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한자가 우리동이족이 만든문자라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자는 동이족이 세운 나라인 상(은)나라의 갑골문자에서 발전하였다는 것은 중국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정설입니다. 이것이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한나라 등을 거쳐오면서 점차 현재와 가까운 한자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은 여러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므로, 우리 대한민국의 조상이 동이족이라 할 지라도 중국은 자신들의 것이라고 합니다. 뭐 그것까지 반박할 생각은 없고, 그 문자의 뿌리가 우리 민족의 조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라 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한자가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세계의 역사는 모든 것이 관련되어있고, 이어져 있습니다. 관계를 소유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자는 원래 그 명칭이 없다가 몽고가 중국을 통일한 원나라 때 몽고의 문자와 구분하기 위해서 이후 중국의 상위 지배세력이던 한족의 문자라는 명분을 입혀 한자라고 한 것입니다. 중문대사전에서도 [한자는 곧 한족인의 문자라는 말인데, 몽고문자와 대칭해서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뿌리가 고대 환국(정설로 인정되고 있지는 않음)을 거쳐, 고조선, 부여, 삼한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고려, 조선의 고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이족은 고대 환국과 고조선, 부여, 삼한, 고구려, 백제와 관련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우리 민족의 대륙사관을 주장하는 분들이 최근에 더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모두가 역사에 대해 진심이시니 존중합니다. [후한서]에 [동이전]에 동이의 뜻과 동이족의 국가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한자의 모체인 갑골문자가 동이적의 터전인 은허라는 곳으로 하남성 안양현 소둔이라는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기원전 2,500년 경에 갑골문화가 발해연안에서 발달하였다가 기원전 18세기에 동이족이 중원으로 진출하여 은나라를 세우고, 그 문자를 발전시켜, 주나라,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한나라 때 그 꽃을 피웠다 하니 기원이 동이족에 있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우리도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자를 빌어다 썼습니다. 한글은 소리글이다 보니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어, 점차 한자를 멀리하게 되었지만, 우리의 일상에 쓰는 많은 단어들은 사실 한자어가 많습니다. 그만큼 중국과 우리가 밀접한 문화권입니다. 대표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도 한자이죠.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문자를 만드는데 있어 재주가 있었나 봅니다. 갑골문자를 만들고, 거기서 형태를 변형하여 지금의 한자의 기본틀을 만들고, 동쪽 끝으로 이주한 그 후예들은 한글을 또 창제하였으니 지금의 문화강국이 되어가는 이유가 다 고대부터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과거 백제는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두 가지의 건국설화(建國說話)가 있습니다. 두 아들인 온조 중심의 설화와 비류 중심의 설화입니다. 어떤 것이 정설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았으나, 둘다 그 뿌리가 부여족이고 고구려 건국 태조인 주몽과 관계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온조 중심의 설화에는 온조가 고구려 건국자인 주몽과 졸본왕녀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가던 중 잃어버렸던 아들인 주몽의 원자인 유리가 찾아와 태자가 되고, 비류와 함께 고구려를 떠나 위례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우고, 비류가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을 통합했다고 합니다. 비류 중심의 설화에서는 비류는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와 소서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우태가 죽은 뒤 주몽이 졸본으로 망명하고 소서노는 주몽과 재혼하여 고구려 건국을 함께 했다가 마찬가지로 주몽의 원자인 유리가 찾아와 태자로 책봉되자 비류가 소서노와 그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와 미추홀에 정착하고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처음에는 하북위례성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십제(十濟)’라고 하였다 하나 초고왕 때 중심지를 하남위례성으로 옮기고 국호를 ‘백제’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백제는 이후 온조계의 부여씨가 왕위를 이어갔는데, 당시의 상황을 비류계의 부족과 온조계의 부족이 함께 연맹국가로 지내오고 비류계가 더 성장하다가 비류가 사망하고, 그 부족을 온조가 흡수하여 하나의 연맹국가 체계로 나갔다는 설이 있고, 비류가 온조와의 왕위 쟁탈에서 밀리자 바다 건너 일본으로 넘어가 일본의 천황가의 뿌리와 관련이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일전에 일본의 천황이 자신들의 핏줄이 백제의 왕가와 관련이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비류와 일본의 왕가가 혼인을 하고 양국의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아신 백제의 경우 당시 왜에 대해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 고구려와의 전쟁 때 동참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백제는 단순히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소서노의 가문이 상인가문이었던 장점을 활용하여 왜, 중국 남부 지역에 실질적으로 정치, 경제적인 영향력을 가져 실제 제후국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히 그 영토 등이 어느 정도 확장되었던 것인지 그냥 교역 정도의 관계인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사료에는 백제의 영토가 한반도로 국한되어 있고, 백제의 22담로와 중국의 사서에서의 일부 백제의 영토를 중국 남부 일부까지로 기재해 놓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맞다 아니다로 학자들이 논쟁하고 있죠. 정확한 것은 우리 역사학자들께서 계속 연구하실거라 생각됩니다. 다만 우리 백제의 문화가 중국, 일본 등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었던 글로벌한 문화였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참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Q. 모듬회,모듬생선구이와 같이 "모듬"이란 단어는 어떤 말에서 파생되었고,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모듬'과 '모둠’은 현대국어 ‘모으다’의 옛말, '모드다‘, ’모두다‘의 어간에 명사형 어미(또는 명사 파생 접미사) ‘-ㅁ’이 붙어서 형성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모드다', '모두다‘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말이지만, 중국, 북한 등의 일부 지역에서는 ’모으다‘의 의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원적으로는 '모둠', '모듬'이 다 가능한 것으로 보나, ‘모둠꽃밭’, ‘모둠냄비’, ‘모둠발’, ‘모둠밥’과 같이 ‘모둠’이 들어 있는 여러 단어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모둠'을 표준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모듬'의 어원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판단됩니다.모둠'과 '모듬'은 어원적으로 옛말 '몯-'에서 온 말이며, 통시적으로 '모둠'과 '모듬'의 형태가 모두 쓰여 왔고, 이들 형태는 합성어를 만드는 단어 형성 과정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현재 ‘모두다’는 방언으로 쓰이고 있고, ‘모드다’는 쓰이지 않으므로, 이들의 명사형인 ‘모둠’이나 ‘모듬’도 표준어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하지한 음식과 관련하여서 현재 '모둠밥', '모둠냄비'와 같이 쓰이는 말이 있으므로, 모듬회, 모듬생선구이의 경우도 ‘모둠’의 형태인 '모둠회', '모둠생선구이'로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참조 -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