친척들로 구분하였습니다. 진평왕이 사후 궁에는 남자 성골이 없었지만, 아들이 아닌 선덕 공주가 있었습니다. 왕실에서는 회의를 거듭한 끝에 골품제를 지키기 위해 선덕 공주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고 처음으로 여왕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선덕여왕은 남자가 왕이었을 때보다 오히려 나라를 강하게 다스려 국제관계에서 신라의 지위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선덕여왕이 죽자 역시 왕실에 남자 성골이 없었기에 다시 한번 사촌인 진덕여왕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신라 역사에 있어서 2번의 여왕을 거치게 된 것입니다.진덕여왕이 죽은 다음에는 왕실에 여자 성골마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성골보다 한 단계 아래인 진골에서 왕을 물려받게 되었습니다. 이가 바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입니다. 그가 왕이 되고 신라는 당의 힘을 빌려 안타깝기는 하지만,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에서는 신라만이 여왕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최근까지 왕위를 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있듯이 여왕이 있어왔습니다. 외국에서는 고대문명에서부터 나이지리아의 아니나 전사 여왕, 고대 켈트족의 부디카 여왕, 멕시코의 카를로타 여왕, 페르시아의 에스더 여왕, 중국의 부호여왕, 측천여제, 고대 이집트의 하트셉수트 파라오, 일본 최초국가 야마타이 히미코 여왕(무녀이자 군주), 수메르의 푸아비 여왕, 영국의 빅토리아, 엘리자베스 여왕 등 많은 여왕들이 존재했습니다. 대부분은 모계사회의 고대 부족국가의 경우 여왕이자 무녀, 신녀로 통치하는 경우가 많아 그랬었고, 제대로 된 국가의 형태를 갖추면서는 대부분 갑자기 왕이 서거하거나 하여 그 왕후가 왕이 되거나, 직계 혈통 등의 문제로 서열에 따라 여왕이 되는 경우인 듯 합니다. 우리 역사의 선덕여왕, 진덕여왕도 직계혈통 및 서열에 따라 특이한 골품제도에 의해 왕이 된 경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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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율곡이이의 십만양병설이 당시 조정에서 무시됬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의 학자였던 율곡 이이는 언젠가 왜구가 조선을 침공할 수도 있으니 그에 대비하여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조8년 심의겸과 김효원이 서로에게 악감정을 가지며 반목하고 갈라서면서, 다른 학자들 또한 출신 등에 따라 남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당파 싸움을 하였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율곡 이이(서인)와 서애 유성룡(남인)은 서로를 존경하고 인정하는 사이였으나, 이이가 경연에서 ‘미리 10만의 군사를 양성해 변란에 대비해야 한다’고 문제제기하자, 류성룡은 ‘군사 양성은 재앙의 단서를 키우는 것’이라며 매우 강력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200년간 평화가 지속되었고, 군사를 양성하게 되면 국가재정이 무너진다는 이유로 결국은 조정에서 부결되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후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임진왜란 때 이이와 유성룡이 모두 이순신을 추천한 것을 보아 정치적인 방향이 달라 서로의 의견에 반목하였다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성룡은 같은 남인의 지인에게 "개혁은 옳은 일이지만 그것을 율곡과 함께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상한 이야기도 들립니다. 율곡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다는 구체적인 근거자료 등에 시기에 맞지 않은 시호가 있는 등 의심스럽다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사실상 임진왜란 이후에 서인 쪽 후학들이 남인과의 적개심을 가중시키고 임진왜란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기 위해 스승 격이던 율곡의 의견을 서애가 반대하여 결국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그 세력에 죄를 씌우기 위해 그랬다는 당쟁의 소산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이 사료와 토론을 통해 밝혀내겠지요. 뭐가 사실인지는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들은 참....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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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성악설과 성선설중 어떤게 진짜 맞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선설과 성악설은 논쟁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로 태어납니다. 성장하면서 무엇을 듣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존재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저마다의 천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천성이 호전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다고 하여 악하다 선하다를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양면적인 성향을 모두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그 중 가장 합리적이고, 더불어 사는 삶에 합당하다고 하는 것을 규범으로 정하고 그 것에 부합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으로 구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질서를 위함이지 진정한 선악을 구분함이 아닙니다. 집단에서의 선과 악, 개인에서의 선과 악은 그 판단이 다르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살인을 했다고 하면 그것은 집단의 논리에서 위법적인 행위를 한 것이므로 악이라 분류됩니다. 하지만 개인의 상황에 빗대어 보면, 한 가장이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살인범에게 복수한 것이라면, 물론 집단의 논리에서 위법적인 행위이므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악행이지만,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에 대한 복수를 한 것이므로 정의를 구현한 선행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집단의 규범을 어겼으니 법치주의 국가에서 처벌을 받아야 하겠죠. 어떤 이가 자신의 부족을 침략하여 도륙하고 있는 침략자에 맞서서 그들을 죽였다면, 그는 악인일까요? 그는 살인이라는 악행을 저질렀지만, 부족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선한 가치를 지켰으니 부족의 입장에서는 선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침략자 쪽의 부족이나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가족을 죽인 그를 악인으로 여기겠죠. 선과 악은 법과 규범이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로 구분한다고 생각됩니다. 과거 철학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논쟁하던 성선설과 성악설은 강력한 법과 규범이 필요한가, 그렇지 않고 인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가를 논쟁하면서 불거진 것이지 인간이 태초에 선하거나 악하거나 하는 것에 대한 답을 구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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