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시를 다시 한 번 써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글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최근 선호되는 글의 분위기나 소재는 있습니다. 과거의 시의 경우에는 철학적, 시대적 상황을 압축하여 녹여 표현이 예스러우면서도 무게감이 있는 글의 분위기였다면, 최근의 시의 경우에는 과거의 시처럼 내면적으로는 많은 요소들을 담았겠지만, 그 형태나 운율 등 그리고 소재들이 좀더 자유로워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시는 음악과 일맥상통하므로 그 운율에 있어서는 단순한 두운, 각운이 아닌 자모음의 흐름을 동일 시 하는 방법으로 좀더 현대적인 운율법을 사용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글은 형태도 중요하지만, 대중을 끌어당길 수 있는 흡입력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님의 생각과 마음을 올곧이 표현하다보면 그 진면목을 보일 수 있는 글이 나올 것이라 생각됩니다 화이팅하세요.
Q. 중국과 대만 전쟁 가능성이 높을까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적극 저지하고 자국의 국경 인근 위협을 지키고자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나 나토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 국경과 미연방이 마주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죠.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지 않고 중립국을 선언하던가 아니면 친러시아계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완충지대를 장악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겠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지금껏 미국의 많은 지원을 받으며, 기술은 미국 등 선진국으로부터 받아 세계의 생산공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야망은 커갔고, 단순한 제조가 아닌 기술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관련 회사들을 사들이고, 핵심 기술들을 산업스파이등을 이용해서 훔쳐서라도 가지려고 했습니다. 현재 경제 규모는 이미 중국이 미국을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거기에 미국이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던 우주산업에 대해 중국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이에 미국은 항공우주 및 첨단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메모리 및 비메모리 반도체 등에 대한 기술을 제한하고, 중국이 공정에 하나라도 끼어 있다면 수입 및 수출을 제한하는 경제제제를 강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은 향후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미국과 데이터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 전쟁에는 반도체 등이 필수 과제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영향력에 있는 반도체 강국들이 중국과 손잡을 수 없게 되면 중국은 고립되고 결국 항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반도체 관련하여 선진기술을 가진 대만이 필요합니다. 지금 대만에서도 중국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며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 중국자본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점차 확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략이죠. 중국은 러시아와 같은 명분으로 대만 내에서도 하나의 중국이 되고 싶어하는 국민이 많다며, 어떠한 계기를 명분삼아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미국도 대만해협에 군사력을 지원하는 등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미국의 군사력의 차이는 큽니다. 그리고 중국의 주변에는 미국의 우방국들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미국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계기로 중국 내 내몽고, 티벳 등 지역의 독립을 추진하고, 군사력을 집중 동원하여 중국 주변을 포위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저의 생각은 중국과 대만의 충돌은 중국 때문이 아닌 미국 때문에, 미국의 큰 그림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 한국이 이러한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Q. 한글이라는 이름은 언제 부터 쓰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글을 만들 당시에는 ‘훈민정음’이라 불렀습니다.‘언문’이라는 이름은 최근까지 쓰였습니다. ≪세종실록≫에는 언문청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바로 ‘언문’이라는 말도 나타납니다. 이후에 ‘언서’라고도 하였는데, 이것은 한문을 ‘진서’라 한 데 대립시킨 말로 한문에 비해 낮춰 부른 말이 아닌가 합니다.최세진의 ≪훈몽자회≫에서는 ‘반절’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고, ‘암클’이라는 이름도 쓰였는데, 이는 부녀자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뜻으로 선비가 쓸 만한 글은 되지 못한다는 한글을 폄하하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합니다.1908년 주시경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친 후, 1913년 4월에는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쳤다고 합니다.이 때부터 ‘한글’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듯하나, 제대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한글≫이라는 잡지를 발행하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